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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Dec 05. 2021

혼동, 2부

  본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마당에서는 다양한 집안 일들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구는 빨래를 하고 있고, 누구는 점심 준비를 하느라 밥을 짓고 있었고. 마당 한 쪽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 놀고 있었다. 그렇게 또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아니, 보낼 줄 알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려 하던 찰나였다.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흘러가던 하루는 총성 한 발에 깨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당시 내가 살던 나라는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다만 우리 식구들은 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을 법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터라, 전쟁이 나도 다들 평정심을 잃지 않고 늘 생활하던대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도 이 시간 이후로 끝이었다. 이번엔 차라리 하룻밤의 악몽이었으면 하는 현실의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던 것은 우릴 공격하러 온 자들은 반군이 아닌 정부군이었다. 아니, 우리는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대상이 아닌가?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무슨 이유인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집안 식구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부로부터 국가반역죄로 낙인찍혀 숙청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모두 살고 봐야했다. 각자 급하게 최소한의 물품만 챙겨서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아니 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피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와중에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최소한 가족,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늘에 핏빛 석양이 깔리고 난 후부터 도망쳐 어느덧 깊은 밤이 찾아왔다. 다 같이 '이 추운 겨울밤을 어디서 지내야 하나'는 막막해 했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식구들과 친구들이 함께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의 초가집 하나를 찾았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꽤 낡고 허름해보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수 도 없었고 그럴 기력도 없었다.


  다들 지친 탓이었는지 짐은 대충 내려놓기만 하고 바로 뻗어 잠에 들어버렸다. 나도 식구들 못지 않게 녹초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 온 이 상황이 적응이 안되서 그런 것인지, 혹은 그냥 앞으로의 모든 게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인지 그냥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새벽을 홀로 외로이 뜬 눈으로 천장만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약 2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총성 한 발이 깊은 새벽 공기를 뚫고 괴성을 질렀다. 너무나도 예상치 못 한 타이밍에 공격을 받은 탓에 삼삼오오 흩어져 도망치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정을 나누어 왔던 죽마고우 2명과 이웃집 영감님, 이렇게 총 4명이서 함께 도망다니게 되었다. 정부군을 간신히 따돌리고 친구들과 영감님은 개천 물가에서 연거푸 세수를 하며 한 숨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약 5미터 떨어진 곳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칼로 살을 뚫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한 친구는 이미 목이 그어진 상태로 패대기처져 있었고, 한 친구는 허리가 뒤로 반 쯤 꺾인 채 나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쳐다보고 있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쩔 줄을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친구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뒤에 범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웃집 영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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