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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리 Sep 22. 2022

나는 러시아에 갈 거야, 너랑.

내가 결혼하고 러시아에 가게 된 이유


남편이랑 나는 중학교 동창이다. 남편은 중3 때 우리 반으로 전학 왔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론 연락은 많이 했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내 성격이 남자인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에도 그냥 연락만 하면서 1년에 한 두번 정도 만나 밥 한 끼 먹고 영화 정도 보는 사이로 10년 이상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좀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갑자기 연애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나는 결혼과 러시아행이라는 인생에서 아주 큰 두 개의 결정을 동시에 해야 하는 길에 놓이게 되었다.


고민에 빠진 나에게 남자 친구는 결혼과 러시아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세뇌를 당한 걸까? 나는 깊은 고민 속에 몇 달을 보내다 러시아에 가기로 결정했다.


말이 씨가 되었다

나는 휴학 한 번 한적 없이 대학교 4년을 마쳤고 바로 입사를 했다. 그 당시엔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싶어서, 얼른 돈을 벌고 싶어서 빨리 회사를 들어갔다. 그렇게 사회생활에 찌들어 가며 시간이 흐르고 생각해보니 나는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정도는 휴학을 하고 유럽 여행이나 해볼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또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유학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에 나는 엄마에게 종종 하던 말이 있었다. "나도 유학 가보고 싶은데 혼자 가긴 무서우니까 결혼해서 남편이랑 같이 가면 좋겠다". 친구들에게도 항상 해외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근데 그 말들이 현실이 된 것이다. 단지 내가 가고 싶었던 해외는 '영어'가 통하는,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나라였다는 사실만 빼고. 러시아는 너무나 내 머릿속에 없었던 나라였다.


내가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에서 결정하는 방법

나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한국에서 경력을 쌓으며 돈을 벌고 있을 것인가 vs 남편이 될 사람이랑 러시아에 살며 새롭게 공부를 해볼 것인가. 내 인생이 한순간에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고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보니 고민은 해결되었다.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더 후회할까? 답은 '러시아에 가지 않은 것'이었다. 2년 후든 3년 후든 이 사람이랑 결혼할 거 같은데 그러면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러시아 생활을 같이 해보고 싶었다. 러시아 생활이 힘들 거라는 건 미리 짐작할 수 있었지만 한 번 그 힘든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꿈꾸던 유학 생활도 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내가 무서워하던 그 러시아

한창 한국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열풍이 불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깝고 쉽게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나는 가본 적이 없다. 나랑 함께 여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가자고 했을 때 나는 러시아는 위험한 곳이라며 인터넷에서 스킨헤드 (사람을 이유 없이 때린다는 조직) 사진을 찾아 보여주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3박 4일 여행도 못 가겠다고 끝까지 반대했던 내가 러시아에 3년을 살러 간다니! 가장 먼저 그 친구들의 핀잔을 들었다. "너 때문에 거기 여행도 못 갔었는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니면 안 보낼 거야!

부모님께 남자 친구가 러시아를 가는데 나보고 같이 가자 한다고 말씀드렸다. 지금도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빠가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주변에서 "딸이 하나라 부모님 걱정이 많으시겠어, 부모님이 반대 안 하셨어?"라고 많이 물어봤다. 내가 기억나는 장면으로는 엄마, 아빠 모두 걱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시거나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냥 내 결정을 믿고 기다려주신 것 같다.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 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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