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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백송자 Mar 07. 2023

코로나 회오리

2022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신생아 코로나. 하루에도 수십 번 검색하며 마음 졸였다. 속절없이 가뭄에 타들어 가는 식물처럼 내 마음이 바짝바짝 말라 갔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이제는 단비가 내리겠지, 하며 기다리는 애처로운 식물의 심정으로 하루를 열고 무사함을 빌던 날들이었다. 


며느리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고 사흘이 되던 날,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다. 아들네는 아기를 품기 전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조심 또 조심했었다. 임산부들이 백신 접종을 두고 좌고우면할 때도 며느리는 3차까지 다 맞았다.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매사에 신중을 기하였다. 코로나 벽은 그 누구도 넘지 못하는 것일까. 며느리가 산후조리에 전념할 시기에 비상이 걸렸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들이 코로나 확진을 받은 후 사흘째 되는 날 며느리가 또 확진되었다. 이를 어찌할꼬. 앞이 캄캄했다. 이제 겨우 삼 치레지난 아기는 어찌 된단 말인가. 아들이 확진받던 날 며느리와 아기는 PCR 

검사를 마쳤고 음성이었지만, 며느리가 걸렸다. 아기도 검사해야 했다.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캄캄했다. 코를 후비는 동안 아기는 울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보아도 답은 없다. 새근새근 다시 잠자는 아가의 숨소리는 편안했다. 내 호흡은 가파르고 힘을 잃어 갔다. 


다행히 나와 아가는 음성이다. 산후도우미도 올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내가 아들네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예전에 코로나에 한 번 걸린 적이 있어 항체가 형성되었으리라 믿었다. 무엇보다 또 한 번 걸리는 한이 있어도 울 아가만 괜찮다면 하는 마음이었다. 코로나에 걸린 아들 며느리에게 신생아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가급적 산모는 아기와 멀리하게 하고 방역에 최선을 다하였다. 집은 자주 환기시키고 수시로 손소독제로 손을 세정했다. 난 피부가 약한지라 평소에는 비누도 잘 쓰지 않는데,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 손소독제는 내 손 구석구석을 뻘겋게 파먹기 시작했다. 쓰리고 아팠다. 이 아픔은 아가를 코로나로부터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실에서 지냈다. 신생아의 실내온도는 섭씨 22~24도가 적당하다고 하여 여름철이지만 내게는 좀 추웠다. 아이는 열이 많아 시원하게 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맞다 하더라도 난 자꾸만 아가를 감싸고 있다. 양육 방법의 견해 차이로 고부간에, 모자간에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자주 들어왔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의견을 내는 대신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앞으로도 세대 차이는 곳곳에서 일어날 텐데.


신생아의 울음을 빨리 파악해야 했다. 배고파서 우는 소리, 잠투정하는 소리, 뭔가 불편한 소리 등등. 하루가 온전히 지나자 이건 웬만큼 구별이 되었다. 두 아들을 키웠던 내 몸이 아이 상태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기억하며 수시로 뇌를 움직여 나를 깨운다. 가끔은 아가가 뭔지 모를 상태로 울어 댈 때가 있다. 아마도 어미의 품을 찾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탯줄로 이어진 몸이 아니었던가. 할미의 품이 어미 품 같지는 않겠지만, 되도록 가슴으로 밀착하며 안정을 주며 토닥토닥한다. 


아가가 깊은 잠에 빠져도, 호흡이 거칠어도, 마냥 울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수시로 이마에 손을 얹어 보고 체온을 잰다. 때로는 불덩이 같은 아가를 안은 나를 발견하는 꿈속에서 나는 까무러칠 듯 놀라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늘 두 손을 모은다. 삼신할미께 정안수 떠 놓고 빌고 빌던 이 땅의 옛 어머니들의 굽은 모습이 나였다. 아무리 면역력이 강한 신생아라 하더라도 인터넷을 뒤져 보면 코로나에 확진되는 경우가 많다. 


조마조마하던 날들이 지나고 아들 내외도 코로나의 회오리에서 차츰 벗어나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면서 점차 아기와의 접촉 거리를 좁혔다. 아들이 먼저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에서 한 줄이 나왔고 뒤이어 며느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며느리는 아가에게 직접 수유는 못 하더라도 계속 젖을 유축하여 냉장고에 보관하였다가 먹였기에 늘 아가와 엄마는 한 몸이었다. 아가가 배가 고파 칭얼대면 어김없이 며느리는 젖이 돌아 유축했다. 


아가는 초유와 모유를 계속 먹은 덕으로 거센 회오리 중심에서 벗어났다. 이는 인간의 손이 아닌 신의 영역인 듯하여 낮은 자세로 임한다. 내팽개쳤던 하심(下心)의 끈을 다시 움켜쥐며 빳빳함을 지운다. 


울 손주가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여러 번 거센 바람을 또 만날지도 모른다. 코로나 회오리는 기억저장소에 남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맞서며 이겨 냈던 몸은 기억하리라. 앞으로 예기치 않게 불어올 갖가지 크고 작은 풍파도 거뜬히 막아 내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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