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종 Mar 27. 2022

상대적인 분별을 넘어 하나 됨의 경지

명상에 있어 궁극적인 상태는 상대적인 분별을 넘어 하나 됨의 경지를 경험하고, 그 심경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명료하고 세밀하게 알아차림이 더해지고, 그 알아차림이 깊어져 통찰로 이어져서 결국에는 알아차리는 자와 인식되는 자의 간격을 넘어 하나 됨의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죠. 


저도 그렇게 자신이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모든 선 명상에 있어서 궁극적인 경지는 여기인 것 같습니다. 위파사나 명상에서는 삼매를 개발하고 위파사나를 개발하여 궁극에 주관과 객관의 간격을 떠난 궁극적 존재에 합일을 의도하고, 간화선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존의 개념이나 언어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 경지를 말로 안 되는 화두로 뚫고 닿을 수 있도록 하고, 묵조선 조동선 계열에서는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 작은 나를 쉬고 내려놓음으로써 본성에 합일하도록 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넓은 바다의 포말이 바람에 흔들리며 바다 물로부터 잠깐잠깐 떨어질 수는 있어도 대양의 물속에서 합일할 때 안정되고 광활한 하나의 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지금 '개개인의 이름을 갖고 있는 육체의 한계에 갇힌 우리 자신'을 우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큰 나'를 발견하도록 하는 겁니다. 명상은 그 길로 안내하는 중요한 방법이죠. 


그러니, 결국 우리의 좌선이나 명상은 이 '참 나' '본래면목' '한 물건' '한마음' '본성'이라고 하는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고 유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지가 됩니다. 


갈 길이 멀죠. 그러니 몸에 일어나는 사소한 경험이나 심경의 변화 등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우리의 원래 목적지를 잊지 않고 그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급한 마음 갖지 말고, 그저 하다 보면 거기 닿을 날도 있지 않겠어요?

작가의 이전글 단순한 알아차림에서 관계성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