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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Nov 30. 2021

팥배나무를 심다.

우적동에 살다. (1)

 십여 년 전 삶의 전부와 같던 농민회를 스스로 그만두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마을 우적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두 합해도 십 호가 조금 넘는다. 아랫마을인 사내마을에 행정구역상으로만 결합된 작은 마을 우적동 마을은 소외되고 낙후되었다.

 마을이 갖추어야 할  마을회관 같은 공적인 기본 시설전무했으며 도로 하천 상수도 통신 등 모든 사회 간접시설들이 다른 마을에 비교해서 너무도 빈약했다.


 산골마을 우적동은 골짜기를 타고 하천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하천은 거의 원시 하천 상태로 장마철 집중호우가 내렸다 하면 범람했고 논과 밭이 유실되었다. 마을 이장에게 매년 정비를 요구했음에도 사내마을 이장은 남 일로 여겼다. 도로는 농로 수준이었고 농로도 곳곳이 포장되지 않았다. 하천에 놓인 오래된 마을 다리들도 문제가 심각했다. 너무 좁고 오래되어 비가  많이 오면 다리로 냇물이 넘쳤다.  너무 좁아서 큰 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 사천제 저수지를 따라 형성된 5백여 미터에 이르는 마을 진입로 옆은 원시림처럼 우거져 곳곳이 시야를 막고 이로 인해 사고위험이 높았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몇 번의 사고가 발생했었.


 그동안 젊은 내가 농민운동을 핑계 삼아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으로서의 무를 방치한 것을 깊이 반성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우적동 마을을 사람 살기 좋은 온기 넘치는 마을로 바꾸겠다고.'


 먼저 사천제 주변 마을 진입로의 시야를 확보하도록 저수지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을 베어내고 진입로 가로수를 새로 심는 계획을 세웠다.

 오랫동안 우적동마을에는 마을 대소사를 의논할 마을회의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독립된 마을이 아닌 큰 동네인 사내마을에 기생하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회의를 한다 하여도 마을 사람들의 협조를 끓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또 상대적으로 마을에서 젊은 몇 사람에게 뜻을 밝혀보았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제까지 우적동에는 마을 공동의 일이란 게 없었고 마을일에 관해서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았기에 관망만  뿐이었다.


 혼자서 먼저 의지를 보이기로 결심하고 엔진톱을 들고 진입로 주변 저수지 방면에 우거진 나무들을 차근차근 베어나갔다. 며칠이면 끝날 것을 기대했던 잔목제거 작업은 그해 겨우내 이어졌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모아져 나갔다. 대충 하다 스스로 지쳐서 떨어져 나갈 줄 알았던 마을 사람들은 나의 끈기에 놀랐다. 결국 한겨울을 보내고 5백여 미터에 이르는 진입로 옆 모든 잔목 제거 작업이 완료되었다. 이를 통해 우적동 마을회의를 소집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왜 나무를 베는지 물어올 때마다 이유를 설명했기에 잔목제거작업이 끝이 나니 당연히 마을회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나의 회의소집 의도에 지지를 보냈고 모든 마을 사람의 참석으로 역사적인 우정동 마을의 공적 목적의 첫회의가 개최되었다.

 '진입로 주변 잔목이 너무 우거져 사고 위험이 높고 경관을 훼손해서 제일 젊은 제가 베어내었습니다. 마을 진입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저수지 주변 청소와 가로수 심기를 함께 했으면 합니다.'

 회의의 취지와 목적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적극적인 지지를 내심 기대했었다.

 '왜 혼자서 마을 사람 동의도 없이 나무를 었는가? 자네가 가로수를 비어갖고 차나 오토바이가 저수지로 빠지기 좋게 되았네'

집안 형님이자 마을 원로인 ㄷ씨로부터 쓴소리가 돌아왔다.

 '아니 먼 일을 라믄 동네서 회의를 하고 항꾸네 해야제, 혼자서 그러믄 못써!'

도 쓴소리를 보탰다.

  사람의 발언으로 회의 분위기가 차갑게 순간 얼어붙었다.

 '아따 길가에 나무 비어분께 훤허니 길이 잘 뵈이고 겁나게 좋드만 먼 소리여? 잘했당께. 젊은 사람이라 다르드만. 고생했어. 회의해서 자고 했으면 집이들이 했겄는가?'

마을에서 제일 연장자이신 ㄱ아짐  지지 발언으로 

 어색했던 회의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아이 고생해서 비어부린께 너무 좋습디다. 인자부터는 회의해갔고 동네 사람들이 항꾸네 헙시다.'

 아제의 지지 발언이 이어졌다.

 '맞어 맞어'

마을 사람들의 지지가 이어졌다.회의장이 화기애애 해졌다.

 '가로수 심을라면 돈이 있시야 쓰겄구만. 그러얼마씩 걷으면 쓰겄는가요?'

 마을 절 보살님이 회의를 더 밀고 나가셨다.

'네 마을에 돈도 없고 허니 가구별로 십만 원씩 걷고 묘목 사서 남는 돈은 마을 돈으로 남겨두면 좋겄습니다.'

  '그러세 그래'

 '인자 우리 동네도 힘을 모타서 좋은 동네로 만듭시다.'

저마다 앞으로 마을이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마디씩을 남겼다.


 마을이 만들어진 후 처음으로 마을 공통의 에 관한 회의가 열였다. 무엇보다 자발적 동의가 큰 힘이었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도 그렇듯이 아무리 좋은 의도의 일도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게 살면서 생겨난 얽히고설킨 감정의 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농경공동체에서 품앗이가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 소통이 잘 안되었다.


 며칠 후 온 마을 사람들이 삽과 괭이 청소도구를 들고 마을진입로에 모였다. 몽탄면 사무소를 통해 지원받은 포크레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뜻을 설명하자 면장께서 흔쾌히 동의하고 나무 심기에 하루 동안 포크레인을 지원해 주셨다.

 사내마을에서도 이장  부녀회장 마을지도자가 대표로 나와 힘을 도왔다.

남자들은 나무를 심었고 여자들은 저수지변의 쓰레기를 치웠다.

 팥배나무 어린 묘목 백주를 오백여 미터 진입로에 나누서 심었다. 저수지변에서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오 톤 차로 가득 나왔다.


 팥배나무를 심고 난 후 마을 사람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나무를  관리해 갔다. 잡초나 칡넝쿨이 얽히면 스스로 제거해주고 가지치기도 알아서 해냈다. 마을 주민이 함께 심은 우리 마을의 나무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서 마을사업에 대한 나의 고민을 설명했다.

 '요새 무안군에서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는데 우리 마을도 참여했으면 좋겄습니다. 소외된 우적동에 회관도 좋게 짓고 하천도 좋게 정비하여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네가 한다면 나이 든 우덜은 따라줌세. 한번 잘 이끌어보소'

 마을 어르신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도 내심 우적동에 기적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길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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