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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17. 2022

운전경력 20년 차의 초보운전

새 차를 대하는 방법

10여 년 넘게 타던 차를 대신할 새 차를 계약한 것은 지난 4월. 반도체 수급 때문에 출고 날짜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말에 연말이나 만나게 될까 기대했는데 차가 갑자기 배정되면서 5개월 만에 나왔다. 운전 경력 20여 년이 넘지만 새로운 차를 접하는 건 매번 부담스러운 일이다. 날로 기능이 다양해질뿐더러 새 차에 혹시 흠집이라도 날까 하는 염려에서다.


이번에는 시동 거는 법부터 배워야 할 상황. 익숙한 사이드 브레이크도 없고 변속기어도 다이얼식이다. 시승 전에 차에 비치된 차량 사용설명서 요약분을 훑어봤지만 내용이 복잡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대략 시동을 걸고 주유하는 법 정도만 숙지하고 운행을 시작했다. 심한 기계치인 나의 입장에서 새 차가 편안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조금은 부담스러운 상전이 된 셈이다.


그날부터 새 차로 출근한 날은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공간이 없을 것을 염려해 퇴근시간이 빨라졌다.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주차에도 5분 남짓 이상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차체가 좀 커지기도 했고 전에도 새 차라 아끼겠다며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가 문짝을 기둥에 세게 부딪쳤던 경험 탓에 소심해진 탓이다. 퇴근이 늦어지거나 협소한 장소에 갈 때는 예전 차를 애용하기도 한다.


처음은 설렘을 주지만 두려움을 동반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기능들이다. 좌우 사방에 달린 카메라 또한 한몫한다. 감각에 의지했던 일들을 거의 기계가 도와주는 형국이 익숙하지 않다.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여전히 직진뿐이다. 운전대만 잡으면 나도 모르게 운전석을 최대한 당기고 상체도 앞으로 쏠려 금세 초보 운전자 모드로 전환되는 것이다.


수동기어가 있는 차를 운전할 무렵, 남편의 차는 배기량도 크고 낯설어 엄두를 안 냈는데 어느 날 불가피하게 운전해보고 오토매틱이 엄청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신박한 경험이 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며칠 새 차를 타고 다닌 남편은 이제 오래된 내차를 운전하면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말했다. 나 또한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그동안 애정 해온 차를 어느 순간 외면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살다 보면 타성에 젖어 초심을 잊고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들이 많다. 처음 그 반갑고 설레었던 마음들은 어느새 무뎌지고 감사하는 마음 자체를 잊고 사는 것이다. 10여 년 넘게 나와 함께 해 온 차는 나를 늘 원하는 곳으로 편안하게 데려다주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지 큰 접촉사고 한번 없었고 잔고장 또한 없이 나를 위한 발이 되어 주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서로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경험하면서 떨렸던 마음들을 시간이 지나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고마움을 잊고 사는 일이 많다. 자주 밥을 같이 먹자고 하던 사람, 좋은 책을 보면 깜짝 선물해주던 사람, 우연히 만나면 환한 표정으로 반겨주던 사람. 그 또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따스하고 다정한 마음들을 늘 기억하고 산다면 우리 또는 나의 삶은 훨씬 더 따사롭지 않을까.


오늘도 여전히 낯선 번호판으로 나를 반기는 새로운 차는 기쁜 마음으로 마주하고, 그동안 나와 1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동고동락해온 낡은 애마에게는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운전경력 20년 차의 초보운전, 오래간만에 맛보는 새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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