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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Feb 13. 2023

어른으로 산다는 것

어여쁜 여인이 지나가고 바람결에 머리가 흩날린다. 그 사이로 전해오는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기. TV 샴푸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다. 한때 특정사의 향수를 즐겨 쓴 적이 있다. 좋아하는 라벤더 색상 용기가 이쁘고 향 또한 진하지 않아 구입하곤 했다. 가끔 밀폐된 공간에서 과한 향수 향 때문에 멀미를 했던 기억이 있는 터라 자연스러운 향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 또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공적인 향이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이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생일 선물로 바르는 팬지향 향수를 받았다. 일명 '휴대하기 편리한 바르는 퍼퓸'으로 용기도 작고 사용하기도 간편해 출근 준비하면서 가끔 기분전환용으로 사용한다. 진하지 않아 지속시간이 짧지만 긴장완화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고 처음 발랐을 때 그 느낌과 향이 기분 좋았던 기억 때문이다.


누군가와 만날 때 혹은 스쳐 지나갈 때 풍겨오는 은은한 향은 상대방 기분까지 좋게 만든다. 어디선가 익숙한 향을 맡으면 그 또는 그녀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향수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람됨에서 은연중에 스며 나오는 내음까지 가리기는 어렵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던가. 아무리 감추려고 애써도 표정이나 말투에서 그의 인품이나 성격이 은연중에 드러나기 마련인 탓이다. 


최근 방영된 다큐 '어른 김장하'가 잔잔한 감동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지위, 나이, 항렬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왜 어른이라는 칭호를 썼을까 다소 의문이 들었다. 그가 펼쳐온 선행이나 삶의 궤적을 접하고 나면 영웅이나 위인이라는 호칭보다 '어른'이라는 단어가 더 격에 맞는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9세에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오래도록 한약방을 운영해 온 팔순 노인이다. 23세 때부터 평생 장학사업을 펼쳐왔고 40세에는 고등학교를 설립했으며 8년 후에 나라에 헌납한다. 이후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기부를 이어왔지만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늘 맨 끝자리를 고집하고 언론에 알려지는 일조차 지극히 꺼려왔다고 한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민심이 어수선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이 시대에는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 말이다.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실천하되 남에게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실천하고 진정한 사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더 따듯하고 살만한 터전이 될 것이다. 팔십 평생 많은 부를 일구었지만 본인을 위한 자가용 한번 구입한 적이 없고 다만 채우고 비우기 위해 돈을 벌었던 어른 김장하. 그에게 돈은 똥과 같은 의미이다.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필요한 곳곳에 뿌려두면 유익한 거름이 되어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나를 포함해 말로는 선하고 흠결 없는 삶을 지향하면서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들이 많다.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억지를 부리고 법보다 떼법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 멀리서 그림자만 봐도 피하고 싶거나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사람. 눈에 보이는 치장에 사치를 부리며 포장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 한 개를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열개를 채우려는 사람. 굳이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삶 자체에서 잔잔한 향이 스며 나오는 사람 냄새나는 어른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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