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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리 Oct 07. 2022

조금씩 한 팀이 되어가는 '우리'

너와 나에서 '우리'


많은 역경들을 지나 우리는 조금씩 한 팀이 되어갔다. '이제 이 사람이 내 남편이고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구나'를 말로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남편을 챙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사이좋게 지내면서 즐거운 추억도 더 많이 쌓게 되었다.


기숙사에 사는 거 싫다고 하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기숙사에 살 때 가장 많은 추억이 생겼다. 저녁밥을 차리는 건 주로 내 담당이었지만 고기를 굽는 건 남편이 했다. 남편은 고기를 무척 좋아해서 우리 집 고기 전문가이다. 설거지는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거의 항상 내가 져서 가끔은 남편이 이겨도 그냥 남편이 해주거나 같이 했다. 어쨌든 남편도 이렇게 같이 공용 부엌을 드나들면서 웃긴 일들이 많았다.

 


'우리꺼'

공용 부엌을 쓰다 보면 물건을 잃어버리는 위기가 종종 있다. 요리를 하려면 우리 방에 있는 모든 주방기구들과 음식들을 주방으로 옮겼다가 요리가 끝나면 다시 방으로 모두 옮겨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국자, 간장 하나 정도 까먹고 부엌에 놓고 오는 일은 너무 자주 있었다. 그래도 누가 의도적으로 훔쳐가지 않기 때문에 몇 시간 뒤에 생각나서 다시 찾으러 가면 그 자리에 있거나 우연히 주방에 갔다가 '어! 두고 갔었군'하고 챙겨 올 때도 있었다.

( 방에 그릇들을 둘 곳이 없어서 창틀에 두고 썼다 )


하루는 저녁을 하려고 평소처럼 프라이팬을 주방으로 옮기려고 방을 나갈 때였다. 그제야 프라이팬 뚜껑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방을 아무리 뒤져도 뚜껑이 보이지 않았다. "여보!! 프라이팬 뚜껑이 없어졌어!!" 다행히 부엌에 갔더니 전 날 두고 간 게 그대로 있어서 무사히 찾아왔다. 다른 학생들도 다 똑같은 마트에서 산 똑같은 뚜껑을 쓰니 서로 헷갈려서 가져갈 수도 있겠다 싶어 남편이 얼른 뚜껑에 글자를 남겼다. - 우리꺼

그 층에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국어가 가장 확실한 표시였다.


그리고 매번 각종 소스를 손으로 옮겨 다니느라 앓는 소리를 했더니 남편이 러시아에서 처음 사준 가방. 이 가방 덕에 삶의 질이 한층 올라갔다.


하루는 삼겹살에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우리는 같이 고기와 김치를 굽기 시작했다. 우리는 신나게 김치를 구웠는데 우리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여긴 다른 나라 학생들도 밥을 하러 오는 곳이라는 것. 다들 문을 열자마자 콜록콜록 난리가 났다. 그때부터 눈치가 엄청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김치 건져내고 나가자." 그렇게 열심히 김치를 접시로 옮겨담다가 발견한 옆 중국 학생 부부의 프라이팬. 그 프라이팬에도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는데 아니 글쎄 우리의 고춧가루 하나가 고기 위에 살포시 올라가 있었다.

중국인 부부가 없을 때 그걸 빨리 빼낼 것인지 모른 척할 것인지를 한참 논의하던 중 중국인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뒤집었다. 휴- 모르나 봐. 우리는 더 냄새가 퍼지기 전에 얼른 사건을 수습하고 방으로 도망을 갔고 그렇게 우리의 삼겹살&김치 파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났다. 미안합니다 학생 여러분들.. 정말 모르고 그랬어요..


합심해야 구할 수 있는 한국 식량

요즘은 정말 세계 어딜 가나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는데, 모스크바에도 한국인이 꽤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한국인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다. 그 방에선 주로 중고 물건을 사고팔기도 하고 무료 나눔도 가끔 있으며 모스크바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가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보통 중고 품목으로는 집안 살림이 자주 올라오는데 인기 있는 물건들은 5분이면 사라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 고춧가루, 김, 스팸 등 한국 식재료는 올라오자마자 몇 초만에 없어지기 때문에 받기가 힘들다. 항상 한국 식재료에 목말라 있던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카톡방을 열심히 확인했는데 문제는 우리 방에서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았다. (곧 이사 갈 거라며 와이파이 신청을 하지 않아 데이터를 쓰며 살았다.) 그나마 잘 터지는 곳을 찾았는데 바로 창가 구석. 창가 구석 끝으로 손을 높게 뻗어 올리면 데이터가 빵빵하게 켜졌다. 그렇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자마자 겨우 연락을 해도 매번 늦었다. 그래도 뭐라도 건지려고 남편이랑 나는 한 팀이 되어 열심히 시도하며 지냈다. 결론은 기숙사에 있는 동안 식재료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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