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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16. 2022

음식은 추억이다

음식이 주는 따듯함과 위력에 대하여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은 오랜만에 집에 온 그에 대한 반가움과 애정이 묻어있는 표현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족들은 차례대로 그에게 먹고 싶은 음식메뉴를 묻는다. 타지에 거주하는 아들이 넉 달만에 내려온 것이다. 그가 열거하는 메뉴들은 보통 회, 치킨, 족발 등인데 신기하게도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메뉴는 바로 엄마표 '김치김밥'. 


그가 먹고 싶다는 김치김밥은 지극히 평범한 음식이다. 보통 김밥에 들어가는 햄, 맛살, 오이와 단무지 대신 두툼하게 부친 계란을 밥 위에 깔고 들기름을 넣어 양념한 묵은지를 넣고 싼 것이다. 음식 솜씨가 없는 편은 아니라 간은 잘 맞추는 편인데 똥 손이 분명한 나의 김밥 싸는 실력은 결혼생활 20여 년이 넘어도 여전히 초보 수준. 두께는 제각각이고 모양도 가지런하지 않다. 그럼에도 후다닥 말아 주면 초고추장이나 마요네즈 또는 간장에 겨자를 넣어 만든 소스에 찍어 세상 맛있는 표정으로 먹는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감동적인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니 매번 김밥을 싸게 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을 애정 하는 이유를 그에게 물었더니 '추억'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치김밥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만들어준 최애 음식 중에 하나이며, 숯불에 구운 고기와 함께 먹는 메밀막국수는 친척 장례식장에 들렀던 날 엄마, 아빠와 함께 먹은 음식이라는 것. 집에 내려오면 자꾸 잠이 온다는 그에게 김치김밥이나 막국수는 객지에서 살면서 견뎌냈던 삶의 무게나 고단함을 녹여주는 추억이 스며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입이 짧고 편식이 심한 나는 유난히 간식에 애정이 많은 편이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시골티가 풀풀 나는 술빵, 쑥개떡, 인절미 등이다. 어린 시절 자란 동네에는 막걸리를 파는 술집이 있었다. 아빠는 술을 즐겨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가끔 막걸리를 받아와 강낭콩을 잔뜩 넣은 술빵을 먹음직스럽게 쪄서 간식으로 주시곤 했다. 또한 시어머니는 봄이 되면 들에 지천인 쑥을 뜯어다가 쑥개떡을,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거실에 두레상을 펴놓고 직접 인절미를 만드셨다. 지금도 인절미를 보면 접시로 그 자리에서 뚝뚝 잘라주시던 쫄깃한 맛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365일 배달 앱만 켜면 시간에 관계없이 웬만한 메뉴는 배달이 가능하고 종류 또한 다양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비싸거나 고급스럽지 않지만 소소한 추억이 묻어있는 평범한 음식이 누군가에게 주는 따듯함과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인 것이다. 손끝이 여물지 못해 때로는 배가 터지고 모양도 고르지 않은 김치김밥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아마도 나는 그가 내려올 때마다 김밥을 계속 싸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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