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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y 04. 2023

"잘했어요"라는 말

칭찬받고 싶은 마음

"잘했어요"라는 한마디가 훅 스며들었다. 용산역에 갈 때마다 눈길이 꼭 머무는 매장은 바로 역 대합실 정중앙에 자리 잡은 캐릭터 소품 판매점이다. 아이들 취향이라 구매한 적은 없지만 디자인이 너무 앙증맞아서 갈 때마다 매번 둘러보는 필수코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출시된 카네이션 모양 인형을 비롯해 보기만 해도 '귀엽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소품들이 곳곳에서 발길을 멎게 한다. 한참 매장을 둘러보다 결국 볼펜 네 자루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내 거, 다음엔 아들 거, 그 담엔 딸과 남 편 것까지. 한 자루에 4천 원이니 싼 가격은 아닌데 모양과 색깔이 이쁘고 일명 '춘식이'캐릭터가 들고 있는 글자판의 문구가 좋아서였다. 그 문구는 바로 "행복"과 "잘했어요"라는 글귀. 초록색과 노란색 각 두 자루씩 네 자루를 구입하고 기차를 타러 가면서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나를 발견한다.


 문득 내가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나는 칭찬에 인색한 엄마였다. 시험 성적을 잘 받아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고 자랑스럽게 성적표나 시험지를 내미는 아이들이 어깨가 으쓱해질 정도로 격려의 말을 한 기억이 없다. 모처럼 100점을 맞으면 시험이 쉽게 출제된 거라고 속단했고 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나 또한 공부를 매우 잘한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이해불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칭찬받을 일은 더 줄어든다. 아니 거의 없다. 늘 곁에서 격려해 주던 부모님은 한분씩 돌아가시고 사회생활은 보이지 않는 경쟁의 연속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말로는 기뻐하고 칭찬의 말도 건네지만 진심이 아닌 의례적인 말인 때도 적지 않다. 물론 진심을 듬뿍 담아 말하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매사에 무덤덤해진다. 감정도 메말라서 웬만한 일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고 잘 웃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입꼬리가 밑으로 쳐지고 얼굴 표정도 어두워진다. 이제 다 혼자 감당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지만 사실 중년의 나이가 돼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따스한 격려와 칭찬에 목말라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격려의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나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묵묵히 응원해 주는 작은 눈빛. 거기에 더해 "그냥 너 지금 잘하고 있어", "잘했어요"라는 한마디 말에 때론 눈물이 울컥하고,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던 걸음에 힘이 불끈 들어가는 것이다.


손에 딱 맞는 사이즈의 새 볼펜으로 복효근시인의 시 '콩나물에 대한 예의' 한편을 필사하고 오늘 할 일도 최대한 또박또박 적는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움직이는 '잘했어요' 글자판 덕분에 오늘은 종일 칭찬받는 기분으로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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