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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Dec 07. 2021

시기심

우적동에 살다(5)

혹독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지만 온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뒤덮였다. 공공기관에서 추진하던 교육이나 행사는 줄줄이 아무런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연초 창조적 마을 만들기 역량강화 위탁회사와 협의했던 사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여름까지 잠정 연기되었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하던 뜨거운 8월 중순 사내마을회관도 폐쇄 조치가 풀리면서 어렵게 어르신 치매예방교육이 시작될 수 있었다.  

  

 “아이 남해떡 당신은 멋헌디 우적동놈들 도와주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교육에 갈라고 허요?”

 사내마을회관에서 진행되는 어르신 치매예방교육에 참여하려고 나온 남해떡을 당산나무 아래서 기다리던 미자씨가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가며 큰소리로 막아섰다. 이른 점심을 먹고 정오부터 두 시간 동안 당산나무 그늘 아래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죽치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탓인지 분개한 시기심 탓인지 미자씨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장이 아직에 방송 허드라고 나는 그 소리 듣고 나왔는디? 이것이 우적동 사람들 돕는 일이 당가?”

“마을 만들긴가 머신가 해갔고 동네로 5억 내랐다고 안 헙디요. 그 돈이 이 돈 이제. 사내 허고는 아무 상관없당께 우리가 배 아프게 멋헌디 우적동놈들 도와줘라? 집이는 사내 사람 아니여?”

“그런당가? 나는 그런지 몰랐제. 이장이 아직에 방송헌께 동네 일인갑다 허고 나왔는디. 자네 말 들은께 그 말도 맞는 것 같네. 그라믄 나는 그량 집에 들어갈라네.”  

돌아서며 남해떡은 불쾌해진 기분을 삼키며 속말로 되네였다.  

‘염병 헐 년!’

  


 

 남해떡은 지난주 치매예방교육에 참여했던 회관지기 할매들로부터 치매예방교육 얘기를 들었다.  

“어이 남해떡아? 너도 다음에 나와야, 겁나 재밌드라. 노래도 부르고 박수도 치고 춤도 치고. 다음 주에도 헌당께 일찍 허니 밥 묵고 회관으로 나온나”

 코로나로 인해 회관이 몇 달 동안 폐쇄되면서 방구들을 이고 사는 생활도 이력이 났다. 회관에 나가지 않으면 무더운 방에서 선풍기에 의지해 하루 종일 드라마나 보아야 하는데 모여서 재미있게 논다고 하니 꼭 나오고 싶었다.  

 

 남성 못지않은 우람한 체구에서 나오는 미자 씨의 큰 목소리는 온 마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침 이장의 마을방송을 듣고 회관으로 나오던 늙은 아낙들은 멀리서 미자 씨의 소리를 듣고 당산나무에 이르기도 전 다시 발길을 돌렸다.  

“미자 저년 둑이 한나 차부렀구만, 악쓰는 것이 오늘은 틀렸구만”

“회관 망구들이 앞 참에 재밌드라고 해서 오늘 갈라고 했드만 그냥 집에 가야 쓰겄구만. 그나 저나 동네 구석이 잠잠헐 날이 없구만.”

“아이고 미자 저년 나이 처먹어도 전이 기가 죽들 안 허네!”

 

 

 마을회관에는 회관지기 할매 세 분과 오늘 치매예방교육 강사 그리고 마을사업 용역회사 직원이 마을 노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이 예정되었던 2시가 한참 지났다.  

“오늘은 틀랬는가 보네, 밖에가 겁나 시끄럽구만, 동네 구석이 시끄라죽겄어. 우적동 일이고 머시고 간에 같이 허믄쓰제. 아주 저년 지랄염병을 허는구만”

“아 이장한테 전화 좀 해보쇼?” “어찌게 헐란가?”

위탁회사 직원은 진즉부터 이장 S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세요?”

“오늘 이장 뜨가서 집에 있으것인디? 아까도 오전에 회관 왔다가 갔어,  요새는 뜨가서 먼일 못해. 밸시랍구만”

 


지난밤 이장 S 집에 개발위원장 K와 미자씨가 찾아왔다.  

“어이 이장 그 치매예방교육인가 머신가 회관에서 헌다고 허던디 자네 그것 허게 해주믄  돼야?” 

“인자 마을사업 허기로 헌 것인께 그냥 허라고 헙시다. 또 동네 노인 양반들도 좋아들 허시고요?”

 지난번 일방적 약속을 뒤집은 후 당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또다시 자신이 마을 만들기 사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멋해라우, 허허 아직 정신 못차랬구만. 그런 것을 허믄 차꼬 사내 사람들이 마을맹들기 사업을 찬성허는냥 될 것이 아니요? 어찌게 해서든 못허게 해야 써”

 미자씨가 정색을 하고 눈을 크게  뚫어져라 쏘아보면서 이장 S를 다그쳤다.  

“시한에 내가 그롯고 당헐때는 전부 냅 빼 부림서 이참에도 나보고 또 당허란 소리요? 글고 요새 동네 사람들 분위기도 시언찬허요. 그냥 헐것은 허라고 헙시다”

“자네는 그라믄 방송만 허고는 빠져부러. 나머지는 나랑 미자씨가 알아서 헐텐께”

개발위원장 K의 말에 이장 S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을 하면 교육이 안되어도 일차적인 이장의 책임은 묻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추진위원장님! 오늘 2시부터 마을회관에서 사내마을 치매예방교육이 있는 것 아시죠?”

 위탁회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들 많이 나오셨는가요?”

“아니요. 회관에 할머니들 세분 계시고 밖에는 한분이 지키고 계시다가 오시는 분들을 쫒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장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시네요? 어떻게 하죠?”

 기가 막혔다. 사내마을 노인들을 위한 교육활동마저도 억지를 부려 방해하고 있었다.  

“죄송하네요. 다시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저랑 이장님이랑 다시 일정을 협의해 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희는 위원장만 믿고 가렵니다. 일정 잡히면 연락 주십시오”

 

다시 전이장 Y와 함께 이장 S와 사내마을 회관에서 삼자회동을 가졌다. 이 상태로는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무엇 때문에 방해까지 헌답니까? 그리고 이장님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을 아예 포기할 생각이요?”

“아니 그것이 아니고 나는 헐라고 허는디 미자씨가 맬없이 당산나무에 나와서 못 들어가게 방해를 헌당께”

“그러믄 이장님이 나서서 방해 못허게 해야 안되겄소? 그것이 이장님 역할 아니요?”

“나는 그날 아직에 일찍 허니 두 번이나 방송허고 또 점심 전에도 나가서 방송했당께”

“그런데 두시에 왜 위탁회사 직원 전화는 안 받으셨소?”

“안 받은 것이 아니여, 나는 그때 논에서 개치고 있었어”

“계속 이런 식으로 허면 또 우세를 당 허셔야 하는데 괜찮습니까?”

“그리고 면에서도 먼 우세요? 지지리 몇 년간 준비해갖고 잘해오다가 이장 바뀐 뒤로 사업이 무산되었다면 이장님만 우세당허는 것이요?”

 면장도 앞전 이장단 회의에서 이장 S를 만나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해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러믄 다시 가을 해놓고나 시작 헙시다. 나도 사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또 요새는 일들이 많다고 그런께”

 이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치매예방교육은 다시 가을로 미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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