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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실망스런날, 테니스 파트너를 보고 숙연해지다.

라이프 In 테니스

by 걷는사람

나에게 실망스런 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제도 나에게 실망스런 날이었다. 그렇게 레슨을 받고 머드리부터 이소라 등 각종 테니스 동호회 동영상도 보고 짤도 보고했는데, 실제 게임에선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어제는 서울 중심의 고즈넉한 단독 코트에서 남 둘 여 둘 혼복경기를 하게되었다. 상대편 여성은 구력이 6개월밖에 안됬다며 실력이 좀 안될수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드랬다. 그런데 막상 랠리와 경기를 해보니 그분은 나보다 훨씬 강한 스트로크, 다양한 발리와 앵글을 구사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해서 겨우 내가 한 만큼 정도만 퍼포먼스가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즉, 내가 이날따라 몸이 덜 풀렸거나 컨디션이 난조여서가 아니라, 나는 매일 최선의 퍼포먼스를 했다.

6개월 밖에 안됬다는 테린이 여성분의 플레이를 보면서 아... 타고난 재능이란 게 있구나 하고 또다시 절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아무도 시키지 않은 테니스를 하면서 공연히 실망꺼리를 만들고 있는가, 하고 나를 자책했다. 공연히.... 오늘 또다른 게임에 가기 전까진 말이다.


남 셋, 여 하나 잡복 테니스


오늘 게임은 남자들 3명에 나 혼자 여자인 “잡복"이었다. 여자 하나를 받아들인 이유는 호스트 왈, 남자들 중 한분이 테린이여서 여자와 같이 쳐도 되겠다고 했다. 코트는 생각보다 멀리있었고, 한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도착하니 아직 지난주에 내린 눈이 코트 음지에서 녹지도 않고있었다.

테린이라는 그 상대편 남성은 남자 치고는 왜소한 체구에 옷도 그냥 얇은 츄리닝을 입고 있었고, 얼핏봐도 일반 운동화를 신고 있는것 같았다. 서브가 안되는 것은 물론이요, 어느 라인에서 서비스를 넣어야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좀 뭔가 행동이 굼뜬 느낌도 드는데 테린이라 좀 긴장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가 뛰고 움직이고 공을 받으면서 알았다.
양 다리의 균형이 안맞고 약간 절뚝거리고 있었다. 공을 주우러 갈때도 잘 뛰지 못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뛴것 같은데 우리가 보기에는 미세하지만 절뚝거리며 뛰고있었다.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니 뭐라고 할수도 없고, 같쟎은 조언이나 배려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장애인 같긴 하지만, 자기가 뛰겠다고 나왔으니 아는체하기도 그랬다.


그럼에도 그 남자는 스트로크가 자기쪽으로 오면 받아보려고 있는 힘껏 뛰었다. 여기 저기 떨어지는 공을 받아치기엔 움직임을 빨리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가끔 짧은 공이 오면 발리도 곧잘 해내었다. 중간중간 쉴때 보면 얼굴이 이미 발갛게 언상태로 “추워요...추워요” 라는 말을 하였다. 나 역시 춥겠다고 말하면서도 내 작은 옷을 벗어줄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다시 게임이 시작되면 잘 못 뛰면서도 또 뛰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숙연해지다.


그분과 게임을 하는 2시간 내내 나는 숙연해졌다. 어제까지 나의 작은 체구와 굼뜬 운동신경, 늦게 시작한 것을 한탄하고 있지 않았던가. 차라리 운이 나쁘면 운을 탓할 수도 있는데, 나는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 정도밖에 안되니 더더욱 나에게 실망하며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렇게, 누가 봐도 테니스 경기를 하기 어려운 사람도 운동 한번 해보겠다고 나와서 뛰어다니고 있으니 그에 비하면 나는 복에 겨운 것이었다.


그남자 역시 테니스가 좋으니까 나왔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테니스를 하라고, 뛰어다니라고, 더 분발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운동에 관심이 있을꺼라고는 생각 해본 적이 없다. 영하가 넘는 겨울날, 눈 쌓인 코트 옆에서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뛰어가는 저 남자를 움직이게 한 것은 오직 즐거움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운동이 좋아서, 하고싶으니까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적 동기 Motivation..
나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힘,
내 안에서 나오는 내적 동기,
인간에게 이처럼 숭고한 가치는 없다.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따뜻하게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오늘 운동은 뭔가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 어제의 나에게 실망했던 스스로를 위로해주었다. 잘 하지 못해도, 많이 모자라도, 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만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냐. 그리고 내일 또 어리숙하거나 서툰 누군가를 만나게되면 따뜻하게 환영해주리라 다짐한다. 그것이 테니스 코트든, 회사이든, 어느 경기장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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