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은 한참동안 고장난 장난감처럼 끽끽 웃어대는 브루노를 마음에 안든다는 듯 노려봤다.
“브루노, 뭔가 착각하나본데 사실 오늘부터 수습 지원서를 넣는 기간이에요. 제가 예정대로 다축복 마법사만 되면……!”
“축복을 맡겨놓기라도 한것처럼 말하는구나, 다축복 마법사가 아무나 되는 건줄 알아? 너는 절대 아니니 실망할 것도 없어. 크큭”
에런이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애써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기관이랑 계약한 다음에……!”
“그럴리 없대도!” 브루노가 웃느라 모자란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에런이 입술에 힘을 주고 그의 얼굴에 안내장을 들이밀었다.
“28일까지만 신고하면 되잖아요! 영역마다 딸린 기관이 몇갠데! 이곳, 꿈의 영역만 해도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다고요. 그런데 제가 갈 곳 하나가 없겠어요? 두고 보세요, 제가 메이저 마법사가 되는건 시간 문제일걸요?” 에런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시간 낭비래도…… 그래 나사 빠진 기관에서 널 받아 줬다 치자, 수습과정 통과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줄 아냐? 수습과정에서 낙제해서 깡통소리 듣는 마법사들도 수두룩해. 아르테마법학교에서만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을 뿐이지.”
브루노가 끌끌 혀를 차더니 곧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에런을 쳐다봤다.
“그러니 네가 대단하다는거다. 신청도 못해보고 낙제하는 깡통은 에르테아 전 영역을 통틀어서 네가 처음일거거든. 아르테마법학교는 역시 모지리도 남다르게 키워내는 군. 푸하하하!” 그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에런은 그의 축 늘어진 볼살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자 몹시 불쾌했다. 에런의 손이 그의 볼살을 원래대로 늘어뜨리기 위해 은밀히 다가가자 브루노가 재빨리 에런의 손을 쳐냈다.
“괜한 시간 버려가며 수습과정에 미련갖지 말고 주어진 일주일동안 깡통마법사로써 살아가는 법을 배워두는게 너에겐 더 이득일거다. 에르테아는 쓸모없다 판단 되는 자들에겐 아주 박한 곳이니까. 뭐 그건 네가 가장 잘 알겠지.”
브루노가 방안에 가득 쌓인 반려된 신청서들을 대충 흘겼다.
에런이 말없이 입술을 쭉 내민 채 씩씩 거렸다. 그제야 브루노는 자신이 너무 심했나 싶어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러자 브루노의 얼굴이 몹시 기괴해졌다.
에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와서? 그냥 웃어요. 지금 진짜 못생겼어.” 에런의 단호한 말에 브루노가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그렇게 두 사람의 무언의 눈싸움이 이어질 무렵, 먼저 눈을 깜짝인 브루노가 말했다.
“근데, 너 안가도 되는거냐?”
그의 말에 에런이 화들짝 놀라며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난잡한 벽시계를 쳐다봤다.
“저, 저게 몇시야?”
희뿌연 시야에 에런이 두툼한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으며 눈을 찌푸렸다.
시계는 어느덧 9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꽤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시계가 눈앞에 보이는 브루노처럼 늙어 고장난게 아니라면 이미 연회장에 도착해 앉아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두사람이 작은 방을 바삐 돌아다녔다.
“내 교복!” 대충 세수와 양치정도만 하고 나온 에런이 소리쳤다.
“복장은 자유라고 써있잖아! 모자를 찾아!” 그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늘 저 시계가 문제예요, 저거 브루노 시계잖아요! 저 이상한 무늬들 때문에 시곗바늘이 잘 안보여서 매번 시간을 착각한다고요!”
에런이 침대와 바닥을 살피며 소리쳤다.
“웃기는 군, 시계를 잘못본 게 네 탓이지! 왜 내탓이야! 그리고 네놈이 시계를 보긴 뭘 본다고! 시계가 없다고 하도 투덜대는 네 놈 말에 속아 기껏 아끼는 시계를 줬더니 잘 보이지도 않는 벽 모퉁이에 달아놓은 주제에!”
브루노가 학생용 모자를 찾기 위해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들춰내자 먼지가 그들을 덮쳤다. 브루노가 콜록대자 에런이 얼른 입가를 가렸다.
“아끼는 시계는 무슨! 어차피 갖다 버리는거 여기다 버리겠다고 했던거잖아요!” 에런의 말에 브루노가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 네 방은 뭘 버려도 티가 안나거든! 크흠!”
에런이 침대 밑에서 먼지가 쌓인 교복을 꺼내더니 배지를 떼 망토에 달았다.
“깨워줄거 였으면 애초에 빨리 깨워줬어야지! 느리적 느리적 거리다가! 어?”
소년의 뻔뻔한 외침에 브루노가 두 눈을 부라렸다.
“기껏 깨워줬더니 느긋하게 지원서를 확인한게 누군데! 그리고 착각하지 마라. 넌 정식으로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생이 아니야, 왜? 학기가 끝난 지 벌써 두달이거든! 애초에 내가 너를 깨워줄 의무같은 건 없었다는거야 이 머저리야!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열변을 토하던 브루노의 표정이 한순간 밝아졌다. 그가 책상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있는 위즐렛(마법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통칭, 마법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마법사라 불림) 전용 고깔 모자를 집어 에런을 향해 던졌다.
자연스럽게 받아든 에런이 브루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왜 깨워줬는데요? 설마, 제 엉덩이가 그리웠던거예요?”
급하게 달려나가도 모자랄 판에 엉덩이를 들이대며 깐족대자 브루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나도 아침의 날 때려 죽이고 싶은 심정이야.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일주일만 지나면 앞으로 이 빌어먹을 기숙사에서 네놈을 볼 일은 없을테니까.”
브루노의 축처진 얼굴에 행복감이 스멀 스멀 피어올랐다.
에런은 그가 기쁨을 만끽하도록 내 버려둔 채 문쪽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 에런의 뭉툭한 옷이 브루노의 얇은 옷깃을 스쳤지만, 그는 이젠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 가볍게 옷을 털어내며 에런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이젠 다시는 보지 말자, 이 화상아!”
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나의 대적자여, 이젠, 정말 안녕이다.
브루노는 괜히 시원 섭섭한 마음이 올라와 급히 손을 내렸다. 하지만 곧 자신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그 순간, 기숙사 문밖에 가만히 선채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에런과 눈이 마주쳤다. 브루노의 얼굴이 굳었다.
브루노에겐 깡통 에런의 행동을 분석한 책이 있을 만큼 에런 시엔스에 대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아니, 데이먼 교장보다도 잘 알 거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몹시 불안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7년동안 어디로 튈지 모를 에런을 기록한 책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 에런의 괴상한 표정을 분석하자면 늘 자신에게 한방 먹이기 전 나오는 설렘과 자신감, 즐거움이 한껏 차오른 표정이 분명했다.
브루노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했는지 에런이 조만간 입을 열렸다.
“브루노, 맞아요. 나 누구나 다 하는 수습생? 못 할 수도 있어요. 보시다시피!”
에런이 책상과 방 곳곳에 흩어져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를 가리켰다.
브루노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척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말인데…… 수습생을 못하면 그냥, 이 기숙사에서 평생 살려고요.”
브루노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불가능해.”
에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더 이상 아르테마법학교의 학생 자격이 없으니 이 따수운 보금자리에 더는 들어올 수 없겠죠? 하지만…….”
브루노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하지만……?”
“기숙사 사감이라면 말이 다르죠. 이참에 진짜 한번 해볼까봐요. 성인이 될 동안, 브루노만의 수습생이라 생각하시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매일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면서 브루노 얼굴도 보고, 순진한 학생들을 괴롭히면서 브루노 얼굴도 보고, 같이 밥 먹으면서 브루노 얼굴도 보고, 한 침대에서 함께 잠 들때까지 브루노 얼굴도 보고 아침에 깨어나 가장 못생긴 얼굴로 하루를 맞이하는 브루노 얼굴도 보고, 수줍게 같이 씻기도 하면서 흐흐 24시간 브루노랑 붙어있을거예요. 아,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브루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반면 에런의 입꼬리는 기분좋게 들썩였다.
“그런데 만약 운이 나빠 수습생이 되면 어떡하지? 그럼 사감은 포기해야지 뭐…….” 에런이 브루노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브루노는 결국 표정관리에 실패했다. 에런의 입꼬리가 아주 방정맞게 씰룩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루노는 인정해야 했다. 이번에도 자신이 졌다는 것을…… 에런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에런이 수습생이 되길 물 떠놓고 기도라도 해야할 판이었다.
“네 놈을 받아주려는 정신나간 기관이 분명…… 어디 한곳쯤은…… 있을거다.” 브루노의 축쳐진 볼살이 달달 떨렸다.
“역시 그렇겠죠오?” 에런이 얄밉게 끝음을 쭈욱 올렸다.
브루노가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러자 에런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브루노, 수습생이 되나 안되나 내 얼굴은 봐야겠어요.”
“……왜지?” 브루노가 그 어느때보다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습과정, 더 나아가 연구과정까지는 무료로 기숙사를 대여해주잖아요. 아, 지금껏 학생들이 졸업만하면 도망치듯 기숙사를 나가니 브루노는 몰랐겠구나. 전 그들이 이해가 안돼요. 이런 좋은 혜택을 누리지도 않고 나가다니 바보같지 않아요? 걱정말아요. 전 이 혜택을 온전히 다 누릴거거든요.”
브루노의 볼살이 분노로 떨렸다.
“그렇게나 좋아요?" 에런이 눈치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출근 알람 기대할게요? 아르테 마법학교 최고! 기숙사 전용 알라미(에르테아의 알람용 마법용품) 브루노도 최고!” 에런이 배시시 웃어보였다.
“너, 이놈 날 놀리는거냐……?” 브루노가 애써 침착하게 입을 꾸욱 다물었다.
“놀린다뇨? 브루노,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에 이제 밀당은 그만 하고 인정해요.”
에런이 뒷걸음을 치며 무서운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브루노에게 말했다.
“저 안보이면 엄청 걱정되죠?”
새로운 작전인가? 브루노는 잔뜩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무슨 사고를 쳐, 또 내 골머리를 썩게 할까? 날 걱정해도 너 따위를 걱정할 일은 없어.” 브루노가 으르렁 거렸다.
에런의 눈썹이 기분좋게 들려올라갔다.
“특정 시간때가 되면 제가 계속 기다려지잖아요.”
“네가 시간을 기가 막히게 안 지키니 벌점을 부여하기 위해서 기다린거 뿐이야.”
브루노가 말했다. 그러자 에런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뼉을 맞부딪혔다.
“그때마다 저를 기다리는 브루노의 심장이 막, 두근두근, 부글부글 끓기도 하고?”
브루노는 이 순간, 에런의 말에 착실하게 대답해주는게 맞는건지 매우 의심스러워졌다.
그도 그럴것이 100년동안 사감으로 기숙사를 책임지며 만난 9명의 망나니들에 대해 기록해둔 『머저리 길들이기』 시리즈를 모조리 뒤져봐도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한 머저리는 없었다. 아니, 그들은 모두 졸업하기도 한참 전, 재미없을 정도로 빠르게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눈 앞에 서있는 망나니는 달랐다. 7년동안 엉덩이 때찌 알람을 이겨낸 것도 모자라 늘 말썽을 막으려는 브루노보다 한발 앞서 사고를 쳤다. 정말이지, 구제불능인셈이다.
결국, 10번째 머저리 길들이기가 되지못한 채 브루노의 수치이자 졸작인 『최악의 머저리』에 전부 기록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득, 브루노의 머릿속에 새로운 결말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설마, 저녀석이 갑자기 철이라도 들어서 지난 과오에 대해 뉘우치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브루노는 기분좋게 시끄러워지는 속을 잠재워야 했다.
최악의 대적자로서 일으킨 말썽이 말썽이니만큼 10번째 망나니 길들이기의 탄생은 물건너 갔다. 하지만 졸작의 수치스러운 마침표를 수정할 수 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는 있었다. 그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아는구나”
사실 에런의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 한것과는 달리 오늘을 포함해 지난 두달간, 브루노의 상태는 매우 좋지 못했다.
한달간은 『머저리 길들이기』 10권이 탄생하지 못한것에 대한 패배감과 알수 없는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고, 마음을 다잡고 졸작을 써내려갈때는 분노로 몸을 떨어야 했다. 마법펜을 부러뜨릴 정도였으니 그의 분노를 모두 담아낸 그 책은 절대 세상밖으로 나오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브로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성공했어! 내가 또 한번 해냈다고! 그런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쁜거야? 망할…….
“……루노, 브루노!” 에런이 저만치 떨어져 큰 목소리로 브루노를 불렀다.
브루노는 잔뜩 기대한 채 에런을 쳐다봤다. 티를 내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입꼬리는 계속해서 주책없이 씰룩거렸다.
그가 꽤 멀어진 에런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브루노! 제가 기다려지고 절 떠올리면 심장이 막 두근 두근 하고? 부글부글 끓고 막? 마악?” 에런이 유난히 큰 목소리로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렇게 브루노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저 유난스러운 입을 막지 않으면 어림잡아 앞으로 석달 정도는 뜬 눈으로 지새워야한다는 것을……. 최악의 결말을 만들순 없었다.
기숙사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감히 복도에서 상상도 못할 큰 소리가 나자 호기심에 하나 둘 문 틈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어느새 복도 양 옆으로는 둥둥 떠있는 학생들의 머리로 가득찼다.
브루노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복도를 내달렸다.
“너, 이놈 그 입 다물어! 그 입을 여는 날엔 내가 정말 가만 두지 않을테다! 이 머저리놈!”
하지만 어디 소리보다 빠르겠는가, 에런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브루노의 귀에 들어왔다.
“브루노가 날 좋아하는건 알겠지만 미안해요. 브루노! 우린 이루어질 수 없어요, 대신 제 엉덩이를 빌려줄테니 필요하다면 언제든, 제 방으로 찾아오세요! 참, 오늘 아침은 특히 좋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특별한 이벤트에 감동받았거든요. 오늘처럼 종종 부탁할게요!”
브루노가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참! 저 이제, 통금 상관 없는거 아시죠? 앞으로는 들어오는 시간이 들쭉 날쭉할테니까 기다리지말고 푹자요! 우리에겐 내일의 아침이 있잖아요!”
에런은 그 말을 끝으로 복도를 달려 계단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힐끔힐끔 두 사람을 몰래 살피던 학생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놀란 입을 틀어막고 방문을 세차게 닫았다.
브루노의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저,저 머저리 같은놈이!”
브루노가 에런이 사라진 계단을 노려보며 악을 쓰듯 소리쳤다.
“제발 내 눈에 뛰지 좀 마! 이 기숙사에서 사라지란 말이다!” 브루노의 외침이 어느새 텅 빈 기숙사 복도를 울렸다.
기숙사 방 안에서 수군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브루노의 귓가에 들렸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자신의 별명을 들으며 브루노는 몸서리를 쳤다.
이런 결말이라면 절대 그 졸작에 담을 수 없다. 차라리 두달전, 에런이 기숙사의 칙칙한 복도를 바꿔보겠다며 예술이랍시고 물감폭탄을 마구 던져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그 결말 그대로 가는게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망나니가 사라진 계단을 바라 보며 브루노가 이를 부득 부득 갈았다.
“너 이 망할놈, 두고보자.”
그의 성난 걸음이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