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어미거미의 일생을 따스하게 묻어주리라
여들없이 거미가 집을 짓는다. 이리저리 얽어놓은 줄이 제법 모양새를 갖춘다. 호야가 가지를 뻗고 있는 벽면 한 귀퉁이에서 상량고사라도 올리는 듯 몸놀림이 정성스럽다. 유세차 축문을 읊으며 한사발 볕뉘마저 따르고 덫을 놓아도 지나는 벌레들은 기웃거릴 뿐 선을 넘지 않는다. 쉬이 걸리지 않을 자리인데 어쩌자고 이곳에다 둥지를 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참이나 거미의 행동거지를 지켜본다. 이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살며시 다가가 잽싸게 녀석을 낚아챈다. 집이 무너지면서 끈적끈적한 것이 내 손을 순식간에 휘감는다. 의외로 녀석이 조용하다. 벌써 도망가 버렸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맞댄 엄지손가락을 살짝 벌리며 들여다본다. 때마침 뭔가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휴, 안도의 숨을 쉬며 사무실 밖에 있는 영산홍 꽃나무 곁에 살짝 놓아준다.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곧 빠르게 도망치는 녀석을 눈바래기하며 두 손 모은다. 목 좋은 자리에서 배부른 세상을 살아가라고.
손을 씻고 주변을 둘러보니 줄을 치는 거미가 또 있다. 이 녀석은 집이 헐릴 것을 대비하기라도 하듯 쉬지 않고 속도를 낸다. 풀과 나무가 적절히 어우러진 곳에서 위풍당당하게 지은 집과는 규모가 다르다. 나뭇가지로 얼멍얼멍하게 엮어 겨우 비바람을 막아내는 오두막 같다. 나선실의 정교함도 방사실의 멋스러움도 없다. 실 몇 가닥을 얼기설기 늘여놓고 먹잇감을 기다린다. 통통한 모기 한 마리 사로잡아 거미줄에 턱하니 걸어주고 싶은 까닭모를 연민이 솟구친다.
한 때 엄마도 노점에서 이런 엉성한 거미줄을 쳐놓고 해종일 손님을 기다렸다. 다른 노점상들은 건널목을 가운데 두고 목이 좋은 곳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 엄마의 자리는 한쪽으로 밀려난 외진 곳이었다. 행인들의 발길을 강하게 끌어당기지도, 오랫동안 묶어두지도 못하는 자리였다. 탐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누구나 무시해버리는 곳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이곳이 그래도 엄마에게는 오랫동안 노동의 현장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집에서 담근 간장까지 퍼서 오일장에 갔던 울 엄마. 해가 뜨기도 전에 밥을 해서 식구들 먹이고 진작 엄마는 멀건 숭늉 한 그릇을 후루룩 마시고는 사립문을 나섰다.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해종일 엄마를 기다렸다. 까치발을 하면 동구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마루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올 것이다, 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다. 엄마가 어서 오기를 학수고대하였다. 왜냐하면, 분명히 엄마는 돌아올 때 뭔가 하나는 가져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무신이었다가 운동화였다가 나중에는 돈이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로 나는 새 책과 새 공책을 샀다.
엄마는 가끔 당부하곤 하였다. 기차를 타기 전에 시장에 꼭 오라고. 아주머니들이 시장 초입에서부터 좌판을 펼쳤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바짝바짝 붙어 자리를 지켰다. 그들 틈에서 쪼그리고 앉은 엄마의 몸이 더욱 작아 보였다. 엄마의 자리는 굳건하지도 않았다. 덩치 큰 아주머니들이 엄마 쪽으로 어깨를 조금만 기울여도 뭉개질 자리였다.
그런데도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마수걸이가 좋았다며 구겨진 지폐를 쭉쭉 펴서 쥐여 주던 엄마의 손이 따뜻했다. 지금도 그 감촉은 노점을 지날 때마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며 나를 한없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엄마가 준 돈을 받으면서 쌀쌀맞게 돌아선 것은 아닌지. 내 등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 서운함은 없었는지. 또한, 시장냄새가 가득 배인 그 돈으로 나는 무엇을 했을까. 혹여나 친구들과 팝송을 들으며 쓴 커피를 마시며 칸트를 논하고 허상에 들떠있지는 않았을까. 그날에 대하여 나는 자신이 없다.
어느 곳에서든 자리는 있다. 비록 내가 있는 곳이 돋보이지 않아도 생존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자리를 지킨다. 시장에서 엄마의 자리도 그랬다. 목 좋은 곳은 아니었다. 엄마가 다리를 쭉 펴고 편히 앉을 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당신은 까막눈이라서 좋고 나쁜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자식만큼은 혜안으로 넓고 단단한 자리를 꿰차기를 바랐다.
거미의 동작이 투쟁적이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에서 푸성귀며 간장, 고추장을 팔던 엄마의 분주한 손놀림도 이랬으리라. 차마 거미줄을 걷어내지 못하고 한참이나 지켜본다. 녀석은 아예 내 눈길은 무시하고 집을 짓는 데 여념이 없다. 그래, 너랑 나랑 같은 공간에서 살아보자, 하며 나는 되레 거미에게 살길을 터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거미와 내가 상생은 아니어도 굳이 서로를 침해할 일은 없을 듯싶다. 단지 거미줄이 처진 사무실을 다른 이가 본다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며 마땅찮은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하다.
거미집 한 채가 다 지어진 듯하다. 꽤 큰 거미가 공중에서 곡예를 하듯 뛰어오른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이다. 작디작은 거미 두 마리가 어미 등에 바짝 달라붙어 있어 몸집이 크게 보였을 뿐이다. 녀석에게도 새끼가…. 그간 분주하게 거미줄을 치며 먹잇감을 포획하려는 몸짓이 저만의 풍요를 누리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라 모정母情이었다. 이제 곧 새끼들에게 제 몸을 다 내어주고 그 허물이 거미줄에 걸리면 지나는 바람이 어미거미의 일생을 따스하게 묻어 주리라.
모로 누워 있는 엄마의 숨소리가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