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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의모든지식 Aug 03. 2021

아디다스와 푸마는 형제였다!?

[아디다스 시리즈 #3]

아디(아돌프 다슬러)와 루디(루돌프 다슬러) 형제는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을 설립하여 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크게 다투고 서로 각자의 길을 걸으며 탄생한 것이 바로 아디의 아디다스와 루디의 푸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분명 1920년대에는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이 승승장구했다. 특히 1928년에 열린 암스테르담 하계 올림픽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아디는 독일의 육상 선수 리나 라드케에게 자신이 개발한 6개의 스파이크가 달린 신발 한 켤레를 줬다. 그리고 리나 라드케는 아디가 준 신발을 신고 육상 800미터 경주에 출전하여 2분 16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디의 생각이 세계적으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육상경기에서 아디는 미국의 금메달 유력 후보였던 제시 오웬스에게 자신이 만든 육상화를 신어보라고 설득했다. 아디의 육상화를 신은 제시 오웬스 역시 금메달을 4개나 따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아디의 신발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은 많은 것이 바꿔버렸다. 심지어 두 형제의 관계를 갈라놓게 되었다. 그들의 사이가 나빠진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가장 타당성 있는 이야기가 있다. 1930년대 다슬러 형제의 신발공장이 성장해 가던 중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 나치당에 가입을 강요받게 된다. 이후 아디와 루디는 1933년에 나치 당원이 되었고 사업은 더욱 번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루디는 나치 사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반면 아디는 신발 밖에 몰랐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문을 닫게 되는 공장도 생겨나자 두 형제는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아디는 무엇보다 신발 개발이 최우선이었고 루디는 현금흐름과 수익성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1943년 루디만 군대에 징집되었다. 루디는 아내가 자신을 대신해 회사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제안했지만 아디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편지를 주고받아 의견을 나누며 함께 운영하려 했지만 이 조차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1943년 10월 28일,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은 생산 중단 명령을 받게 된다. 아디는 형 루디가 자신을 군에 징집시키기 위해 신발공장의 정지를 준비했다고 의심했다. 그렇게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기 부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1945년 7월, 루디는 미군들에게 SS(나치 친위대)로 오해받고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1년간 감금되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동생 아디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고 석방된 뒤 아디를 나치 협력자로 밀고해버렸다. 하지만, 아디가 유대인 친구를 숨겨줬던 일이 알려지면서 아디는 2년간의 보호관찰을 받는데 그쳤다.

결국 다슬러 형제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아디는 자신의 이름과 성을 따 아디다스를 만들고 루디는 자신을 따르는 직원들과 함께 나와 회사를 설립했다. 이것이 바로 푸마다.

나눠진 두 형제의 브랜드 경쟁은 고향 마을에서 시작됐는데 누가 아디의 신발을 신었고 누가 루디의 신발을 신었는지가 큰 관심사였다고 한다. 지금도 아디다스와 푸마의 본사는 다슬러 형제의 고향, 독일 헤르초겐아우라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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