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고통에 오뚝이 마냥 벌떡 일어나 방방 뛰어다녔다.
그러나 곧,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브루노를 발견하자 엉덩이를 매만지며 히죽 웃어 보였다.
“브루노, 좋은 아침이에요. 잘 잤어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기를 깨워준 브루노에게 에런이 늘상 전하는 마음에도 없는 아침 인사였다.
그것을 알기에 브루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소년의 진심이 담긴 아침 인사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오늘따라 브루노의 얼굴이 더 못생겨 보이네요.”
그래, 네놈이 그렇지 뭐. 브루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요? 기숙사에 틀어박혀하는 것도 없으면서!"
툴툴대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도저히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에런이 곰 같은 상체를 냅다 그에게 들이밀었다.
브루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이, 이놈이 그 더러운 머리를 어디다 비벼!”
하지만 에런은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한 듯 눈곱 낀 눈을 손으로 비비며 멍청하게 히죽 웃었다.
“에이, 왜 안 어울리게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브루노는 에런의 말을 무시한 채 마음에 드는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그의 외관을 흘겼다.
하얀 얼굴에 날렵한 턱선, 깊은 눈매와 오뚝 한 코, 뚜렷한 이목구비가 지 아비를 빼다 박아 꾸미면 한 인물 할 듯 잘생겼다는 말을 들을 법도 했지만 언제 잘랐는지 모를 덥수룩한 머리칼이 눈썹은 물론, 눈과 귀를 반 이상 덮어 이목구비를 가렸고 15살 나이치고 제법 큰 키는 온갖 이상한 옷들을 잔뜩 껴입은 탓에 짤막하고 멍청한 데다가 미련해 보였다.
브루노는 한숨을 내쉬며 질리다는 듯 말했다.
“보면 볼수록 화딱지 나는 얼굴은 네가 처음이다.”
브루노의 말에 에런이 좌우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흠, 아닌데, 처음이 아닐 텐데…….”
이에, 브루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런이 씨익 웃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마다 화날 텐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화날 텐데에?”
에런이 말꼬리를 주욱 늘리며 놀리듯 말하자 그의 몸이 분노로 딱딱하게 굳었다.
에런은 그때다 싶어 자신의 떡진 머리와 함께 곰 같은 상체를 그의 품에 욱여넣었다.
“나름 친한 사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절 보러 한 번도 안 올 줄은 몰랐어요! 거의 두 달 만인가?”
브루노는 에런의 의해 힘없이 뒤로 밀려나면서도 떡진 머리카락에 만큼은 닿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당연히 내가 네놈 따위 보러 올 이유는 없지! 저리, 안 비켜? 이 머저리야!”
브루노가 있는 힘껏 에런을 홱 밀쳤다.
우당탕탕탕-
“으악! 으헤헤 헤헤헤”
에런은 바닥에 널브러졌으면서도 브루노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드는지 상체를 들썩이며 웃기 바빴다.
브로노가 그런 에런을 흘기며 불쾌한 듯 두 손을 망토에 문지르더니 오늘 처음 입은 새망토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제발 좀 씻어! 그 누더기들도 좀 갖다 버리고!” 브루노가 몸을 떨었다.
에런이 자리에서 일어나 멀뚱멀뚱한 눈으로 브루노를 바라봤다.
“저 이 주 전에 씻었어요? 너무 많이 씻으면 행운의 여신님이 뿌려 주신 행운가루가 모두 날아가버린다고요. 그리고 누더기라뇨? 브루노, 제 패션을 너무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에런이 뻔뻔스럽게 그의 앞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보였다.
브루노가 미간을 찌푸렸다.
“꿈의 영역(아르테마법학교가 소속되어 있는 곳)에 찾아와 운명을 봐주겠다는 점술사나 주술사들이 파는 용품, 예언자인 척 미래를 떠들어대는 놈들은 다 사기꾼들이라고 했잖아. 설마, 또 행운 부적인가 뭔가를 비싸게 주고 산건 아니겠지? 다른 영역이면 몰라도 운명의 영역 소속 마법사들은 폐쇄적이야. 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떠나와 개개인의 마법사들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아먹을 일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
“어라, 갑자기 귀가 안 들리네?” 에런은 그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지 귀를 후비더니 바닥에 떨어진 망토를 보고는 횡재라도 한 듯 기쁨의 탄성을 내뱉었다. “이 망토 설마, 버리시는 거죠?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한 겹 더 입고 싶었거든요.”
에런은 브루노가 내던진 망토를 줍더니, 이미 잔뜩 껴입어 두꺼워진 팔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낑낑댔다.
“이, 이게 왜 이렇게 안 들어가?”
브루노가 경악하듯 에런을 쳐다보더니 그가 입으려던 망토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입고 있던 망토를 벗고 입어야 될 거 아니야!”
“싫어요. 이 망토, 두 달 전에 브루노가 버리고 간 건데 아직 새 거라고요! 설마, 치사하게 도로 빼앗아가려는 거예요? 제가 주웠으니까 이제 제 거예요!”
“냄새 때문에 못살겠으니까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브루노가 절규하며 에런의 입에서 나는 구정 내를 차단하기 위해 그의 입을 손바닥으로 탁하고 때렸다.
에런이 숨을 들이켜며 움직임을 멈춘 틈을 타 브루노가 빠르게 그의 옷을 벗겨냈다.
“어떤 멍청한 마법사도 망토를 두 겹씩이나 입지 않아! 애초에 입을 수도 없고! 이런 상식도 모른다는 건 딱 두 가지야! 마법사가 아니거나! 진짜 모지란 깡통(멍청한 마법사를 모욕적으로 일컫는 말)이거나! 물론 당연히 네놈은 후자 거나 둘다겠지!”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벗겨낸 망토를 돌돌 말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홱 내던져 버렸다.
곧, 창문 밖으로 한 여자아이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이 쓰레기 뭐야! 으웩, 냄새! 너무 더러워!”
에런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브루노를 홱 노려보았다.
“아뇨! 저는 마법사고 모자란 사람도 아니에요! 브루노, 이 문제의 핵심은 제가 아니라 망토를 두 개 입으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든 융통성 결여된 사회부적응자에 엄청난 강박의 소유자인 그들이 문제인 거예요! 그들 때문에 저처럼 자유로운 영혼들이 고통받는 거라고요.”
에런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찰나였다.
“고통에 고자도 모르는 놈이……. 쯧쯧.”
브루노는 어느새 마음의 평화를 찾았는지 에런이 꼭 쥐고 있는,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망토였던 것을 빼앗아 차분히 입혀주었다.
“내게 잘 잤냐고 물었어? 물론이지, 내가 못 잘 이유가 뭐가 있었겠어. 두 달 동안 네 녀석을 보지 않으니 행복하더군.”
에런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새망토에 나머지 팔을 집어넣었다.
“내겐 너랑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지옥이야. 하지만 버틸 수는 있지. 지금껏 나를 괴롭히던 머저리가 오늘 무사히 졸업하기만 하면 이제 평생 이 기숙사에서 볼일은 없을 테니까.” 브루노의 말에 에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졸업이요? 오늘? 그럴 리가……?”
브루노는 다시금 차오르는 분노를 누르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도 브루노의 아침은 여느 날과 별 다를 건 없었다.
꾀꼬리의 노랫소리에 깨어나, 쭈욱- 기지개를 켜며 맞이하는 아침.
그는 가장 먼저 깊은숨을 들이쉬며 싱그러운 생명과 활기로 가득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칙칙하거나 음침할 거라는 학생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의 공간은 아름다움에 가까웠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꽤 만족스러운 오해를 풀기 위해 브루노가 그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방에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보여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꽁꽁 숨겨진 그의 방을 찾아낼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갖춘 마법사 또한 이 기숙사 내부에서 만큼은 절대 있을 수 없기에 앞으로도 쭈욱 학생들은 브루노와 거리 두기를 할 것이다. 물론 딱 한 사람만 빼고.
브루노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와 양치를 하고 맛있게 구워진 식빵에 직접 키운 딸기로 만든 딸기잼을 발라 따뜻한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해 식기들을 세척한 뒤, 그의 방안에 있는 온갖 꽃과 식물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며 하루 동안 목이 말랐을 그들을 위해 물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책상에 올려진 황금색 편지봉투가 계속 그의 여유로운 아침을 방해한다는 점이었다.
브루노의 손끝이 떨리자 허공에 둥둥 떠있던 물뿌리개들이 진동을 하며 사방으로 물을 뿜어냈다.
브루노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물 뿌리개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빌어먹을!”
그가 허공에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책상 위에 놓여있던 황금색 봉투가 스르르 열리며 반으로 접힌 종이가 날아왔다.
아침부터 온 신경을 박박 긁어대던 보잘것없는 종이는 졸업식 당일이면 늘, 빼먹지 않고 보내오는 아르테 마법학교의 졸업식 안내장 겸 교장 데이먼이 손수 쓴 초대장이었다. 7년간 함께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한 말썽꾸러기들의 졸업식을 함께 축하하자는 의미로 보내온 것일 테지만 브루노는 꼴도 보기 싫은 골칫덩이들이 한데 모여 있을 졸업식 따위에는 발도 들이기 싫었다.
한 번도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으니 이 쓸모없는 종이를 보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지만 아르테 마법학교의 교장 데이먼은 늘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이번에야말로 방을 아주 꽁꽁 숨겨 놔야겠어.”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늘 그래왔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초대장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함께 동봉된 안내장마저 찢어버리려 할 때였다. 우습게도 그의 손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브루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노려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종이를 펼쳐 읽어 내렸다.
하지만 역시 읽지 말고 찢어버렸어야 했다. 읽고 나니,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확실하게 거슬렸다. 브루노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이게 옷장을 열더니 새로 사둔 망토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는 이를 갈며 졸업식의 관한 안내가 친절히 도 담긴 종이를 망토 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절대 네 녀석이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냐. 순전히 나를 위해서지.”
그는 방을 나서기 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거울에 비친 브루노의 얼굴은 매우 험상궂어 보였다. 그는 얼굴이 못나게 변해버린 까닭이 말썽을 몰고 다니는 학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오늘까지도 속을 썩이고야 마는 문제의 그 녀석, 바로 그 녀석 때문에 이마에 주름이 한 개 더 늘어났다. 브루노가 짜증스럽게 손가락을 튕겼다.
벽에 달린 거울이 큰 소리를 내며 뒤집혔다.
에런이 하품을 쩍 하며 졸린 눈으로 브루노를 쳐다봤다.
“브루노 그렇게 핑계댈 게 없었어요? 그냥 내가 보고 싶었으면 보고 싶었다고 하면 되지, 브루노도 참……!”
브루노가 황당한 듯 숨을 들이켜더니 얼굴을 감싸 쥐었다.
“도대체 난 왜 널 깨우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그래. 솔직히 걱정했어. 네 녀석이 오늘 졸업식이라는 걸 알았을까? 세상모르고 처자는 꼴을 보니, 몰랐겠지. 물론, 알았다고 해도 제 시간까지 못 갈 거라고 내 손가락을 걸고 장담할 수 있었다.” 브루노가 횡설수설하며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에런이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에이, 왜 손가락을 걸고 그래요, 브루노 손가락은 걸어도 사양할래요. 쓸데가 없잖아요.” 에런이 능글스럽게 웃으며 그의 활짝 핑 두 개의 중지 손가락을 자신의 두 중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브루노가 인상을 팍 찌푸리자, 에런이 사슴 같은 눈망울로 그와 눈을 맞추더니 과장되게 깜빡였다.
기숙사 학생들 누구라도, 지금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봤다면 오줌을 찔끔 지린 채, 꽁지 빠지게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에런은 예외였다.
브루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머저리의 열린 손가락을 툭 밀쳐냈다.
“아마 네가 깡통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 그런 네가 인생에 한 번뿐인 졸업식도 참석 못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야. 하지만 내 입장에선 네가 기숙사에 하루라도 더 붙어 있는게 비극이다. 그러니 당장 졸업식에 갈 준비를 해.”
그는 더 이상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얼굴을 비볐다.
브루노의 절망스러운 얼굴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록 허옇게 떴다. 그 모습이 진짜 유령 같았다.
에런이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얼굴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브루노가 몸서리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브루노가 늙긴 늙었나 보네요. 이런 걸 헷갈리다니, 졸업식은 내일이라고요! 7년 전만 하더라도 분명, 이마에 주름이 4개뿐이었는데, 이젠 5개네? 아, 세월이 야속해!” 소년이 브루노를 따라 하듯 얼굴을 비비더니 능글스럽게 손가락 틈으로 그를 바라봤다. “브루노처럼 안 늙으려면 더 자야지”
에런은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침대로 걸어갔다. 이에, 브루노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에런 시엔스.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머저리야.”
브루노는 차라리 꼴을 보지 말자는 심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안내장을 꺼내기 위해 망토에 손을 집어넣으려다가 오늘 개시한 새망토가 에런에게 입혀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절망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에런에게 다가가 망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으헤헤, 간지러워요” 에런이 멍청한 웃음소리를 내며 장난스럽게 그를 밀어냈다.
“가만히 좀 있어!”
“으헤헤헤헥, 간지럽다니까요?”
결국 참지 못한 브루노가 그의 이마를 세게 쥐어박고 나서야 에런의 몸부림은 잠잠해질 수 있었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가 으르렁거리며 에런의 품속에서 꺼낸 구겨진 종이를 소년의 눈에 들이밀었다.
“읽어보는 게 좋을 거야.”
에런은 아픈 이마를 매만지며 브루노를 째려보더니 귀찮은 듯, 그가 건넨 종이로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