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3] 지하철 7호선의 유령 역

이상하지만 따뜻해 #3

by 사우스파크

새벽 2시, 야근을 마치고 막차를 놓쳤다. 택시를 타려고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역 불이 다시 켜졌다. 이상했다. 분명 막차는 끊겼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심야 특별 운행을 시작합니다. 희망역 방면 열차가 곧 들어옵니다."


희망역? 7호선에 그런 역은 없는데. 하지만 피곤했던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 방향이면 타자고 생각했다. 플랫폼에 내려가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잠시 후 열차가 들어왔다. 낡은 전동차였다. 1990년대에나 볼 법한 디자인이었다. 문이 열렸고 나는 올라탔다. 객차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좌석은 먼지가 쌓여있었고 형광등은 깜빡거렸다.


열차가 출발했다. 첫 번째 정거장, 두 번째 정거장... 정상적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세 번째 정거장을 지날 때부터 이상했다. 터널이 평소보다 길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10분? 20분? 터널이 끝나지 않았다.


그때 차장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음은 희망역입니다. 희망역." 목소리가 이상했다. 마치 오래된 녹음 테이프 같았다. 열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멈췄다. 문이 열렸다.


플랫폼에 내렸다. 역은 낡았지만 깨끗했다. 벽에는 1980년대풍 타일이 붙어있었고, 광고판에는 바랜 포스터들이 걸려있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내일은 더 나은 날"... 낡고 진부한 문구들이었다.


플랫폼에 사람들이 있었다. 열명 정도. 모두 1980년대 옷차림이었다. 여자들은 퍼머를 하고 어깨에 패드가 들어간 재킷을 입었다. 남자들은 통바지에 뿔테 안경을 썼다. 모두 텅 빈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중 한 소녀가 나를 봤다. 열 살쯤 돼 보였다.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멘 소녀였다. 그녀가 다가와 물었다. "여기는 우리가 잃어버린 희망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아저씨도 희망을 잃어버렸나요?"


"아니, 난... 그냥 잘못 탄 것 같은데." "여기는 잘못 타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희망을 잃은 사람만 올 수 있어요." 소녀가 말했다. "저 사람들 봐요. 모두 희망을 잃고 여기 왔어요. 1983년 대학 입시에 떨어진 사람, 1987년 사업에 실패한 사람, 1995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


"그럼 저 사람들은 여기서 뭘 하나요?"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기다려요. 희망이 돌아오기를. 하지만 희망은 스스로 찾아와주지 않아요. 자기가 직접 가져와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거예요."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저 소녀는... 너는 왜 여기 있어?" "저는 1992년에 여기 왔어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재능이 없대요. 그래서 희망을 잃었죠. 그 뒤로 계속 여기 있어요."


"지금도 피아니스트 되고 싶어?"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되어서." 소녀가 말했다. "근데 아저씨는 달라요. 아저씨는 아직 희망이 있어요." "어떻게 알아?" "아저씨가 여기 있는데도 눈이 살아있잖아요. 저 사람들처럼 빈 눈이 아니에요."


그때 열차가 다시 들어왔다. 아까 탔던 그 열차였다. "아저씨, 저 열차 타세요. 그럼 돌아갈 수 있어요. 아직 희망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 머물 수 없거든요." "너는?" "저는 여기 남아야 해요. 아직 제 희망을 못 찾았으니까."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안 돼요. 희망은 스스로 찾아야 해요." 소녀가 미소 지었다. "그래도 오늘 아저씨 만나서 좋았어요. 희망이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보니까 조금 용기가 나요."


문이 닫히려 할 때 나는 소리쳤다. "희망은 아직 늦지 않았어! 너도 피아니스트 될 수 있어!" 소녀가 손을 흔들었다. 열차는 출발했다.


다음 역은 평범한 종점이었다. 새벽 3시. 역무원이 나를 봤다. "손님, 어디서 오신 거예요? 막차는 진작 끊겼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집에 와서 7호선 노선도를 찾아봤지만 희망역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더 희망을 믿게 됐다.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게 됐다. 가끔 생각한다. 그 소녀는 아직도 거기 있을까. 언젠가 자기만의 희망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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