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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pr 02. 2023

필 때는 목련처럼, 질 때는 벚꽃처럼

봄날 단상

사람이든 사물이든 한번 밉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밉고 싫어진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태반이다. 그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상대가 싫어지고 미워지는 것은 물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든다. "내가 왜 이럴까"부터 시작해서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로 귀결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누군가 이런 일에 대해 조언을 구할 때는 아주 쿨하게 "그냥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라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라고 답해준다. 스스로가 당사자가 되고 나면 그것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된다. 맘으로는 없던 일로 치부하거나 못 본 걸로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자꾸 귓가에 그 말들이 맴돌고 가슴 한구석에 남아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경우가 없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 다시는 안 보고 살 것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화를 내거나 욕설을 내뱉고 나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뻔뻔한 사람. 필요할 때는 아주 친한 것처럼 대화를 하거나 이용하다가 조금만 본인에게 손해가 되거나 서운함을 느끼면 처음 보는 사람인 듯 모르쇠 하는 사람. 평소에는 연락 한번 없다가 아쉬운 일이 있을 때만 부탁하는 사람.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라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앞뒤 안 가리는 사람 등.


누군가 분쟁이 생기거나 트러블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 사람은 원래 그랬다느니,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느니.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의 작은 일들이 모여 나의 평판이 되고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일들은 다 맞을 것이라 믿고 내가 내딛는 발걸음은 다 옳다는 착각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아, 벌써 해가 지네"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이제 달이 뜨겠네"라고 말한다. 물컵에 담겨있는 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아직도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한다. 바로 긍정의 마음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긍정의 마음처럼 사람을 대하는데도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곱게 바라보면 곱지 않은 것이 없고 밉게 보면 밉지 않은 것이 없다. 한동안 잠잠하던 마음에 다시 파동이 일어나는 즈음이다. 있는 그대로 그를 긍정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보지만 어느새 반대의 마음이 요동을 친다. "그냥 그렇구나"하면 될 일인데 "그럴 줄 알았어"라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버리고 이네 모난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눈만 돌리면 눈길을 멎게 하는 고운 꽃들만 담기에도, 좋은 말과 환한 일들만 담아두기에도 부족한 마음 그릇. 사랑을 나누고 줄수록 샘 솟아나듯 사람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도 마찬가지일터. '꽃이 피려면 목련처럼, 꽃이 지려면 벚꽃처럼'이란 지인의 글이 가슴속으로 쏙 들어오는 날이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제일 먼저 피어나 봄을 선물하는 어여쁜 목련처럼, 애틋하게 피워낸 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람들 속으로 꽃눈으로 날리며 기쁨을 안겨주는 벚꽃처럼 곱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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