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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Nov 14. 2021

목우암 법천사 가는 길

 무안 기행 아홉 번째 이야기

2021년 9월 무안신안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9월 중순 붉게 물든 상사화 꽃이 약간 바래갈 무렵 몽탄면 달산리를 지나서 승달산에 위치한 목우암과 법천사를 찾았다. 들녘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서 한가로운 가을 정취를 더해주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이 초가을 정취를 더했다. 따사롭게 햇살이 쏟아지고 청량한 가을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등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달산리 승달산입구

 달산리 마을 진입로 끝자락 과거 목포시민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목포시 소유의 5수원지가 있다. 5수원지를 돌아 지나서 천년고찰 목우암과 법천사에 갈 수 있다. 5수원지 아래 편백나무 숲은 캠핑족들과 등산객들로 한창 붐빌 철인데 입구는 굳게 잠겨있었다. 문에는 코로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방역 상 편백나무 숲 개장을 봉쇄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편백나무 숲에서 잠시 쉬어가길 기대했는데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5수원지를 휘감아 돌며 조성된 승달산 숲길로 접어들었다.


 목우암 법천사 가는 길의 매력은 인위적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승달산 숲길은 인위적 개발이 안 되어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행정 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고 특정한 가로수를 심거나 도로를 정비하지 않았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있다. 역설적 의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천연 자연숲길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전국 각지의 오래되고 큰 명승사찰 진입로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승달산은 높지 않으며 험하지 않다. 승달산은 또한 푸근하며 따듯하다. 목우암 법천사 가는 길은 현대인에게 사랑받기 좋은 산책로이며 등산로다. 숲길을 걷노라니 숲이 내쉬는 맑은 공기에 가슴이 트이고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이 와닿는다. 온갖 새들과 풀벌레 소리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킨다. 이 숲길의 가치이며 지향이다. 목우암 법천사로 가는 숲길이 개발되지 않은 데는 목포시 상수원인 5수원지의 영향이 지대하다. 5수원지의 역사는 목우암 법천사의 역사에서 단절의 의미다.


 걷다 보니 5수원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상수원 보호를 위해 설치된 울타리로 인해 자꾸 가려졌다. 철조망으로 인해 답답함이 더해졌다. 단절과 폐쇄감이 들었다. 가시철조망과 불필요한 울타리를 치워내고 자연스러운 보호 울타리로 바뀐 상상을 해보았다. 여기저기 5수원지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위한 포토존과 쉬어갈 쉼터를 설치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시5수원지

 목우암 법천사 입구를 지키는 수호 석장승을 지나 숲길을 따라 목우암으로 향했다. 승달산에는 몽탄면 대치리 총지사터 입구와 이곳에 석장승이 존재한다. 사찰 영역의 상징이며 절을 지키는 수문장인 석장승을 통해 고려시대 융성 번영했던 법천사와 목우암의 거대한 규모가 조금이나 감지된다. 석장승에서 절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원명스님과 오백 제자가 달도에 이른 거대한 사찰의 역사가 그려진다. 목우암에서 가꾸던 차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몇 해 전만 해도 관리가 되었었다. 차밭이 만들어낸 풍경이 좋았기에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계곡 옆길을 지나 숲길을 굽이돌아 삼국시대 천년고찰 목우암에 이르렀다. 목우암은 작고 아담한 암자다. 목우암 법당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왜 이 자리에 천년 고찰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었다.

법천사 석장승

  대학시절 목포대에서 승달산을 넘어 하루재를 지나 목우암에 이르는 산행이 기억났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일중 하나는 동짓날 목우암에서 팥죽을 먹었던 일이다. 그렇게 배고픈 시절은 아니었지만 동짓날 청춘시절의 피로를 풀어주었던 특별한 나눔이 지금껏 기억 한편에 소중하게 남아있다. 겨울 하얗게 눈발이 날리던 날이었다. 승달산과 목우암을 오가며 벗들과 나누었을 ‘조국이내 민족이내 하는’ 청춘시절의 고뇌가 희미하게 소환되었다. 90년대 초 군부독재 하에 ‘조국과 청춘’은 청년들에게 시대정신이며 숙명과도 같았다.


 또 하나의 기억은 중학생 시절 아버지 형과 함께 우적동을 넘어 목우암 법천사 일원에 왔던 기억이다. 아버지를 통해 승달산에 자생하는 나무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배웠다. 또한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법천사 아래 골짜기를 따라 존재했던 거대한 절 마을 이야기가 생각났다. 5수원지를 포함한 골짜기와 그 윗자락에 고려시대 절 마을이 크게 번성했는데 화재로 인해 법천사와 함께 불에 태워져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법천사라는 거대한 사찰 역사의 한 파편이다.   

목우암

목우암을 나와 부도함을 지나 숲길을 따라 하루재에 올랐다. 여전히 하루재에는 한기의 묘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도대체 누구의 묘이며 무엇 때문에 그리 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승달산 봉우리 이곳저곳에는 비슷한 묘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승달산 명당을 찾아 긴 역사 속에 수많은 풍수와 지관들과 명당의 복을 바랐던 이들이 남긴 묘들이다. 몇 해 전 지인들과 등산을 왔을 때 막걸리와 커피를 나누었던 주점은 쉬는 날이었다. 막걸리 한잔을 내심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하루재에서 목대 방향으로 난 등산로는 계단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목대에서 하루재로 오르는 등산로는 가파름이 있어 운동하기에 좋은 코스다. 하루재를 지나 최고봉인 깃대봉에 올랐다. 목포대와 청계면 그리고 신안의 다도해가 멋진 풍광을 펼친다. 승달산의 숲은 세월을 타고 갈수록 울창해지고 있다. 올 때마다 숲은 매력 있게 울창해지고 있다.


깃대봉에서 내려와 발길을 돌려 법천사로 향했다. 목우암과 법천사는 하루재에서 뻗어 내린 고개를 사이로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다. 이 오솔길은 목우암과 법천사를 때로는 하나로 때로는 둘로 나누기도 한다. 승달산을 찾아 등산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선물 같은 오솔길이다. 승달산 등산의 백미다. 오솔길은 법천사와 목우암의 역사를 하나로 연결하며 승달산의 가치를 담고 있다. 삼국시대에 창건된 한국 천년고찰 중 가장 많은 화재를 겪어 던 사찰이 법천사다. 수많은 화재를 딛고 다시 중건된 법천사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1990년에 대웅전이 복원되고 이후 석탑과 범종각이 중건되면서 나날이 법천사는 번창하고 있다.


법천사

 석장승 5수원지를 지나 다시 달산리로 돌아왔다. 돌아오며 개발과 보존을 고민해 보았다. 때로는 방치가 더없이 좋은 보존의 수단이다. 승달산에 최근 등장한 개발행위 중 하나는 골프장이며 다음은 승달산 만남의 도로다. 개발과 보존! 지금 승달산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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