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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Oct 16. 2021

캄보디아 여행후기

캄보디아 자급축산

2018년 1월에 쓴 글입니다.


지난주 5박 6일의 일정으로 좋은 사람들과 친목을 목적으로 관광여행을 다녀왔다.

 물이 어는 겨울철은 1인농의 특성상 외출도 자제하는 편인데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머피의 법칙은 이번에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사상 최악의 한파가 몰려왔고 돼지들과 가축들을 형님 내외분께 맡겼는데 큰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동시에 아주 철없는 우리 내외가 되었다.


 이제껏 나에게 캄보디아는 외국인 노동자 내지 농촌인력과 이주여성으로 대표되는 나라였다.  사람들에게는 우리와 피부색이 조금 다르고 가난하며 낙후된 나라로 폄하와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도착하기 전까지도 온통 한파와 돼지들 걱정에 사로잡혀 캄보디아는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돼지 걱정은 밀쳐두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방법이 없고 앞서 고민한들 여행마저 망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앙코르와트로 대변되는 캄보디아라는 나라가 조금씩 사유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자연스레 역사와 문화를 보고 듣고 고민해갔다.  


 다행히 친절하고 사람 좋은 현지 가이드를 만나 일정 정도 나의 탐구욕을 해결할 수 있었다.  

 강력한 철기문화와 3 모작이 가능한 비옥한 토질과 기후를 바탕으로 약 4,5세기 동안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를 지배했던 대제국의 흥망성쇠가 앙코르라는 프랑스어로 재해석되어 관광산업이 일어서는 나라였다. 동시에 끊임없는 열강과 제국 패권다툼의 희생양으로 방치된 나라였다.  

 프랑스 식민지배 후 베트남 전쟁을 거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끊임없는 지배와 간섭 방치를 받아오면서 나라는 갈수록 쇠락했고 국민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땅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떼몰이 관광을 통해 관광 활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한국과 캄보디아의 공통점은 열강과 제국의 지배 희생의 역사다.  한국은 완벽한 미국주의를 선택해 자존을 버리고 배부름을 선택해온 나라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캄보디아를 폄하하거나 조롱할 처지가 못된다.  


캄보디아 여행에서 음식 먹거리를 통해 자연스레 농업과 음식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현지 가이드 덕에 현지 여러 맛집을 섭렵하게 되었다.  3면이 바다인 우리와 달리 해양수산물이 발달하지 못하고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대부분의 육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가끔씩 내륙 호수의 육지 생선을 접할 수 있었다.

 한국의 대표 육류인 공장식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찾을 수 없었고 우리와 비교해 돼지고기와 닭고기도 훨씬 맛이 좋았다. 가난 덕에 미국의 3대 농업 무기인 화학비료와 농약 배합사료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일명 자연 축산이 대세였기에 가능했다. 필리핀을 비롯해 대부분 동남아 국가들의 일반적인 모습 중 하나다.  미국 세계지배 도구의 으뜸인 Gmo옥수수가 발붙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에서 3 모작이 가능한 농업 강점은 쌀값 폭락으로 시름하고 있었다.  한때는 대제국의 상징이요 기반이 이 나라의 쌀이었다. 가이드 덕에 현지 돼지 사육농가를 방문했는데 바나나 줄기와 쌀겨 삶은 먹이만으로 돼지는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들의 풍요로운 농업이 다시 부각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몰락으로 가능해질 일이다. 그러면에서 우리와 자주의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캄보디아 농산물 대부분은 맛이 좋고 품질이 좋았다.  특히 미나리와 고추 마늘 등의 야채 양념은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야채가 에너지와 비용의 산물이라면 캄보디아는 자원의 활용이다.  


가이드에게 부탁해 마지막 날 그곳의 소고기를 맛보게 되었다. 벼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는 많은 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네 7,80년대의 풀 뜯기는 풍경이 일상이었다. 소들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 비쩍 말랐다.  우기가 아니기에 당연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곳 현지 소값이 큰 소는 한국돈으로 백만 원가량이며 송아지는 30만 원이라는데 소 사육이 경제적 비중이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농업분야임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풀을 자급하기에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맛을 본 소고기맛은 지방 맛이 없고 특유의 고기 담백한 맛이 났다.  요리과정에서 후추가 약간 사용되고 양파와 함께 볶았는데 궁합이 잘 어울렸다.  특히 가이드가 공수해온 평양김치와 절묘하게 어울려 일품이었다.  현지에 평양식당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에는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하루에 막대한 매출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곳 가이드는 평양김치가 좋아 자주 애용한다 하였다.  전라도 김치와 비교해 젓갈 사용이 작고 별도의 속이 작아 익은 김치의 맛이 개운하고 깔끔하다.  이것도 통일이 된다면 민족의 훌륭한 자산이 되리라 생각되었다.  우리 김치는 버리고 kg에 천 원짜리 차이나 김치로 배를 불리는 우리가 생각해볼 대목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각자가 처한 처지와 조건을 공감하는 것이다.  우월함은 사대주의에 있지 않고 자존을 지키는 민족주의에서 발현된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창의적이며 자존을 지키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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