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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0. 2022

작은 기적

입맛이 살맛

반백년을 살면서 입맛을 잃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감기에 걸려 출근을 못할 정도로 앓아도 밥은 잘 먹었고 몸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던 4개월여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프고 나면 살이 빠진다던가 입맛이 없어서 힘들다라는 말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코로나 휴유증 중 하나가 미각과 후각 상실이라고 한다. 냄새를 맡지 못할 뿐더러 미각을 잃어버려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늘 나쁜 상황이 발생해도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남들은 목이 너무 아파 찢어질 듯한 고통때문에 심지어 입을 벌리고 잠을 잤다는 말을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런 증상들은 피해갔다. 두통과 근육통이 조금 심했지만 목 통증은 기침과 약간의 가래만 있는 정도였으니까. 


일주일 동안 격리 되어 있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입맛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즐겨먹던 음식들도 두 젓가락 이상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나마 가장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새콤한 복숭아. 배고픈것을 못 참는 터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먹을 것에 대해 궁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놀장을 통해 평소 좋아하던 잡채와 동태전, 김치 겉절이와 막 수확을 시작한 푸릇한 아오리 사과를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소용없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품목들은 평소 건강 때문에 멀리 해왔던 것들이었다. 달디단 단팥빵, 붕어빵 아이스크림, 웨하스까지 밋밋해진 입맛이 그나마 달짝지근한 것이 넘어갈때는 그나마 견딜만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간 내 식탁에는 2년동안 멀리해왔던 음식과 간식들이 즐비하게 놓였고 이제 출근을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입맛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빨리 회복하려면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염려에 짜증을 냈던 일들이 떠올라 나이 먹어도 나이값 하면서 살기는 아직도 요원함을 느낄뿐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직접 겪어본 경우는 그나마 이해의 폭이 깊겠지만 미루어 짐작하여 던진 위로의 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시어머니가 습관처럼 하시던 입맛없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그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들도 이런 힘든 시간을 겪었겠구나 하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시간이었다. 배고플때 허겁지겁 먹던 쌀밥이, 단촐한 반찬에도 군침돌아서 걱정이라는 말이 참 복된 일이었음을 . 큰 양푼에 숭덩숭덩 비빈 비빕밥, 대충 차린 수수한 삼첩 반상에도 신나서 숟가락 들던 일 또한 작은 기적이었음을 비로소 알게된 값진 일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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