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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Oct 30. 2021

사라진 토종돼지

흙돼지 이야기(7)

 당위성만을 내세운 무작정의 결과는 경험해보지 못한 혹독한 시련과 고난으로 길게 이어졌다.

 

  문제는 돼지들이 배합사료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하는데서 나타났다. 처음 흑돼지를 들여온 곳은 충북 보은의 오익환 어르신 댁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그래도 나름 재래적 성질이 많은 종을 찾았다. 또한 배합사료로 키우고 있지 않은 농장을 찾았다. 지금은 작고하신 오익환 어르신은 식품공장에서 나오는 음식물 잔반을 갖어다 발효시켜 돼지를 사육하고 계셨다. 이곳에서 새끼돼지 세 마리를 들여와 사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농장에 와서 우리 집 농사에서 나오는 여러 농부산물을 다양하게 먹으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했으며 1년이 지나고 자연 임신되어 새끼도 훌륭하게 키워냈다.


 문제는 사육두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먹이공급이 원활해지지 못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배합사료 급여를 중단하면서 영양이 낮은 자급사료를 먹고 자돈 발육부진 임신중독 폐사 지방 과다 현상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조상들이 키우던 토종돼지는 배합사료가 없이도 새끼를 잘 키우고 거친환경에 적응해 공진화해 갔지만 외국에서 들여온 배합사료에 길들여진 돼지들은 배합사료가 없는 환경에서 적응해 나가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익히 알려진 아이티 돼지 이야기가 있다.

 세계 최빈국 아이티에서 키우는 돼지들은 많은 곡물이 없이도 사육이 가능한 종이 었는데 어느 날 미국은  아이티에 개량돼지를 무상으로 보급했다. 돈이 없는 아이티인들은 배합사료를 사서 먹이지 못했고 미국이 보급한 개량돼지는 새끼를 낳아도 발육이 부진하고 대부분 폐사했다. 아이티 인들은 미국이 자신의 사료를 팔기 위해 개량돼지를 무상 보급했음을 깨닫고 결국 아이티인들은 미국의 개량돼지를 바다에 던져서 아이티 땅에서 몰아냈다.


 배합사료에 적응된 돼지들이 배합사료를 완벽하게 극복하는 과정은 엄청난 시간을 요구한다. 최소 몇십 년의 유전적 실험과 함께 공진화가 요구된다. 


  배합사료를 빼자 GMO가 아닌 곡물 중 돼지들의 먹이로 줄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너무도 제한적이었다. 경제성까지 고려해 쌀겨와 보리 정도가 사료로 가능한데 이것만 먹는 돼지들은 영양결핍으로 인한 번식장애가 심각하게 발생했다. 배합사료 없이도 잘 자라던 진짜 토종돼지가 너무도 간절했다.


 여기에 유기농 배합사료의 국가적 사회적 연구와 보급이 거의 전무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만 해도 농협 친환경 사료공장에서 공급되는 유기농 사료를 먹이면 돼지들의 발육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전국에서 몇 농장이 예전 토종돼지를 복원해서 사육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배합사료에 의존된 종으로 자급축산을 지향해온 취지와 맞지 않았고 이미 배합사료에 의존해 진화해와서 근본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예정된 실패와 시련의 고난을 맞아야 했다.

사라진 토종돼지가 없는 조건에서 개량돼지를 한순간 노력을 통해 예전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고 연속되는 실패에 좌절해야만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시련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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