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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리 Oct 06. 2022

우리 둘 뿐인데 어쩌겠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결혼을 하기 전 인터넷이나 티비를 통해 이혼한 커플들 이야기를 꽤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살다가 마음이 안 맞아 이혼을 하는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주로 이해하지 못했던 제목들은 '결혼식 올린 지 3개월 만에 이혼, 6개월 만에 이혼'이었다. 저럴 거면 결혼을 왜 했을까? 결혼하기 전에 몰랐나? 싶었다. (물론 아주 큰 문제가 있으면 이해가 되지만) 근데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큰 소리 높여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주로 대화가 단절되었다. 남편은 기분이 상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밖에서 하거나 다른 방에서 하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우리는 공간도 좁아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몸이 부딪히는 그런 방 하나에 같이 있었기에 누가 뭘 하든 그게 한눈에 보였다. 그러니 한 공간에서 입을 닫고 있는 사람이랑 있으려니 나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때마다 이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결국 마음까지 닫아버리게 되는 거구나 생각했다. 이 순간을 극복할 수 있냐 없냐, 앞으로 극복할 의지가 있냐 없냐의 차이뿐이었다.

남들은 "신혼이라 좋겠다~ 깨가 쏟아지겠어"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깨뿐만 아니라 많은 게 쏟아졌다. 나는 러시아에 오기 전부터 우리의 생활이 힘들 것 같았고, 같이 힘들려고 왔다. 하지만 결혼 전부터 빨리 같이 살고 싶다며 신혼의 달달함을 상상했던 남편에겐 예상치 못한 큰 고난이었다.


우리 둘 뿐인데 어쩌겠어? 둘이 해결해야지

어머님이나 엄마한테 전화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친구에게 말하면 남편 욕을 하는 거 같아 싫고. 그럼 우리 둘이서 해결해야지! 어느 순간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의미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혼을 할 것도 아니고, 나는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 그냥 평생 부둥켜안고 살 건데. 서로 사랑해주기만 해도 모자란 이 시간에 이게 뭐 하는 거지? 그리고 이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매번 되풀이되었다. 그러니 그냥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즐겁게 보내면 되는 거잖아. 남편은 나한테 서운해서 화가 난 거야, 남편을 더 많이 사랑해주면 되겠어.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솔직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쑤셔 넣고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고 남편도 점점 노력하는 게 보였다.


남편의 입이 조금씩 열린다

내가 남편에게 요구한 건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말해줘'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이 왜 화가 났는지를 모르겠고 남편은 혼자 끙끙 분을 삭이니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점점 입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의 침묵의 시간은 조금씩 짧아지고 횟수도 줄어들었다.


마음이 더 약한 사람이 더 힘들다

남편은 나보다 마음이 더 여리다. 상처를 잘 받는다. 나는 정말 별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 남편에겐 상처가 된다. 결혼을 한 이후에 깨달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보듬어 줄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건 극도로 싫어하면서 내 주변 사람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잘 못 했던 것이었다. 이런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라는 존재가 생겼으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내가 알뜰살뜰 누군가를 챙긴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그 남편 또한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도 그냥 남편의 마음을 챙기는 일보단 내 마음을 더 챙기며 살았을 것 같다. 실제 내 남편은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성격이라 내가 그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또 남편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남편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되었다. 처음엔 남편이 너무 예민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남편 덕분에 나도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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