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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09. 2022

명절 단상

다정한 명절 첫날

한산했던 도로가 느려진다. 먼 길을 달려왔을 차들의 행렬이 길어지고 한눈팔던 차량도 얼결에 그 대열에 끼어든다. 아차 하는 순간 벌써 늦은 것이다. 느닷없이 귀성객이 된 기분이다. 명절을 맞기 위해 3주째 조상 묘를 벌초한 지인은 입술이 부르텄다며 일주일 넘게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차례를 준비하는 엄마는 여러 날 시장에 다녀왔을 터였다. 길다면 긴 이 기간이 오롯이 자신을 위한 휴가인 사람도 있다. 연휴 전날 오후부터 그녀의 휴일은 시작된다. 비밀결사를 도모하는 듯한 표정으로 휴가를 신청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런 상황이 부럽다면 이미 나는 게임에서 진 것이다.


연휴에도 근무해야 하는 그녀는 고향집에 미리 다녀가기도 한다. 칠순 노모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집안 대청소와 이불빨래를 하고 여러 차례 마트를 오고 간 후에 아쉬운 발걸음으로 상경했을 것이다. 퇴근길 '힘들다'는 말로 하루 일과를 털어놓던 사회 초년생은 집이 가까워지자 좁아졌던 어깨가 넓어지고 얼굴도 환해진다.


명절을 쇠라며 이웃이 갖다 준 송편과 동그랑땡을 담은 검정 봉지를 꼭 쥐고 아들 집에 온 노모의 입맛은 달다. 모처럼 밥 한 공기를 맛있게 비우고 여유롭게 꿀잠을 청한다. 친정엄마는 갓 담은 배추김치와 파김치, 삼색전과 대추, 밤까지 차례에 필요한 품목들을 골고루 챙겨주신다. 당신의 몸이 좀 힘들면 자식의 심신이 좀 편안할 것이라 여기는 진한 사랑이다.


4일간 이어지는 연휴 첫날,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5시 50분에 눈을 뜨고 바지런한 그녀들과 아침 줌 낭독으로 시작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책 이야기가 여담으로 이어져 30여분 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지역도 나이도 다른 낯선 이들과 줌이라는 세상에서 만나 이어진 인연이 이렇게 깊어지고 길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간단하게 차례에 올린 삼색나물을 볶고 산적을 지져내고 조기를 쪄낸다. 모처럼 합체가 된 가족들과 오붓한 점심식사로 연휴 첫날을 맞는다. 어떤 이에게는 스스로를 위한 편안한 휴가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가족들과 추억을 만드는 행복한 시간이다. 또한 일터에서 힘겹고 고된 시간을 보내며 채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보다 평범한 사람을 꿈꾼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게 된다. 그 기준점이 높아진다면 더욱 그러하다. 여전히 평범을 꿈꾸지만 다가갈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지난한 삶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엄마가 살뜰히 챙겨준 명절 음식과 모처럼 합체한 가족들의 온기로 다정한 명절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듣기만 해도 반가운 가족이라는 이름을 찾아온 그들의 시간과 얼굴에는 평안과 미소가 깃들기를, 혹여 괴롭고 고된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보름달의 환한 기운이 더더욱 둥글고 깊게 스며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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