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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Dec 02. 2021

이장의 조건

우적동에 살다 (3)

이장 Y연임  4년  이장 임기가  끝이 났다.

마을 이장 임기는 2년인데 재신임되어 4년을 채웠다.

 사내마을에서는 Y 임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던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을 둘러싸고 갈등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사내마을에 마을 태양광 발전소 건립이 무산된 이후부터다. 몇몇 사람들이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은 우적동만을 위한 사업으로 몰아붙이며 이장선거를 마을 간 감정싸움으로 만들고 가고 있었다. 사내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같은 동네 사람인 Y가 다른 동네인 우적동편만 든다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이장선거를 앞두고  마을과 작은 마을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아이 이장은 사내 사람임서 어쨌다고 우적동 편만 든단가? 먼 일을 라믄 사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제?"

 "그런께 말이여. 먼 5억짜리 보조사업을 한다고 허디 우적동다가 회관 짓고 사내다 가는 아무것도 가져올 것이 없다고 허드란께. 사내다가 태양광인 멋인가  헌것은 정부에서 안된다고 했다등만. 이참에 이장 바까야써! 맨날 회의 헌다 교육 헌다해갖고 사람들만 귀찮게 허드만 결국 죽 쒀서 개 당께."

한때는 사내 이장을 여러 차례 집권했던 전 이장 k가 불만감을 사사건건 부추겼다. 이번 이장선거에도 K는 출마하려 했으나 자신에게 마을 민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접어야 했다. 대신 S를 지원하고 자신이 개발위원장을 하기로 S와 합의했다.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이장선거를 둘러싸고 마을권력 교체와 함께 새로운 마을 권력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동안 Y가 진행해온 마을사업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사내마을  편에 서는가 여부였다.

 

 이장선거가 있기 전 가을부터 S는 자주 마을회관에 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사며 이장에 뜻을 두고 있음을 피력해왔다. 이장은 면사무소나 농협에 나가면 대우가 달랐다. 내심 면사무소의 젊은 직원들이 이장님 찾아가며 인사하는 게 너무도 부러웠다.

 "나도 인자 내려온 지 십여 년 되얐은께 이장 한번 해볼라요. 나는 Y 처럼은 안헐라요. 이장이 사내 이장 이제 우적동 이장은 아니 제라. 그동안 개발위원장을 해왔지만 이장을 해야 먼 일을 허겄드만요"

 S는 이장에 포부를 밝히면서 노골적으로 마을 안에서 커져만가는  마을 사이 감정을 부추겼다. 마을사업을 위한 공약이나 방향등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마을 이장 활동에 공약이나 방향을 제시한적도 고민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장은 주민대표지만 그 권한은 면사무소가 주었기 때문이다.

 "아 내 말이 자네 말이여, 동네가 질서가 없단께. 요새 우적동 젊은 애들이 너무 설치고 댕긴당께. 아조 기분 나빠 죽겄어. 이참에 자네가 동네 질서를 제대로 한번 세우소야'

 마을 노인회장이 거들었다. 노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모든 마을의 대부분 사업은 경로당으로 명명된 마을회관에서 노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사내마을은 젊은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응당 마을 일은 노인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렇지만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이 추진되면서 마을로 돈이 내려오는데 노인들의 역할이 배제된 것 같아 몹시도 화가 났다.

 '이번에 이장 잘 뽑아야 써"

 회관에서 S를 비롯한 남정네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떴다. 서울서 살다 귀촌한 사람이 오늘 남정네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남정네들이 회관을 나가자 남해 떡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장을 우적동다가 안주는 것은 맞는디 S 저것이 잘 헐랑가몰라. 어그제도 술쳐퍼묵고 지랄을 허드만. 술처묵으면 볼만해. 씨벌 놈이 술만 처먹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지랄 염병을 헌당께 술처퍼먹으면 개 잡놈이 따로 없어"

 "긍께 나도 들었네야.  그랬다등만 염병 문딩이 새끼여 그래도 Y가 S보다 똑똑허고 얌전허제. 술도 안 묵고, S는 애기가 아는 것도 별로 없어. 나도 그것이 걱정되드만. 나도 S보다는 낳은 것 같은디 이참에 내가 이장선거에 한번 나가불까?"

 "그래라 그래, 아이고 염병 헐년! 누가 니년 나가믄 찍어준다고 허디야?"

 "웃자고 헌 소리 갖고 염병 허네. 먼 말을 못 하게 허네 씨벌년이"

  "아이 쌈 허지 말고 걱정 헐 것 없어. 인지까지 사내 구석 이장들 봐봐. 다 그놈이 그놈이제. K 봐 이장 허면서 지가 멋했당가 맨 즈그 집 일이나보고 동네다 멧동만 끓어들이고 그랬제. 이번에도 K가 지가 헐란다고 처음에 그랬드만.  K는 안되야. 이장은 면에서 시키는 대로만 허믄되제 머 그것도 헐라고"

 "이장이 먼 별것이 간디 면직원 말만 잘 듣고 방송만 허믄 쓰제 별것 없어. 인지까지 사내 이장들 보소"

 "그라까?근디 우적동가 인지까지 회관이 없었은께 이참에 짓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디"

 "그런께 집이는 안되야. 먼 소리여! 우적동 몇집되도 안헌 것다가 멋헌당고 회관을 짓는당가? 글고 인지까지 회관 없이도 잘 살았음서 먼 인자 와서 회관 타령 헌당가? 아조 정부 돈이 썩어 문들어졌당께"

  "자네 말도 맞네. 나는 또 동네가 시끄라질까봐 그것이 걱정 이제"

 "먼 시끄럽고 말 것도 없고 여그는 사내여.  구석지 우적동이 먼 상관이당가?"

 "성품이나 자질로 보자면 Y가 S보다 낫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제. 그런디 Y는 두번했은께 이참에는 S를 시켜줘야 맞제"

 아낙들의 얘기는 그칠 줄 모르고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장을 뽑는 조건은 마을의 발전과는 무관했다. 또한 누가 이장을 해도 마을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이장을 하려면 무조건 사내 편이어야 했다.


 매일같이 마을회관에서는 이장선거와 관련된 말들이 돌았다.

 큰 마을인 사내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장은 무조건적으로 사내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원칙임을 확인했다. 작은 마을인 우적동이 소외되거나 낙후된 문제당연하게 여겼고 도통 관심을 갖으려 하지 않았다.


 사내 대다수 사람들은 이장의 조건은 마을을 이끌어갈 능력과 자질이 아니고 이해가 안 되는 사내 편이라는 이기심이었다.


 처음부터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왔던 Y는 사업 마무리를 본인이 할 수 있도록 한번 더 지지를 호소했다. 이미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 사이 감정이 심화되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진즉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무언가 모의를 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Y가  들어가는 순간 달라진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고 자신이 오기 전 오간 얘기들을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고 있었다.

 이장선거에서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추진했던 마을사업이 좌초될 것 같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또 한 해가 속절없이 무정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장 선출을 위한 마을 동계가 진행되었다. 모처럼 마을회관은 윗마을 우적동사람들까지 대거 참여하여 북적였다.

 "그럼 지금부터 사천 2리 마을총회를 시작허겄습니다."

 노인회장의 사회로 마을총회가 시작되었다.

 마을에서 자체 예산권을 쥔 이장 부녀회장 노인회장으로부터 한해 마을사업에 대한 결산보고가 진행되었다. 한해 마을사업에 들고 난 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매해 그렇듯이 큰 문제 없이 승인되었다.

 "내년 내후년 마을을 이끌어갈 이장을 뽑겠습니다. 투표하기 전 다시 물어볼랍니다. Y와 S 아직도 합의가 안되았는가?"

 노인회장은 선거로 이장을 뽑게 되면 마을 민심이 쪼개져서 후과가 남기에 합의를 재촉했다. 말은 합의 추천이지만 대세가 S가 대세이기에 Y가 자진사퇴할 것을 종용하는 말이었다.

 "선거합시다 "

Y가 짧고 단호하게 의지를 표했다. 그래도 마을 민심에 자신의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반영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친족들 표도 기대했었다.

 "그러믄 후보들 정견 발표를 듣고 투표 허도록 헙시다."

 "먼저 Y 나와서 말해 보소"

 "지난 4년 동안 부족한 저를 믿고 따라주신 마을 어르신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름대로 마을 발전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4년 동안 추진해왔던 창조적마을 만들기 사업이  정부로부터 어렵게 선정되어 앞으로 2년간 결실을 맺습니다. 제가 시작했기에 제가 마무리 헐 수 있도록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S 나와서 말해보소."

 "Y는 지난 4년 동안 이장을 해왔습니다. 동네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3선은 안된다고 생각 헙니다. 그리고 Y나 우적동 사람들이 걱정하는 창조적 마을사업은 중단하지 않고 제가 잘 추진토록 헐랍니다. 사내서 약속했던 우적동 회관 건립 지원 또한 약속대로 할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두 후보의 정견발표가 끝이 나고 마을 주민 전체의 투표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결과는 예상대로 S의 신승으로 끝이 났다. 큰 마을과 작은 마을 사이 지역감정을 조장한 S의 선거전략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창조적 마을 만들기 위원장과 이장의 방향이 나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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