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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Dec 01. 2021

들러리

우적동에 살다 (2)

 우적동에 회관을 짓고 마을을 마을답게 만들기 위한 목표를 두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였고 결과로 사내 우적동마을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이 시작되었다. 정부에서 지원되는 5억 원의 재정으로 마을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이것이 심사를 통해 선정되고 나면 이 그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서 추진되는 일정이었다.

 

 이장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마을사업 추진위원장이 되었다. 마을사업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여러 차례 마을회의가 진행되었다. 퍼실리테이션 회의라 하여 전문적인 회의 진행 업체에서 퍼실리테이너라는 회의 진행자들이 나와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조를 나누어 회의를 진행하였다.  

 첫 번째 회의에서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회의에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비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마을이 보다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들 한결같았다.  

“엄마, 마을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으면 좋겠는지요?”

“난 몰라,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야제”

“글제 우덜은 먼말이 먼말인지 영 모르겄네. 멋을 허믄 좋을까?”

“글믄 5억원 사내다가 준당가?”

“5억원을 그냥 드리는 것은 아니구요?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하는데 지원을 해주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마을공원을 만드는 것 같은 거죠?”

“마을공원, 글믄 땅이 있어야 쓰겄는디? 마을 땅이 없으것인디? 땅사는데도 돈 주는가?”

“아니요. 땅은 마을에서 제공하셔야 합니다”

“글믄 어렵것는디?”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마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에 빠져 들었다.  

“딴 동네서는 먼일을 했다요?”

“마을 공유 건물을 짓거나 환경정비나 마을공원 조성 같은 사업을 했습니다.”

 이날 사업대상으로 제안된 내용에는 회관이 없는 우적동 마을에 사랑방을 짓자는 것과 이내수신부묘소 성역화사업, 사천제 주변 둘레길 조성, 마을태양광 발전소 건설, 마을쓰레기장 이전 등의 사업이 제안되었다.  

 

 수차례 회의를 걸쳐서 1차 제안 안으로 우적동 마을 사랑방 건립, 사내마을에 마을태양광 발전소 설립 문제가 확정되었다.  

 마을 사업계획안을 제안하고 며칠 후 군청 지역개발과 담당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위원장님 우적동 사랑방 건립은 여차저차 어떻게 해보겠는데 마을태양광 발전소 설립은 규정에 할 수가 없다고 되어 있답니다.”  

“아니 마을에 정말 필요한 사업이 마을태양광 발전소라고 생각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조?”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지을 수 없다고 규정이 그렇다고 합니다. 죄송하네요?”

 주민화합이 부족한 사내마을을 위해서 마을 앞으로 존재하는 3백 평 부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어 여기서 얻어지는 소득으로 마을공동급식 등의 마을복지사업을 해보려고 만들어낸 안이었다. 애초부터 주민들의 요구나 현장의 처지와 조건은 이 사업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또다시 마을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런께 앞전에 우리가 5억원 갖어다가 우적동에 회관 짓고 나머지 돈으로는 마을땅에다 태양광 헌다고 계획 안했소이. 근데 군에서 못헌다고 허요. 법으로 못헌다고 헌께 다른 사업을 하라고 하는디 먼 사업이 좋겄소?”

“동네사람 생각보다 정부한테 심사를 받아야 쓰는가 보구만. 먼 사업을 헌다고 허믄 허라고 헌당가?”

“우덜이 낸 의견은 쓸데가 없구만 금시로 멋헌디 회의는 그렇고 많이 했당가?”

 들러리가 된 마을회의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름 사내마을에서도 우적동 사랑방 건립과 태양광 발전소로 사업이 양쪽 마을 사이에 공평하다고 여겼는데 사내마을 사업을 못하게 되자 반발은 더욱 커졌다.  

 여러 의견이 오갔지만 사내마을에서 마땅한 사업을 찾기가 어려웠다. 계속 부지 문제가 꼬리를 물었다.

“저수지 주변에 둘레길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장기적으로 이내수신부묘소 성역화사업을 한다면 마을에 좋은 자원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여러 해 전부터 마을발전을 위해서 이내수신부묘소 성역화 사업을 두고 나름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제안에 사내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사천제는 우적동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사천제를 기준으로  큰 마을 사내와 작은 마을 우적동을 지리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다시 마을 임원진이 모여 의견을 나누었지만 뾰족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이장은 위원장인 나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군청 직원 말에 의하면 사업이 확정되고도 이후 변경이 가능하니 우선 사업이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군청 지역개발과 직원과 의견을 교환해 우적동 사랑방 건립과 사천제 둘레길 조성사업을 마을사업계획으로 확정하고 사업타당성에 들어갔다.  

 타당성 조사에서 또다시 변수가 만들어졌다. 우선 우적동 사랑방 건립을 하려면 마을 부지가 있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둘레길 조성사업은 토지 소유주들의 토지사용승낙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적동 사랑방 부지 문제는 내가 맡고 사천제 둘레길 토지 소유주 설득 문제는 이장이 맡기로 하였다.  

 

 우적동 마을의 공적 목적의 2차 회의가 소집되었다.

 2차 회의에서도 우적동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회의에 임했다.  

“우적동 사랑방 건립을 하려면 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부지를 사려면 2천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마을 중앙에 빈 집터가 있고 주인이 마을에 팔기로 하였습니다.”

“큰돈이구만!”

“회관을 짓을라믄 땅 사는 돈 말고 별도의 돈도 필요하것는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 2천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에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부지를 사야 한다고 봅니다. 출항한 향우들에게도 모금을 하고 사내마을에도 협조 요청을 하구요”

“그래서 마을에서 제일 막둥이 인 저부터 우선 백만 원을 내려합니다. 어르신들은 알아서 성의껏 모금에 동참해 주십시오!”

 내가 모금을 위한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회관 지을라면 돈 냅시다. 나도 백만원 낼라네”

“나는 형편이 쫌 그래서 50만원만 낼랍니다”

“저는 2백만원 내렵니다. 우적동에 회관이 생긴다는데 좋은 일이제라”

이렇게 저렇게 작게는 50만 원에서 2백만 원까지 16호 마을에서 자발적 모금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한 달이 안 되어 2천만 원 목표를 채웠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간절함이 힘으로 모아졌다. 나름의 재력이 있는 출항인 들을 찾아 연락을 해서 적극적인 모금은 계속되었다. 이후로도 수많은 마을 향우들이 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사내마을에는 우적동마을의 모금 소문이 벌써 확 퍼졌다.

회관에 모인 늙은 아낙들은 우적동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께 거시기 거 우적동은 이번에 회관 짓는다고 2천만원 모았다고 그러데?”

“그런께 몇집 되도 않헌디 대단해, 사내는 동네만 크제 먼 힘이 없어?”

“거져 준다믄 모르까 사내 사람들은 누가 돈 안내?”

“그믄 집이가 좀 먼저 내보소”

“니가 먼저 내봐라 이년아 글믄 나도 낼란께”

“내가 먼돈이 있당가?”

“우적동은 젊은 사람들이 짱짱해. 젊은 놈들이 나서서 앞장서 버린께 먼일이든 해불제”

“근디 어째 우리는 안될까이?”

늙은 아낙들은 답답함과 부러움과 시기심을 연심 품어내고 있었다.  

 

 이장이 맡았던 사천제 둘레길 조성을 위한 토지사용 문제는 난관에 부딪혔다. 다섯 명 산 소유자 중 두 사람이 결사반대를 했기 때문이다. 둘레길을 만들면 산의 재산적 가치가 하락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되면 토지사용 승낙을 끝까지 거부했다.  

 

 우적동사랑반 건립 부지 문제는 매입을 통해 해결되었고 반쪽짜리 둘레길 사용승낙을 바탕으로 마을계획 발표와 심사절차에 들어갔다.  

 군청 지역개발과 직원들과 함께 대전에 올라가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내마을사업계획 심사를 위한 발표회에 참여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었고 사내마을에 이장도 바뀌었다. 군청 지역개발과 직원으로부터 사업이 심사를 통과해 확정되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기쁨과 함께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몹시도 우려되었다.  

 사업에 착수하는데 둘레길 조성사업이 불가능하기에 변경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사업을 찾지 못했다. 잠재적 두 마을의 분란 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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