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은 유원에게 호텔을 간단히 소개시켜준 뒤에 지하철에서 유원을 배웅해줬다. 둘은 고개를 돌린 후에도 자꾸만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날 전철에서도 둘은 폰을 놓지 못했다. 그야말로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다음날은 한강에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유원은 열기구처럼 높이 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원래는 패션에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유원인데, 왠지 오늘은 유원에게 그럴 구실을 제공하는 듯한 날이었다. '흠..... 뭘 입으면 좋을까?' 하고 유원은 깊이 고민했다. 유원의 옷장에는 무채색 옷들이 가득하고 파스텔 색깔의 밝은 옷들은 거의 없었다. 더운 날이어서 그런지 날씨도 고려해야 했다. 그 때, 검은색 하얀색 옷들 무더기 사이로 밝은 연핑크색 반팔 티셔츠가 보였다. 원래 목적은 방학 동안 요가를 해볼까 하고 샀던 거였는데, 작심삼일이었으니, 사실상 용도를 상실해서 한동안 묵혀둔 옷이었다. 재질도 시원해서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었다. 유원은 밖에 나갈 때, 선크림만 바르고 나가는 게 일상다반사였는데, 간만에 쿠션팩트도 꺼내서 선크림 위에 얇게 두드리며 간단히 화장을 했다. 유원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활짝 웃으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평소에 비하면 꽤나 그럴싸했다. 유원의 밝은 웃음이 가진 매력을 살리는 가벼운 연한 분홍색 반팔 티셔츠와 큰 키를 극대화시키는 회색 긴 바지, 그리고 포인트로 맬 수 있는 검은색 가방은 만족스러웠다.
'제이콥, 나 출발했다!'
'나도 방금 출발했어.'
'오오, 이따 보자!'
둘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서둘러 지하철을 탔고 내리기 전 창문으로 본 한강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날은 제이콥의 생일이었고, 디엠으로 대화를 나누다 생일 이야기를 꺼냈던 기억이 있었던 유원은 계획을 다 미리 세우고 있었다.
둘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며 함께 웃었고, 저녁에는 한강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는 유원의 로망을 반영하여 한강 라면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라면을 다 먹고 유원은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고 제이콥에게 말하고 편의점에서 작은 조각 케이크를 사왔고 그 위에 미리 챙겨온 초를 꽂은 뒤,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제이콥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제이콥, 뒤 돌아 봐봐!'
'헐... 언제 준비했어?'
'준비한 건 작지만 생일 축하해! 오늘 하루가 좋은 하루였으면 좋겠다.'
'좋아. 너랑 함께해서'
순간 제이콥은 진심을 말해버렸고 유원은 순간 동작을 멈췄다. 유원도 그랬기에 당황했던 것일까. 제이콥은 눈을 감고 촛불을 분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저기...내 소원 좀 들어줄래?'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어느 순간부터 네가 내 하루에 휴식을 선물해줬고 텅 빈 것만 같던 내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줬어.
그래서 네가 좋아졌어. 나랑 사귈래?' 생일자라서 그런지 이런 말을 할 줄도 몰랐던 제이콥이 불쑥 용기를 내 말해버렸다.
유원은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몇 분간 있다가 답했다.
'그...그래. 나도 좋아'
그날 밤, 하늘은 어두웠지만, 둘의 마음속은 무엇보다 찬란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