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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Dec 08. 2021

상금의 정체

우적동에 살다(6)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되기 전 한 해 동안 군 자체적으로 00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였다.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는 마을들을 위한 사전 훈련 단계였다. 마을 자체적으로 향후 마을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계획을 수립하고 발표해 심사위원들이 순위를 정해 상금을 주었다.


 사내마을 사람들도 00 마을 만들기 사업에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한편으론 상금에 대한 기대도 의욕을 키우는데 한몫하였다. 일등은 2천만 원이었다. 퍼실리테이너가 참여하는 마을회의를 몇 차례 진행하고 자체적으로 또다시 논의하여 향후 마을사업의 방향과 계획을 수립하였다.

 "나는 회관서 점심 항꾸네 먹는 것이 좋드란께? 동네고 집구석이고 간에 잘 될라믄 밥을 항꾸네 먹어야 써. 그것이 바로 식구제. 먼 좋은 수가 없을까?"

 "저도 그 생각입니다. 점심 한 끼는 회관에서 공동급식을 허고  오후에는 어른들 춤이나 노래 같은 문예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사내마을 소유의 논이 있으니까 거기다가 이번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면 매달 한전으로부터 전기요금이 나와  그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역시 배운 사람이라 틀리구만, 좋네야 좋아"

"그러고 우적동도 인지까지 회관없은께 이참에 좋게 지서불문 좋겄네. 사내도 살기 좋게 돼야 불고 우적동도 살기 좋게 돼야 불고. 인자 우리 동네도 좀 바까져야 돼"

"젊은 사람들이 나선께 머시 좀 된단께. 늙은 우덜은 무조건 따를 테구먼"

 이렇게 창조적 만들기 마을사업계획이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우적동과 사내마을이 서로 상생하면서 무엇보다  마을복지를 염두하고 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자꾸 함께 하는 일들이 많아져야 한다.


 참여했던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사내마을은 여섯 마을이 참여한 가운데 공동 3위가 되어 천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발표회에 참여했던 추진위원장을 비롯한 당시 이장 Y와 개발위원장 S가 함께 상금으로 받은 천만 원 상금 광고판을 들고 공무원들과 기쁘게 기념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는 쪼금 아쉽구만. 우리가 일등 헐지 알았는디 말이여. 영호 자네가 어찌 발표를 잘허던디."

 "그런께라이. 천만 원하고 이천만원허고는 비교가 안되는디.  거 심사위원들이 문제인 것 같어. 일등 헌 동네도 계획이라고 해봐 별것도 없던디 말이여"

  "그래도 다행히 천만 원이라도 상금을 받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쓰면 좋겠는지요?"

 "늙은 우덜이 머슬 안다가? 젊은 자네들이 잘 의논해서 해보소"


 발표 후 돌아오면서 현금 천만 원을 주면 마을 사람들 자체적으로 선진 견학이나 노인 문예교실 또는 작은 마을축제 등을 열어보자고 뜻을 모으며 모두들 한껏 기대가 부풀었. 마을 사람들이 함께 무엇인가를 해보기에 천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회당 20만 원을 주는 강사를 불러 문예교실을 연다면 일 년 동안에도 매주 가능한 큰돈이었다.


 발표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난 후 이장 Y로부터 연락이 왔다.

“니미럴 상금은 없고 사업으로 준다고 허네, 기가 차서”

“상금을 안 주다니요?”

“오늘 군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때 우리 그 발표회 나가 상금 탄 것 돈으론 안 주고 천만 원짜리 사업을 하라는 거여?”

“예? 먼 사업을 헌답니까?”

“그것도 정해 드만, 가로수를 심든지, 마을 정원을 정비하든지, 아니면 어디 농로를 포장하든지, 선택을 하라네. 멀 하면 좋을까?”

“할 말이 없군요. 그런 것이 무슨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고? 상금이 아니고 결국 지들 사업해먹는 거네요?”

“그냥 가로수를 보식하는 것으로 해야 할까 봐? 천만 원 해봐야 한 스무 그루나 심으면 끝날 거네. 추접스럽구만. 이런 것을 사업으로 내릴 주는 꿈에도 생각 못했네

우리가 할 일이 없군요, 이장님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을 주민의 의사가 반영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상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그들은 다 계획이 되어 있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공무원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면 대립점만 커질 것 같았다. 그래도 기대가 컸었는데 허탈했다.  이장 Y에게 전적으로 위임했다.


 마을 주민에게 책임의 권한을 주지 않는 마을사업이었다. 주민들의 이해 수렴을 위해 회의 잘하라고 퍼실리테이션이라고 새로운 회의방법을 동원하여 여러 차례 회의를 니 결국은 공무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들이 추진했던 마을회의는 그냥 일종의 양념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 추진했던 새마을 사업만도 못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박정희 새마을사업은 동네 사람들이 항꾸네 했어. 다리도 놓고 냇갈도 정비하고, 금시로 그때 동네 사람들 돈 많이 벌었네야. 공무원놈들 허는짓이 뻔허제. 어떤 놈이 허나 세상 베낀 것이 없어"

노인은 옛 시절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몇 달이 지나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왔다.

 들녘에는 벼 추수가  한창이었다. 

 조경회사에서 마을 도로변에 사람 키보다 더 큰 후박나무 이십여 그루를 심었다. 조경회사 측은 벚나무나 목백일홍을 추천했지만 너무 흔해서 협의 끝에 선택한 나무가 후박나무였다.

 마을 사람들은 지날 때마다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였다가 멋헌디 나무를 심는다요?"

조경 업자로부터 설명을 듣고는

 "돈이 썩어 문들어졌구만. 아조 좋은 돈 갖고 지랄염병을 허네"

 혀를 끌끌 차고 돌아섰다.


 나무를 심은 조경업자는 당시 군수의 형이었다. 한동안 이 이야기는 마을에서 퍼져나가 면과 군에서 널리 회자되었다. 참으로 속절없는 가을이었다.


 이듬해 2월 겨울 끝자락 영하 20도에 이르는 사상 유례없는 혹한이 남부지방을 덮쳤고 난대성 수종인  후박나무들은 대부분 뿌리를 제외하고 본 줄기가 모두 냉해로 죽었다. 그해 우리는 허나 마나 한 일들만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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