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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27. 2023

산적 대신 갈비

30여 년 동안 매년 명절 차례 포함 8번의 제사를 모셨다. 증조부부터 아버님기일, 봄에 지내던 시사차례까지. 아빠가 작은 아들인 덕분에 미혼일 때는 제사를 딴 나라 일로 여겼지만 종갓집 외아들과 결혼하면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불만을 갖거나 불평하기보다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고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제사 음식이 단출하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집 제사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각각 모시던 제사를 몇 해 전부터는 두 분씩 모셨고 올해부터는 명절 차례로 대체하기로 했다. 아울러 음식 준비도 수월해졌다. 설 명절을 앞두고 마트에 가는 나에게 남편은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서 올리자고 제안했다. 덕분에 장을 봐야 할 가짓수도 줄었다. 떡국차례라서 조기를 사지 않았고 제사나 차례 때마다 매번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약과와 산자도 장바구니에서 빠졌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산적재료도 과감하게 생략했다. 명절 때 가족들이 먹기 위해 구입한 소갈비를 대신 올리기로 한 것이다. 


명절 때마다 방송에는 여행을 떠나는 이들로 북적한 공항 풍경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이번 설에는 한동안 국내 여행지로 제주도가 인기 폭발이었는데 올해는 해외로 더 많이 나갔다는 뉴스가 나온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미뤘던 여행을 명절에 가는 것일 수도 있고 어차피 명절차례를 안 모시니 황금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까닭일 것이다. 조상 복이 많은 사람들은 명절에 여행을 가고 그 복조차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차례를 모신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차피 허례허식인데 굳이 번거롭게 차례를 모실 까닭이 있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개인마다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숱하게 명절을 보냈지만 한 번도 명절의 한자나 의미가 궁금한 적은 없었다. 명절을 앞두고 뜬금없이 딸이 명절의 한자를 묻기에 네이버에 물어보았다. 名 이름 명, 節 절기 절. 명절이란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사람들이 즐기고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절은 설, 추석, 한식 등이 있고 설은 음력 1월 1일로 새해를 맞는 의미의 명절로 떡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명절이 불행을 초래하는 화두로 자주 언급되고 있어 안타깝다. 며느리들이 주로 겪는다는 명절 증후군을 비롯해 모처럼 모였던 가족들의 말다툼이나 불화로 인해 발생하는 씁쓸한 사건사고 소식들까지.


늘 형식보다는 내용,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이면의 마음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현실에서는 불부합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임하는 마음자세와 가족 간 충분한 대화를 통한 합의점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날이라고 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화의 단초가 된다면 의미가 퇴색되는 까닭이다. 시대의 흐름과 가족들 간 여건에 맞게 합리적인 대안과 방식을 모색하고 아울러 누군가 혼자 힘들거나 모든 책임을 떠 앉는 일이 없는 편안한 명절. 말 그대로 기념하는 날인만큼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로 채울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올해도 서울에 사는 동생들은 명절을 쇠러 오는데 반나절 이상을 소요했다. 지척에 살면서도 명절 때 잠깐만 길이 막혀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나로서는 매번 싫은 기색 없이 함께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 또한 늘 건강한 모습으로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주는 엄마가 계시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얼마나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를 명절이 기억 속에서 따스하고 다정한 시간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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