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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Jan 07. 2023

와호&장룡

영화 다시보기

얼마전 영화 와호장룡을  다시보았다. 2000년에 나온 영화니까 20여년만에 다시 본셈이다. 이안 감독의 영화로 당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고 외국영화로서의 흥행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다고한다.   

20여년전, 영화 흥행 당시 시류에 끌려 의무감으로 가서 본 이 영화에 나는 몹시 실망하고 나왔다. 별다른 기승전결도 없고 스토리도 없는 무협영화를 영상미와 카메라 테크닉으로 카바한 얍삽한 영화 같았다. 주윤발이 누구던가. 이전의 영웅본색에서 그가 보여준 장엄미, 영웅 같은 행동, 멋진 대사, 박진감 넘치는 전개, 죽다가 두번 세번 연이어 살아나는 모습. 와호장룡 이전의 거의 모든 무협영화를 장악했던 홍콩 본류의 무협영화는 현실감은 떨어져도 오히려 있었으면 하는 인간의 희망을 투영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홍콩영화에 익숙해져있던 나, 를 비롯한 모든 중국, 홍콩 영화 팬들에게 2000년에 중국이 거의 중국인으로 구성해 야심차게 만든 무협영화 와호장룡은 얼핏 빈약한 스토리를 장엄한 영상미로 덧칠한 영화 같았다. 혹은 중국이 스스로 중국적인 것에 대한 서사보다 동양적 영상미와 신비감으로 승부를 보고자 한것인지도. 그렇게 20여년전 여름, 확실한 기승전결과 권선징악으로 잘 짜여진 홍콩영화에 길들여져있던 나에게 와호장룡은 저 아래 얄팍한 감상평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2021년 추석 때 사무실에 나와야해 무료하던 끝에 우연히 와호장룡을 다시보게되었다. 다시본 와호장룡은 무협영화의 모습을 한 전혀 새로운 사랑영화였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영화였다. 각자가 자아를 찾으려 애쓰는 인간들의 영화였다. 20년전엔 무협영화라고 생각했기에 주인공도 당연히 주윤발과 양자경이라고 생각했다. 무협영화라고 일단 이름 붙이고 보니 무술이 영 시원챦아 보였다. 장쯔이는 그냥 얼굴만 앞세운 지나가는 검객이었다. 두번째 본 영화에서는 장쯔이야말로 주인공 장룡 Hidden Dragon 이었다. 장쯔이가 역할을 맡은 교룡은 유명 장군인 아버지를 따라 서역을 돌아다녔다. 그때부터 교룡은 서역의 황량한 사막, 힘든 고난을 즐겼다. 커서도 떠돌아다니는 협객이 되고싶어했고 기회가 오자 도둑질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냉큼 낚아챈다. 신분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모험하는 협객이 되고싶은 여자. 철모르는 소녀같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통제받지 않는 아가씨,... 와호장룡에 대해 쉽게 평하기 어려운 이유가 권선징악이 없고, 도덕의식도 흐릿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룡은 누군가의 원수를 갚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더 위하는 것도 아니고 고매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의 꿈을 좇아 주위의 모든 것을 위험에 빠트린다.

한편 와호, 즉 웅크린 호랑이에 해당하는 주윤발이모백은 교룡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재능을 보고 제자가 되라고 간청한다. 사실 원래 교룡에게 무술을 가르친 스승은 사악한 무술, 즉 흑사술을 쓰는 자였다. 마치 암흑 속에서 교룡을 키웠는데, 이제 주윤발이 명예로운 무술의 세계로 이끌려는 것이다. 그러나 교룡은 이모백을 경외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또한 주윤발은 평생 친구의 약혼자인 양자경 사매를 애모했으나 친구가 죽자 되려 애틋하게 마음을 감추고 살아온다. 둘은 그렇게 평생 고백을 못하다가 죽기 전에야 고백한다. 주윤발이 사매에게 "나는 평생 인생을 허비했고. 오직 당신만을 사랑해요. 당신곁에 있으니 죽는 길이 덜 외로울것 같아요." 장쯔이가 맡은 교룡... 무모하고 이기적인 여자. 주윤발은 결국 제자로 여긴 교룡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주윤발과 교룡의 사랑이야기도 아니지만, 주윤발은 자신이 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네사람의 이야기를 다 전개하고 나서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마지막에 소원을 비는 동안 교룡 본인은 직접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원하는 바를 행한다. 교룡은 본인의 이기적이고 끈기있는 행동, 남의 희생과 도움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나서 홀로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이것도 자신의 꿈을 이룬것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이 장면이 원죄를 많이 지은 교룡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절벽을 뛰어내린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달리 해석한다. 교룡은 궁극의 경지에 오른 무림고수만이 된다는 신선이 되어 자유롭게 강호를 넘나들고 싶어했다. 교룡은 죽음으로써 신선이 되었을까?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장쯔이야말로 교룡 역에 가장 잘맞았다. 가벼우면서도 발랄하고, 남 생각은 하지도 않는 청년같은 사람. 아직 대배우도 아니고 이제야 떠오르던 신예 장쯔이가 아니었으면 저 역할을 소화하지 못했을것 같다.

두번을 보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마지막 장면이 아른거린다.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초초히 뛰어내려 갈 때의 그 자유로운 자세... 우리가 다 살아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그와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모습. 다시 본 영화가 완전히 다른 울림을 준 것은 내가 달라져서인가? 아니면 예전에 내가 제대로 못 보아서인가? 어쩌면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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