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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행의 위로

- 바보는 방황을 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by 토마스 풀러

by 걷는사람

가난해도 부지런하다.


파타고니아 피츠로이봉을 끼고 형성된 아르헨티나의 엘찰텐 마을에서는 가게들 대부분이 아침 8시부터 문을 열어 밤 12시까지 영업하고 있었다. 해질녘, 버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불렀더니 5분만에 바로왔다.

산아래 엘찰텐 마을

문득,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규율이 없어서 가난하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가게 문도 일찍 닫거나 맘대로 아무때나 열고 닫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글도 읽은 것 같았다.


그것도 편견이었다. 대개는 가난할수록 부지런할 수 밖에 없다. 아침부터 뭐라도 팔려면 일찍 일어나 빵을 만들고 가게문을 열어야한다. 한국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 일감이라도 따려면 새벽부터 소개업소앞에서 줄서기해야한다. 기다리는 중에서도 좀 괞챦고 건장해 보여야 겨우 일감을 따지 않던가. 가난한데 외양은 또 건장해보이고 말쑥해 보여야 한다니...


가난한데 왜 부지런하지? 부지런한데 왜 가난하지? 부지런하면 가난하면 안되지 않나? 아니다. 가난과 부지런함은 상관 없다. 피츠로이 봉을 향해 하기전 새벽과 한밤중까지 불켜진 가게와 택시기사들을 보니 애잔했다.


산정상 오르는데 뭐가 그리 거창했던가.

새벽녘에 길을 나서 남미의 최고봉 피츠로이로 가는 길에 본 사람들은 아이, 학생부터 청년, 노년까지 다양하고 차림도 다양했다. 피츠로이를 정말 가볍게 여겨 올라온것 같은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힘들게 공들여 온 사람도 있는 듯하다. 특히 한국처럼 시차 -12시간의 지구 반대편에서 온사람들은 대부분 어느정도 돈도 모아야하고 시간이 되어야 할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우리 같이 멀리서, 일하다 중간에 큰맘먹고 휴가를 내고 임기응변이긴 하지만 나름 계획도 짜서 온 사람들에겐 이게 참 거창하다. 뭔가 대단한 소원도 빌어야할 것 같다. 여기 남미 칠레나 아르헨티나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여기 오는게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From Mild to Wild 온순함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으로 From tammed to untammed

안데스 산맥 정상에서 보는 빙하 호수


버킷리스트를 너무 아끼고 미뤄두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진짜 원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인내하고 아껴두며 살아온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곳은 꼭 대단한 시기에 와야 하는 건 아닌것 같다. 우리가 뭔가에 성공하고 나서야, 다 이루고 나서야, 혹은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는 건 아닌것 같다.


사실은 이런 여행이야말로 진짜 우리를 찾기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성공한 다음에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오는 여행이 아니라, 살면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한 여행이 먼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위로

어릴 적에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훗날 고난에 닥쳤을때 의연하게 이겨낸다고 하지 않던가. 이는 아마도 다양한 경험에서 고난을 이겨보기도 했고, 고난 끝에 기회와 좋은 날이 오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상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 피츠로이봉으로 가는 가파른 돌길 언덕에서 오가는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의 이 행로가 고난의 파고를 겪고 온 사람에게는 위로를, 아직은 청춘인 젊은이에게는 훗날 반드시 직면하게 될 고난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할 용기를 주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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