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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깨달음

by 정영호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문제를 논할 때 믿음을 강요한다.

삶과 죽음은 알 수 없는 문제이기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힘을 믿으라고 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알 수 없는 문제다. 인간의 두려움의 출발지점이다.

사람의 불안감은 알 수 없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세상을 인과론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형이상학적으로 바라볼 때 불안은 점점 더 커진다.

믿음이 클수록 불안도 커진다. 보이지 않고 알 수 없기에 믿음의 크기와 불안의 크기는 비례한다. 그래서 사이비는 불안을 조장해 세력을 키운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사이비는 세력을 키운다.


믿음은 본시 알 수 없음에서 출발하기에 신을 믿으면 믿을수록 불안감은 증폭된다. 신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불안이 매우 높다. 대신 적당히 믿는 사람은 불안도 적당하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이다.

믿음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다.

믿음을 강요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비교다. 타인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비교한다. 간증이라는 방법으로 타인의 믿음과 비교해 자신의 믿음을 키우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문제이기에 믿음의 크기의 비교는 결국 물질적 비교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입증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 표현하는 즉 인간의 방식이 필요하다. 믿음은 개인적 산물이 아니며 집단을 통해 물질적으로 구현된다. 서로의 믿음의 크기를 늘 비교하면서.

믿음이 자존감을 오히려 떨어트리고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를 강요하게 만든다. 믿음을 강요하는 이들은 권력을 원하는 자들이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과 죽음이 알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언제가 우리가 죽는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삶과 죽음이 절대자의 영역이 아닌 인간이기에 태어났고 인간이기에 죽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깨달을 수 없으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부귀영화도 권력도 죽음 앞에서는 소용없는 헛 된 물욕에 지나지 않는다. 깨달음은 스스로의 문제다. 깨달은 자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깨달은 자는 자존감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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