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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Nov 15. 2021

실패의 경험들

흙돼지 이야기(10)

우리가 알고 있는 돼지에 대한 상식은 돼지는 식탐이 많고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돼지는 생각보다 입맛이 까다롭다. 싫어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돼지 사육에서 큰 상처로 남겨진 경험 중 하나는 루핀이다. 루핀은 호주산 야생콩으로 GMO가 아니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부족한 단백질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크게 기대했다.

 쌀겨 보리겨의 단백질을 보충하려면 콩이 필요한데 국산콩은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내기가 어렵고 대두박이라는 콩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는 백% 수입 GMO였다.

 그래서 루핀을 선택했고 2년여에 걸쳐서 급여를 했다.


 최종적으로 루핀이 동절기에만 거식증을 일으킨다는 것을 아주 어렵게 알 수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전에는 루핀을 잘 먹다가도 기온이 떨어지면 콩비린내를 싫어해 아예 먹는 것을 거부한 채 죽음을 선택했다. 며칠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몸이 굳어져 죽어갔다.

 나중에 배웠는데 돼지는 콩 피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데 이 증상이 심하게 발생하는 것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철이라는 것이다.

 2년 동안 수십 마리의 돼지들이 죽어나갔고 돼지 사육은 좌절의 고개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육 초기에 기대했던 먹이 중 하나는 보리순이었다.

보리순 또한 수십 마리의 돼지들을 희생시켰다. 보리순의 높은 철분과 칼슘 등 미네랄에 기대를 걸었다.

벼 육모상자에서 십여 일 동안 보리순을 길러서 돼지에게 먹였다. 문제는 보리가 백 퍼센트 발아되지 못하고 부패한 후 곰팡이가 발생하는데 돼지는 곰팡이 독소를 섭취하면 몇 초 만에 기도가 막혀 죽고 말았다. 보리순 또한 엄청난 좌절감과 경제적 피해를 주었다.


보리겨도 실험 대상이었다. 초기 쌀겨만 먹게 되면서 대부분 돼지들이 지방이 너무 과도하게 생겨 고기의 품질을 떨어트려 판매에 난관이 조성되었다. 그래서 보리겨를 선택했는데 보리겨는 고기를 질기게 만들었다. 보리겨를 먹이면서 고기는 계속 질겨졌고 고객들은 고개를 돌렸다. 판매에 중대 난관이 만들어지고 생계가 심각하게 위협받아야 했다. 결국 보리겨를 극복하는데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절망 속에서도 대안을 찾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었다. 보리를 직접 재배해서 알곡 보리를 먹이는 실험도 진행했다. 알곡 보리 실험 대산농촌재단 연구과제로 채택되어 진행했는데 나중에 너무도 부끄러웠다. 지금도 당시 제출했던 연구논문을 볼 용기가 없다.

 보리는 쌀겨와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지방을 만들었고 지방 또한 바꾸어 버렸다. 우리 돼지 지방의 특징은 굳지 않은 것인데 보리 알곡은 지방을 굳게 만들었다.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좌절의 수렁은 깊고 길었다.


 이 외에도 어분 미역 다시마 미생물 등등 수없는 먹이 실험에서 실패했고 삶은 피폐했다.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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