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가, 명상, 마음공부의 결론은 사랑이다
결국, 사랑!
요가, 명상, 마음공부 등 모든 수행의 결과는 사랑으로 통한다. 존재와 현상의 참모습에 대한 깊은 이해는 사랑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수행이 무르익기 전에는 자비에 대해 생각하지도 마라. 수행을 통해 존재와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길 때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사랑과 자비는 생겨난다. 그런 이해가 생기기 전에 자비를 실천하겠다고 억지 부리지 말라” _ 2대 깔루 린포체
ㅣ
“요가를 통해 쁘라나가 확장되고 균형되어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것, 그것ㅇ 바로 사랑이다” - 산토시 리쉬쿠마르
결국 요가를 한다, 명상을 한다, 마음 공부를 한다며 수련을 계속해왔다면 그 인격이 결국 사랑에 맞닿아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고, 그 사랑이 넘쳐 흘러나는 정도가 바로 스스로의 수행의 진전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제 걸음마를 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오히려 받아들이니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다. 알았으니 됐다. 내 안의 모든 울화와 갈등과 초조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이제야 좀 알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대주로 자라며 어떻게든 열심히 뭔가를 이루어서 큰 일을 해야 한다고 막연히 느껴왔다. 그러다보니 재능도 있고, 주위에서 평가도 해주고, 응원도 해주고, 지원도 해주니 내가 특별한 존재라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양날의 검이었다. 스스로도 잘 안다고 생각했고, 늘 가르치려는 삶을 살았던 거다. 순수한 의도와 동기는 좋았지만 뭔가를 놓치고 있는 중이었던 거다. 마음은 늘 바쁘고, 열심히 살았지만 손에 쥔 것이 없는 느낌. 그 허기의 원인을 찾느라 오랜 세월 해맸던 거였다.
하지만 결국 사랑의 실천 면에서는 사실 아직 잘 모른다. 너무 뭔가를 구하느라 밖으로 헤매는 바람에 이 방면으로는 경험도, 연구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신기한 것은 이 생각의 전환에 계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브런치에 거의 접속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아침부터 브런치에 들어갔더니 어떤 분의 응원 메시지가 와있었다. 사랑에 관해 쓴 글에 대한 댓글이었다. 내가 언제 이런 글을 썼나 싶은 마음에 다시 읽어보면서 갑자기 의식이 사랑으로 흘렀고 그 오랫동안의 의문이 여기에서 멈춰 졌다. 그분 또한 나의 영적 여행에 방향을 주는 또 한 분의 메신저였던 것이다. 사실 메신저는 도처에 있다. 우리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늘 곁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닫고 마음을 닫다 보니 들을 수 없다.
아무튼 내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이다. 그러기에 연결된 존재로써 우리 삶 도처에서 메신저가 우리의 삶을 이끈다. 감사한 일이다. 특히 어제 그분께 감사하다. 적기에 표현해주신 응원의 메시지가 줄탁동시의 인식전환을 이뤄줬다. 마음을 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 마음을 밝혀주는 기회이자 시험이다.
더 놀라운 건, 기독교의 수행 방법이다. 예전에는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서 수행이 따로 없는 줄 알았다. 믿고 따르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익숙했던 이 노래 가사를 보면서 이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구체적이고 명료하고 실질적이다. 이 노래 가사처럼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천국에 못 이를 자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믿음에 노력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성현의 가르침은 서로 통한다. 진리를 설했기 때문이다.
얼마전부터 예수님 또한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마음만 열면 종교와 이념이 무슨 상관이랴. 진리를 말하는데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으랴 싶다. 이젠 세상의 모든 종교 또한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는 메신저로 다가온다.
#명상 #요가 #마음공부 #모든수행의결론
#결국사랑 #어떻게살것인가 #어떻게사랑할것인가 #모든판단의기준 #사랑인가아닌가?
#은종작가 #나는명상하는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