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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y 12. 2023

멀미에는 잠이 최고다

덜컹덜컹 소리와 함께 기차 밖 풍경이 영화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초록 이파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윤기를 더하고 겨우내 고요했던 논밭 두렁에도 활기가 넘치는 오월.


매번 기다림은 미세한 불안을 동반한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가슴 한쪽엔 초조함이 자리 잡고만다. 6개월에 한 번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다. 길치인 탓에 늘 가족 한 명이 수고로움을 함께 해야 한다. 혼자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모른 척 기차표 두 장을 예매하는 것이다.


자꾸 늘어나는 일정표를 보면서 이런 사소한 욕심들이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어쩌나 염려하는 일상. 일말의 불안도 없이 마냥 내달리던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으니 고맙게 받아들인다. 덕분에 얻은 것들도 많다. 좀 더 건강에 주의를 기울인다. 피곤하면 더 쉬려고 노력하고 내 체력의 한계도 인정한다.

 

하얀 가운 앞에 다소곳이 앉아 판결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의 입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먼 길처럼 여겨지는지. "다 좋네요"라는 한마디를 듣고 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상승하는 것이다. 오늘따라 천천히 달리는 기차 에 멀미 기미가 보인다. 기분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멀미에는 잠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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