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6일(수)]
동이 틀 무렵 세찬 장대비가 내렸다. 몬순(우기)은 인도 북부지역에선 6월말 시작해 석달 동안 지속된다. 지난 21일 뉴델리에 도착한 뒤 처음 비가 내린 셈이다. 델리주를 제외한 북부 여러 지역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와서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세찬 비는 다행히 오전 중 그쳤다.
점심은 지인 부부와 함께 노이다에 있는 한식당에서 먹었다. 지인 부부한테서 이런 저런 생활정보를 전해들었다. 필자가 2014년 첫번째 인도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난 후 생긴 변화 중 하나가 뉴델리나 노이다에 노래방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단다.
한국인 주재원 집에서 근무하던 '아야'(가사 도우미)들이 노래방 종업원으로 변신하고 혼자 인도에 나와 있는 한국 남성 주재원이 노래방을 이용하면서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인 부부와 서로 나눴던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인도인이 한국인에 비해 착하고 인간성이 좋다는 것이다. 인도인이 타인에게 친절하고 대가족 중심 사고방식을 지녀 조카를 챙겨주고 큰아버지도 존중한다면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왜 그럴까? 업에 따라 생을 거듭한다는 힌두교 윤회사상 때문인가?
점심 식사 후 또다시 DLF 몰 노이다에 들러 못다한 세팅용 구매를 했다. 고심 끝에 소파를 구입했다. 양가죽과 인조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소파는 8월 5일 배달받기로 했다.
이것저것 구입한 뒤 몰에서 나와 몰 동문 인근의 전자제품 상가에 갔다. 어제 봐두었던 냉동고(Freezer)도 샀다. 가게 측은 오후 9시까지 집으로 배달해주겠다고 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은 오후 9시 20분에 배달됐다.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이라는 인도산 냉동고를 부엌에 달린 창고에 배치하고 바로 작동시켰다. 200리터 용량인데, 소음이 좀 크게 나는 게 흠이었다.
세팅 작업도 얼추 종반에 접어든 것 같다. 자동차 구입과 비자 연장 등이 남아있다.
마음에 걸리는 장면도 있었다. 냉동고 판매 가게 앞에서 가게 직원이 불러준 우버택시를 탔다. 그런데 10대 '거지' 소녀가 내 좌석쪽 창을 두드리며 '10루피만 달라'고 했다. 그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애들이 몰려올까 봐서 10루피를 주지 않았다.
[2023년 7월 27일(목)]
오늘은 자동차 구입문제에 집중했다. 오전에 택시호출 앱 '올라'를 통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기아차 쇼룸 노이다를 찾아갔다. 현대차에서 기아차로 옮겼다는 인도인 딜러와 상담하고 그의 권유로 시승까지 해봤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론 구입건 상담을 하다가 차 구입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됐다.
필자의 소속사가 인도에 등록돼 있지 않기에 회사 명의로도 개인명의로도 직접 구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소득세 납세자임을 입증하는 PAN(팬) 카드(인도 정부 발행)가 있어야 차를 구입할 수 있다는 데 현재로선 없기 때문이다. 기아 카렌스(7인승.1500cc.흰색)를 구입하기로 정리됐다가 갑자기 '벽'에 부딪혀 맥이 빠졌다.
귀가해서 알아보니 5년여 전에는 비교적 쉽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중고가 된 자동차를 판매하는 과정이 까다로웠다고 한다. 5년여 기간에 자동차 구입과 관련한 규정이 새로 도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운전사가 달린 자동차를 장기 렌트하는 수가 남게 됐다.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2011년 내가 인도에 처음 특파원 생활하러 왔을 때는 한국 자동차 회사 쇼룸에 가서 상담하고 즉석에서 자동차를 구입했다. 당시에는 팬카드니 뭐니 하는 게 없었다.
피곤한 상태에서 집에 돌아오니 인도 외무부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특파원 관련 온라인 입력내용에 문제가 없으니 다음 단계로 비자 연장건을 위한 자료를 업로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에 나와있는 링크를 클릭하니 로그인 화면이 떴다.
지메일 주소와 지메일 비밀번호, 입증번호(verification code) 세 가지만 입력하면 된다기에 십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런저런 수를 다 동원했으나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내에게 한번 시도해보라 했더니 똑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열을 잔뜩 받았다.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는 1층 로비의 인도인 직원(매니저)에게 노트북을 가져가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직원에게 로그인을 해보라고 했더니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직원은 한발 더 나아가 'Forgot password?'를 클릭했다. 그랬더니 금세 내 지메일로 인도 외무부의 답신이 왔다. 답신에 나온 새 비밀번호를 그 직원에게 알려줬다. 그제서야 로그인이 됐다. 필자는 그 직원이 너무 고마웠다. 문제가 또 발생하면 도움을 청하겠다고 하고선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니 업로드 불가한 것들이 나오기에 어떻게 하면 좋으냐며 문의하는 이메일을 인도 외무부 담당자에게 보냈다. 또 회사에도 서류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디지털 인디아'지만 속으로는 뭔가 1% 부족해보이는 인도. 사실 인도 외무부 사이트에 입력하는 일은 내게는 트라우마가 됐다. 생존을 위해서는 정면 돌파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이 들었다고 어느 누구도 봐주지도 않는다. 인도 생활은 첫 부임 기간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투쟁의 연속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