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가 백송자 Mar 07. 2023

봄, 연두를 쓰다

2022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봄빛이 쌓이는 곳마다 연두다. 무채색 가지에 드러나는 몸짓이 아장거리는 아이처럼 온 세상을 정화한다. 떠들썩했던 벚꽃 잔치에 들떠 있던 마음에도 여린 속살 같은 부드러움이 자리한다. 비와 바람을 맞지 않은 순한 연두 앞에 다가서면 경건해진다. 연두는 잎의 여정에서 이미 출발 신호를 받고 초록을 향해 한달음에 달리고 있다. 글에서 첫 문장 같은 출발점이다. 


글감을 찾고 개요작성을 하고도 몇 날 며칠을 거쳐 첫 글자 하나 쓰지 못하고 끙끙대는 경우가 많다.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여 만든 첫 문장은 연두처럼 희망을 전한다. 첫 문장의 완성은 글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시작이 곧 반이 되는 것이다. 


식물의 새순이 견고한 줄기를 깨고 나오는 과정은 생명의 출산이다. 인간이든 미물이든 산고는 존경스럽다. 새 생명체의 출현은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말 없는 식물도 새순을 보호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어루만짐을 수없이 진행하리라. 여린 순은 봄 햇살을 받아 성장하고 나무는 온통 연두로 물드는 건 금방이다. 온 세상이 연두인가 싶다 보면 어느새 신록으로 무성해지는 게 자연이다. 


첫 문장을 써 놓고 나면 다음이 수월하다. 연두가 초록이 되기 위하여 강한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며 단단해지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숱한 단어와 문장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여러 차례 빼고 더하기를 반복한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가 가지런하게 구성된 문장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토씨 하나에도 최적의 것을 찾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손목이 아플 정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탄생하는 글이다. 


작은 잎들을 살펴본다. 여린 잎들은 저마다 비켜나 있다. 잎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최대한의 배려인 것 같다. 또한 나만 햇빛을 더 보겠다고 쑥 올라온 것도 없이 크기가 고르다. 다른 잎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골고루 햇빛과 바람을 안으며 함께 성장한다. 잎의 색도 한 개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명암이 엇갈리지 않는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은 겹치지 않아야 하며 서로 구김 없이 펼쳐져야 한다. 앞에 있는 것은 다음 것을 이끌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균형을 이루고 마침내 글이 된다. 여백이 많으면서도 꽉 찬 글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처럼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 


이제 몽실몽실 피어 있던 연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초록이 가득 차다. 연두는 초록을 번창시키기 위하여 세상과 맞서며 성장했다. 초록도 가을 단풍을 준비하며 무더운 여름을 버틸 것이다. 낙엽은 또 어떠한가. 봄의 연두를 위한 처절함으로 낙엽귀근이 되리라. 자연의 순환이 제대로 돌아가는 데는 저마다의 역할 수행이 뒤따른 결과다. 


세상에 나왔던 연두가 일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무는 그저 손을 놓고 지내지는 않았으리라. 심한 가뭄에는 저장한 물을 우듬지까지 골고루 올려 보냈을 것이고 폭우가 쏟아지면 또 머금은 물을 빨리 밖으로 배출하느라 긴장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성장한다.


한 편의 글을 짓는데도 끊임없는 단련이 필요하다. 원고지 양만 채웠다 하여 글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확장을 통한 퇴고의 과정을 여러 번 거쳐 나와야만 단단한 글이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늘 살아 있어야 하고 날카로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조화롭게 행간을 채워야 한다. 인위적인 멋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전체를 채색한 글은 생명을 얻는다. 생명이 있는 것은 주변을 변화시키며 또 다른 순환의 길을 연다. 


어설프게 시작된 첫 문장을 발판으로 나는 도움닫기를 한다. 남보다 멀리 가거나 높이 오르기 위한 준비가 아니다. 메마른 내 마음에도 연두 같은 여린 생명이 몸을 풀게 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