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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12. 2022

단출한 추석

성균관 차례상의 의미에 대하여

결혼 이후 20여 년 넘게 보낸 명절 중 가장 단출하고 조용한 추석이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한 품목만 최소화해서 구입했고 찾아올 손님이 없는 덕분에 매년 준비하던 갈비찜도 생략했다. 설거지도 아이 둘이 서로 나서 해주었고 성묘도 열외 시켜준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밀린 강의도 종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명절의 핫이슈 중의 하나는 성균관 차례상에 관련된 기사였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에서 차례상을 간소화한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내놓은 것. 표준안에 따르면 차례상에는 9가지 정도의 음식을 올리면 된다. 핵심은 가장 많이 손이 가는 음식 중 하나인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차례에 대한 며느리들의 부담스러운 마음을 반영한 결정인 듯하다.


결혼이후 양대 명절을 포함해 기제사와 시제까지 매년 8회 이상 제사상과 차례상을 차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준비하는 음식양과 가짓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차례나 제사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이다. 언젠가부터 나를 비롯해 많은 며느리들에게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외며느리인 탓에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혼자 다 해결하다 보니 제사 횟수도 줄이고 음식 또한 간소화되는 추세이다. 준비부터 제를 지내기까지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시제의 경우 음식도 주문해서 사용하고 집에서 모여서 하던 식사는 식당에서 해결한다. 


또한 그 양상은 종교나 집안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오랫동안 모셔온 터라 생략하기는 마음에 걸리니 매번 제수를 준비해 상을 차리기도 하고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해 추도식으로 지내거나 아예 생략하기도 한다. 


이번 명절에는 갓 담은 김치와 홍어회도 상에 올리고 차례를 지냈다. 상차림을 보고 아들은 나중에 좋아하는 치킨과 피자, 제로콜라를 올려달라고 하겠다며 우스개 소리를 한다. 하지만 90년대생인 그의 세대에 가서는 아마도 제사나 차례는 구경하기 힘든 의식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30여 년 가까이 차례와 제사를 모시고 있는 종갓집 며느리인 나 또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상을 사모하고 기억하는 의식이 힘든 노동과 억지로 감당해야 할 의무가 되거나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 종류와 양은 줄어도 그들을 기리는 따듯한 마음이 담겨있는 차례상이 아마도 성균관이 제시한 차례상이 아닐까 짐작해보며 무탈하게 지나간 명절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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