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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Feb 08. 2023

역주행

도로나 주차장 등에서 자동차의 지정된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운전하는 것. 바로 '역주행'이다. 주말에 동료 부친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도로에 제대로 진입한 줄 알았는데 50미터쯤 주행을 했을 무렵 갑자기 뒷골이 선연한 느낌. 분명히 2차선인데 옆차선 차량이 나와 반대로 주행 중이고 오른편에 중앙분리대가 눈에 들어온다. 백미러를 보니 내 뒤에서 주행하던 차량은 중앙분리대 넘어 차선에서 직진 중이다. 아차 싶어 중앙분리대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차선을 바꾼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순간의 오판으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없어 다행이었지 자칫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경험한 것이다.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을 바라며 살아온 날이 많다. 내려간다는 것은 패배나 실패를 의미한다고 여긴다.  간혹 일보 전진을 위해 잠시 쉬라거나 멈춰보라고 타인에게는 쉽게 말하지만 운전은 물론 더구나 내 삶에서 역주행은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별 탈 없이 순주행만 해도 션찮은데 거꾸로 달리는 일은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낙오자의 삶이거나 출발점에서 다시 역행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구나 역주행을 인생으로 비유한다면 예기치 않은 사고의 우려까지 있으니 꿈에서라도 웬만하면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즐겨 챙겨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채널을 돌리다가 가끔 시청하는데 대부분 한적한 첩첩산중에서 홀로 삶을 이어가며 자족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그들의 사연과 지나온 삶의 궤적들도 다양하다. 거듭되는 사업 실패 또는 불치병이나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거나 인간에 대한 깊은 상처나 회의감 때문에 자연으로 회귀해 한적하고 고적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  홀로 사는 삶이 외로워 보이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디면서 삶에 초월하거나 마음을 내려놓고 적응한 모습은 매우 편안해 보인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은퇴 후 미래의 본인의 모습을 꿈꾸거나 부러워하는 이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의 삶이 역주행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가고 싶은 길 또는 잘 나아가던 길을 따라 순조롭게 주행하지 못하고 정차도 아닌 뒤돌아서 다시 시작하는 인생.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선택한 삶에는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나 사고의 우려가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적한 숲으로 가기로 결정했을 당시 그들의 모습이나 마음의 상태를 떠올린다면 평정심을 찾은 현재 그들의 삶은 역주행이 아닌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순주행으로 여길 수도 있을 듯하다. 돌고 돌아 어렵게 도착했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이가 들면서 고속주행이나 순주행보다 더 바라는 것은 편안하고 무탈한 삶이다. 누군가를 제치고 앞서 나가고 쉼 없이 뜀박질하며 정상에 먼저 도달하는 치열한 삶보다 심적으로 편안한 순간이 이어지는 삶을 더 꿈꾸는 것이다. 이미 시속 50km 이상 속도로 주행 중인 나의 삶은 어떤 상태일까. 순주행이라고 믿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위험한 역주행을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만약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고 있거나 방향설정을 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다면 다시 내비게이션을 켜야 할 것이다. 뒤따라오던 동료가 화들짝 놀라 전화를 걸어왔다. 자연스레 역주행하는 내 차량을 보고 더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다. 아슴해지는 저녁놀처럼 살짝 늘어진 정신줄을 바짝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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