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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장기투숙자의 도움

by 유창엽 Mar 14. 2025

[2023년 8월 1일(화)]

 팬(PAN) 카드 신청을 드디어 했다. PAN은 Permanent Account Number의 약칭. 이 카드는 최근 인도 정부가 세금 회피를 막고자 도입한 제도라고 한다. 은행계좌 개설이나 각종 금융거래 등에 이 카드 사본 제출을 요구한다. 내가 계좌를 개설한 한국계 은행 지점에도 이 카드 사본을 제출해야 한다.

 팬카드 신청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기아차 노이다 쇼룸의 딜러가 팬카드를 제출해야 자동차를 구입해야 한다는 말에 팬카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여러 한국인을 상대로 물어봤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기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고 '부하 직원' 등이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필자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쳐야' 한다. 암튼 오후에 호텔 프런트 오피스 매니저가 불러준 회계사를 로비에서 만났다. 그가 내민 신청서(form)를 직접 작성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옆에 앉은 그 회계사에게 곧바로 물어보며 작성했다. 여권 및 비자 사본은 필수 제출 서류다. 월급과 총자산 금액 등을 적어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주소지는 한국 것으로 기입했다.

인도 자동차 렌탈회사의 자동차인도 자동차 렌탈회사의 자동차

 신청서 작성 후 그 회계사에게 면담료 1천루피와 신청 수수료 등을 합쳐 3천루피(약 5만원)를 현금으로 줬다.  서민들의 방 한 칸짜리 집 월세가 5천루피라 하니, 3천루피는 큰 금액에 해당한다.

 회계사는 영수증은 이메일로 주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팬카드를 언제쯤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실물 팬카드는 한국 주소지로 한달쯤 뒤에 가지만 이(e) 팬카드는 10일 이내 메일로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당연히 실물 팬카드를 받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회계사 말로는 실물 팬카드 없이 이팬카드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단다.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아다르 카드(Aadhaar Card)는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내 명의의 별도 팬카드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했다.

 아무튼 세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사실상 마친 셈이었다. 이어 운전사 달린 자동차를 렌트하는 문제 해결에 나섰다. 호텔에 장기투숙하는 일본인이 알려준 'car rental company'에 가서 알아보고 돌아왔다.

  거기로 갈 때 오토 릭샤를 탔다. 운전사와 영어로는 소통되지 않았다. 엉뚱한 곳에 가서 하차시키기에 운전사에게 휴대전화에 찍어둔 카렌탈 회사의 직원 명함을 다시 내밀었다. 그랬더니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도착 지점에 이르러 목적지에 제대로 왔는지 확인한 뒤  값(100루피)을 치렀다. 어떤 조건으로 자동차를 빌릴지는 다음날 결정하기로 했다.


 [2023년 8월 2일(수)]

 오후에 집에서 오토릭샤나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는 카 렌탈 회사에 아내와 함께 갔다. 인도 자동차 회사 마루티 스즈키의 디자이어(기량 1240cc.경유)와 운전사를 한달에 4만5천루피 주고 렌트하는 조건의 계약을 했다. 계약서는 없고 구두로 계약했다. 지불 방식은 15일 단위로 현금 전달 또는 온라인 이체다.

 운전사로는 동일인 한 명이 늘 배치되길 바랐으나 두 명 고정으로 결정됐다. 운전사의 영어 구사수준은 기대할 수 없었다. 구사수준이 높다면 이런 카 렌탈 회사에 근무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싱(Singh)씨 가족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자동차 27대를 보유한다고 했다.

노이다 DLF몰에 전시된 자동차노이다 DLF몰에 전시된 자동차

 이 회사를 알게 된 경위도 재미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매일 아침 조식을 먹는데, 한 60대 일본인이 식사하는 모습을 봤다. 그러다가 인사를 나눴다. 4년 차 장기투숙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이 호텔을 소개해준 나의 한국인 지인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자원 부문 컨설팅 회사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일 아침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자동차 렌트 문제를 그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오늘 중 회사를 알아보니 이메일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날 오후 메일을 확인해 보니 카 렌탈 회사 명함을 pdf 파일로 보내왔다. 자로 잰 듯 사진 찍은 명함이었다.

 메일 본문에는 명함 원본은 2일 아침에 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메일을 보니 그는 회사 직원에게 내게 적합한 카 렌탈 회사를 파악하도록 지시한 뒤 파악한 내용을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1일 오후에 나는 바로 그 회사로 가서 이것저것 알아보고서 귀가해 메일로 고마움을 전했다. 2일 아침에 만나 거듭 고맙다고 했다.  

 해외에 나와 일본인 도움을 받기는 처음인 것 같다. 일본이나 일본인이라면 곧장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두 나라는 '정치 논리 작동' 등으로 관계가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간 협력은 이처럼 마음만 열면 잘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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