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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pr 11. 2023

"남편이랑 손을 잡고 다녀야지"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발걸음은 가벼운 금요일 아침 출근길. 모처럼 아들 픽업을 맡기로 하고 나란히 집을 나선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아파트 주차장을 걸어간다. 멀리서 큰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지인이 화단 앞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를 보고 건네는 말이다.

"남편이랑 손을 잡고 다녀야지". 

다 큰 아들이랑 손을 잡고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이 어색했던 건지, 남편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여겼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여전히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자지간. 이게 좀 어색한 광경인가 떠올리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이내 출근을 서두른다.


며칠 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50대 부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한 사람도 있으니 그동안 굴곡과 애환이 얼마나 많았을까. 알고 보니 동석한 두 사람이 20대에 맞선을 볼 뻔했다는 이야기부터 착실하게 생겨서 선택했고 결혼해서 살아보니 결론은 '아니다'라며 밖에서 남들한테 하는 것의 반이라도 좀 집에서 베풀고 실천하면 좋겠다며 지청구하는 부인의 하소연까지.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잠깐이라도 안 보면 죽기라도 할 듯이 열렬했던 관계가 언제 그렇게 가끔은 남보다 더 멀게 느껴질 만큼 무덤덤해진 것일까. 너무 속내를 잘 알고 익숙해진 관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예측이 되고 포기할 것은 미리 알아서 포기하는 사이. 누군가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언급하며 평생 심장이 뛸 만큼 설렌다면 심장병이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설레고 쿵쾅대던 심장은 어느새 잠잠하다 못해 고요해지고 내 안에 도대체 '사랑'이라는 단어가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지경에 이르는 나이 50대. 직장과 가정생활에 지치고 세파 속에서 살아내느라 아마 '사랑'이라는 단어는 유보해 두고 사는 것은 아닌지.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다'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고 살짝 의문이 들지만 금세 동의하게 된다. 나는 과연 언제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을까. 주면 줄수록 샘솟는 것이 사랑이라는데 내 안에는 얼마 큼의 사랑이 숨 쉬고 있을까. 인물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이제 팽팽하던 피부는 주름이 깊어지고 우유빛깔이었던 피부도 예전의 빛깔을 찾기가 어렵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귀염성 있던 얼굴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으로, 아무리 신경 써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뱃살과 흰머리는 불가항력이다. 그럼에도 늘 마음은 잊고 사는 날이 많다. 나는 그대로인데 남편만 늙어가고 있으며 잘못되는 모든 일들의 단초도 그가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다.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회초년생 아들을 내려주면서 다정하게 인사까지 건네고 출근하는 길. 30여 년 넘게 가족을 위해 외로운 길을 달려온 한 남자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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