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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Dec 03. 2021

약속을 뒤집다.

우적동에 살다 (4)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다.

연일 시골마을에 겨울 한파가 매섭게 몰아쳤다.  

 S가 이장에 당선되고 얼마 후 개발위원장 K는 이장 S를 비롯한 몇 사람을 회관으로 불렀다. 향후 마을 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사전 의하기 위해서였다.  

 

“어이 이장 자네 똑바로 해야 돼야.

 회관 부지 매입 헌다고 우적동서 돈 보태주라고 허면 절대 주면 안 돼야.  

우적동 일은 우적동 놈들 알아서 허라고 그래. 알았는가?”

 K는 이장 S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쇄기를 박았다.


 전이장 Y는 우적동 마을회관 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과 관련해 마을회의를 통해 다음 년에 마을 적금을 타면 지원하기로 약속했었다. 그 자리에는 현 이장 S를 비롯한 K 그리고 노인회장과 많은 마을 사람들이 참석했었다.

“아니 그래도 작년 회의 때 올해 마을 적금 타면 주기로 약속을 허지 안 했소? 사내 회관 지슬 때도 우적동 사람들도 돈을 보탰고 큰돈도 아니고 4백 인께 봄에 마을 적금 타서 조 부립시다.”

 이장 S는 소주를 들이키며 답했다. 자신도 당시 마을회의에 참석해서 4백만 원 지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멋해? 허허 이 사람이 그 돈이 먼 돈 인디 우적동다가 줘?  

자네가 만든 돈인가?  

그러고 약속은  이장 J가 했제 자네가 헌것이 아니잖해?  

그런께 줄 필요 없어.  

글고 우적동 놈들이 머시라고 하면 동네 회의서 못준다고 허기로 했다고 험은써”

 이번에는 노인회장이 거들었다.

노인회장은 얼마 전 새벽 전화 사건으로 한바탕 소란이 난 후로 더욱 감정이 격해 있었다.  

“영호가 카마히 안 있으것인디라?”

이장 S는 무엇보다 나의 불같은 성질이 걱정이 되었다. 분명히 따지고 들것이고 약속 파기의 책임을 물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시 소주잔이 돌았다.  

“S씨 이장 아니여? 이장이 멋허라는 이장이여? 동네 사람 대표로서 일하는 것이 이장 아니여? 우적동 이장이여? 사내 이장이여?”  

 이번에는 노인회장 부인 미자가 몰아붙이며 나섰다.

 미자는 나를 괘씸하게 여기고 있었다. 남편이 새벽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것 때문이다.  

“그거야 맞는 말인디 글다가 쌈 날 것인디?”

“5억짜리 사업을 갖다가 사내 다가는 한 푼도 안 주고 다 우적동으로 갖고 가는디 우리가 헌디 거기다가 돈을 주겄는가?”  

K는 다시 한번 쇄기를 박아 강조했다.  

“우적동은 이제껏 회관도 없었은께 회관 지으라 하고 나머지 돈은 사내다가 쓰는 쪽으로 허믄 어쩌겄소?”

 이장 S가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했다.  

“우적동 주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된다우?”

“한 일억 5천 정도 된 갑던디?”

“자네는 이장을 안 해봐서 멀 몰라. 그 돈은 머 거저 준당가? 먼일을 헐라믄 부지를 제공해야 하는디? 자네가 땅을 어떻게 마련 헐런가?” 

K는 자신의 오랜 이장 경력을 내세워 이장 S에게 따지듯 물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이참에 동네 쓰레기장을 깨끗이 밀어 버리고 어디 한디로 옮겼으믄 좋것는디라이?”

 쓰레기장이 마을 한가운데 있다 보니 미관상에도 안 좋고 그 보다 문제는 마을 사람들의 쓰레기 무단투기가 근절되지 않아  큰 골칫덩어리였다. 매해 쓰레기장 관리 문제로 면직원들로부터 지속적인 지적을 받고 있었다. 분리수거가 안 되고 아무렇게나 쓰레기장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생각 이사 좋네만 동네 땅이 없는 디 땅을 어따다 사고 땅을 살라믄 돈이 있시야제, 자네가 돈 맹글 먼 좋은 수라도 있는가?”

“한 2천만 원 있으믄 땅 못 사겄소, 우적동 같이 걷어야 쓰겄제라?”

“허허 자네 미쳤네이. 자네는 이장 처음이라 사내 사람들을 잘 모르구만. 누가 돈 내라고 믄 바로 돈 낸당가?”

“2천이 누집 개 이름이요. 사내 사람들은 이천은 커녕 단 만원도 동네일에 돈 낼 사람 없어”

“우적동은 집집마다 백만 원씩 걷었다고 헙디다. 근디 일을 헐라고 허면 돈 안겄고 어떻게 허겄소?”

우적동허고 사내는 비교가 안돼아. 해보소. 내 장을 지지네. 암도 안내. 소용 없단께”

K는 말을 해놓고도 답답했다. 왜 우적동은 가능하고 사내는 안 된다는 것인지? 우적동은 작은 동네인데 큰 동네인 사내는 그렇지 못하는지. 가구수로는 사내가 다섯 배도 많았다.  

“그믄 어찐다요?”

“그런께 내가 생각해 본께 헐 것이 없드랑께? 몇 년 안됐았은께 몰라 냇갈 정비나 다시 해주라고 허믄 해줄란가?”

“몇 년 되도 않았고 멀쩡한 냇갈을 멋헌디 또 고치라고 허겄소? 사내는 거저 줘도 못 묵구마이”

“이장 노릇 허기가 쉽당가 이 사람아. 글고 사내 사람들은 돈 내라고 허믄 난리쳐부러?”

“일단 동네 회의를 해보십다?”

“자네가 이장인께 자네 알아서 허소?”

 작년 우적동 사람들까지 참석한 마을회의에서 사내마을 차원에서 우적동사랑방 부지 매입 시 4백만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었다. K는 일단 우적동에 사내마을 차원으로 돈을 내는 것에 쇄기를 박았지만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과 관련해 사내마을에서 할 수 있는 뾰족한 수를 만들지 못했다.  

 


며칠 후 사내마을 회관에서 이장 S가 소집한 마을회의가 다시 열렸다.

“동네 양반들 다 모였은께 인자 시작헐랍니다. 앞으로 마을사업으로 정부에서 5억이 내려오는디 그중에서 2억 5천은 우적동 회관 짓는데 쓰고 나머지 1억 5천이 남는다고 허는디 어찌게 했으믄 좋겄소?”

 1억 5천만 원을 어떻게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사용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마을회의다. 이번 회의에는 우적동사람들은 참석하지 않고 사내마을 사람들만 모였다.  

“이장 자네가 먼저 먼 말을 해보소? 어찌게 허믄 쓰겄는가?”

 노인회장이 회의에 운을 떼었다.  

“내 생각에는 동네 쓰레기장을 이참에 치워 불고 딴디로 옮기면 좋겄는디라이?”

“글믄 땅이 적당한 놈이 있어야 쓰겄구만?”

“그런께요. 땅이 적당한 놈이 있는디 살라고들믄 한 2천 들겄드라구요?”

S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마을 부자로 소문난 대운 씨가 입을 열었다.

“좋아 내가 이참에 땅사는디 천만 원 낼라네. 나머지는 동네서 자네들이 걷어보소? 동네로 봐서 좋은 일인디 그까짓 것 못 내겠는가?”

 마을에 부자인 대운 씨가 무슨 일인지 큰 결심을 했다. 조카가 추진하는 일도 돕고 이번에 마을에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싶었다.  

 천만 원을 누군가 낸다면 대략 70호 잡고 가구당 십오만 원 정도면 쓰레기장을 옮길 부지를 사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얼마 전 작은아버지를 만나 간곡히 부탁했다. 사내 사람들의 돈문제와 관련한 고질적 습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 채 침묵했다.  

“대운 제가 천만 원 낸다고 헌께 가구마다 십오만 원씩 걷으믄 해보겄구만요?”

이장이 가구당 모금액을 제시하고 사람들 눈치를 살폈다.  

우적동 마을회의에서는 가구당 자발적으로 백만 원 이상 모금을 결의했다. 우적동 마을회의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모두 다 모금에 대한 답을 회피했다. 이장과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먼 말 잠 해보 쑈.”

이장 S는 재촉했다.

“사내는 돈 낼 사람들 없어. 이장 먼 일을 헐라면 될 일을 갖다가 붙여야제?”

K는 오히려 이장을 몰아붙였다.  

돈을 내겠다던 작은아버지 대운 씨는 혀를 차며 일어섰다.  

“허허 이 크나큰 동네서 돈 천만 원이 돈인가? 내가 천만 원 낼텐께 나머지 내라는디? 그것도 못해? 그럼시로 우적동 애들만 머라고 허는가? 우세스럽구만 허허

 

“그러면 그냥 쓰레기장 철거라도 헐라요?”

 작은아버지 대운 씨가 나가고 또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이장 S는 절충안을 다시 제시했다. 쓰레기장 옮기는 것은 포기하고 철거만 하자는 것이었다. 쓰레기장 철거하는 데는 돈 2천만 원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소”

“우적동놈들은 차말로 나쁜 놈들이구만. 딱 즈그 헐 것만 하고 사내는 어찌라고?”

K가 또다시 화살을 우적동으로 돌렸다. 누워서 침벧기다.  

“사내는 큰일이구만?”

회관을 나서며 마을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지고 나갔다.  

 


“못 준다면 못 주는지 알어”

 일하다 이장 S에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통한 일방적 약속 파기였다.  

“아니 그런께 왜 못준다는 거요? 작년 마을회의에서 분명히 약속하지 않았소?”

 이장 S가 약속을 파기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런 식으로 전화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때 일이고 지금 마을 사람들이 못준다고 그런디 내가 어떻게 준다고 허겄는가?”

작년 말 이장 선거할 때 머라고 했소? 마을 만들기 사업에 적극 협조하기로 한 거 아니요?”

“나도 그럴라고 했는디 동네 사람들이 우적동다가 돈 주는 것은 전부 반대허는디 내가 어찌게 허겄는가?”

이장 S는 지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회관 부지 매입을 위한 목표는 벌써 채웠기에 사내마을 차원의 지원이 안되어도 큰 문제는 안되었지만 약속 파기로 인해 두 마을은  갈수록 멀어져만 갔다. 30년 전 사내마을 회관을 지을 때 우적동 사람들 대부분이 모금에 참여했다. 상부상조의 도덕적 예의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속을 뒤집은 이장 S에게 책임을 묻자 감정이 격해진 S로부터 막말이 날아왔다. S는 나보다는 연장자였지만 집안에서는 학열이 낮아서 막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날 밤 시내 마을회관은 난리가 났다.

 작년 이장 Y를 비롯해 우적동 젊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이장 S를 부추겼던 마을 노인네들은 꼬리를 감추고 숨었고 이장 S만 약속 파기한 책임으로 개망신을 당해야 했다.  

“앞으로는 우적동 일에 방해나 간섭 절대 안 할라네, 미안하구만. 그러고 앞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힘닿는 디까지 도울라네” 한바탕 소동 후 이장 S는 다시 약속했다.  

 약속을 파기한 책임을 져야 했다. 자신의 무능이 너무도 창피스러웠다. 그러면서 사내마을 사람들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공짜로 나누어주거나 공짜로 놀러 가는데만 신경을 쓸 뿐 마을 공동의 공적사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또 한편으로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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