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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음 Dec 01. 2024

5화, 친절한 안내소 직원

중앙관리국 입구 안내소, 대충 걸어 놓은 게 분명한 나무 팻말이 바람에 흔들렸다.

에런은 시선을 옮겨 텅 빈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안내소와 그 뒤로 보이는 낡은 문, 그리고 그것들과 어울리지 않은 고급스러운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전광판의 시계는 어느덧 9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따라 출, 퇴근 지옥줄이라 불리는 중앙관리국 안내소 앞은 휑 했다.

에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내소 창문을 두들겼다.

“오, 오늘 있는 졸업식 때문에 왔어요, 대전당이요. 헉, 헉” 

에런의 다급한 목소리에 알록달록한 커튼이 촤르륵 걷치더니 마르고 키가 작은 남자가 반갑게 에런을 맞이했다.

“반가워요. 위즐렛 모자를 쓰고 있는 걸 보니 마법학교 학생이시군요. 설마 아르테 마법학교 학생은 아니시겠죠? 그렇다면 조금 많이 늦었을 테니까요. 하하” 

남자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분명 남자는 필시 에런이 아르테마법학교 학생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저렇게 말하는 게 분명했다. 

졸업시즌에 맞춰 오늘만 해도 대전당에 예약된 졸업식 일정이 꽤 많을 테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학생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것일 테니까.

에런은 앞에 있는 남자가 에르테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친절한 직원이라고 생각하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그래도 제 순서가 오기 전에는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남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진짜 아르테마법학교 학생이신 거예요? 아르테마법학교라면 이미 졸업식이 시작됐을 텐데! 졸업식에 지각한 학생은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졸업식은 설레면서 긴장되고 또 두렵기도 한 날이잖아요. 혹시 어젯밤 잠을 설치셨나요?” 남자가 환상동물이라도 보는 듯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악의가 없다는 건 문제일까, 아닐까? 에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푹 자서 문제죠…… 배지드리면 될까요?” 에런이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자 직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푸른빛을 띠고 있는 둥근 전산기계를 손으로 쳐댔다.

“이걸 어쩌죠? 안타깝게도 조금 더 늦어지실 거 같은데요, 사실 방금 전 푸른 달 전산기계가 먹통이 됐거든요.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으니까 곧, 오긴 할 테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직원이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리자 에런이 절망적인 얼굴로 남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안내소 직원의 문제는 절대 아니었기에. 대신, 에런은 괜히 브루노의 이름을 원망스럽게 중얼거리며 남자의 명찰을 쳐다보았다. 정신이 이상해진 건지 남자의 명찰에 브루노의 이름이 보였다. 에런이 다급히 눈을 비볐다. 그러자 핑이라는 다소, 짧고 간결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핑이에요.” 남자가 명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에런을 보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에런 시엔스예요. 어차피 늦은 거, 조금 더 늦죠. 뭐.” 에런이 숨을 고르며 싱긋 웃었다.

에런시엔스라는 이름을 듣고 핑의 눈이 잠시 커졌다. 에런은 오히려 그의 반응이 크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대부분 욕을 하거나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하는데, 아 피할 곳이 없겠구나? 에런은 나름 중앙관리국의 안내소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별 볼 일 없이 작고 평범한 안내소 외부를 눈으로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얇은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에런과 핑이 서로의 눈을 마주한 채 무의미하고도 어색한 웃음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상공에서 빗자루를 타고 내려온 남자가 한 손에 빗자루를 쥔 채 안내소를 향해 다가왔다. 그제야 에런과 핑이 어색함에 참았던 숨을 급히 내뱉었다.

에르테아의 체계적 업무 시스템과 각종, 전산기계를 납품‧관리하는 푸른 달의 서비스센터 직원은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에런과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의 이목구비는 개성이 넘쳤는데 각진 얼굴에 눈밑에는 약간의 상처가 나있었고 눈썹은 매우 짙은 데다 눈매는 부리부리했다. 특히 그의 덩치는 안내소 안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처럼 온순해 보이는 핑의 약, 세배 정도는 될 정도로 거대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거대할 수 있지? 설마 거인족……? 이 이곳에서 이렇게 활보하며 다닐 일은 없지. 그들은 매우 폐쇄적인 종족들이니까.

핑은 에런의 반응에 푸른 달의 직원이 도착한 것을 눈치챘는지 재빨리 안내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핑이 약간의 존경심이 담긴 눈빛으로 푸른 달 직원에게 문제에 대해 떠들고 있는 사이, 에런은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직원의 가슴팍에 달려 있는 로고에 시선을 옮겼다. 

오묘한 차이가 있는 두 개의 푸른 달이 겹쳐 옅은 빛을 뿜어냈는데 영롱한 푸른 달은 방향에 따라 보름달 같아 보이기도 초승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직원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주변에서 얼쩡대는 에런이 몹시 불편했는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이에, 핑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내소로 그를 안내했다.

하지만 푸른 달 직원은 곧 자신의 키 보다 한참이나 낮은 안내소의 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우울한 얼굴로 허리를 푹 숙인 채 안으로 들어갔다.

 핑이 머리를 긁적였다.

“안내소 직원들은 전부 키가 작아서 미쳐 생각을 못했네요…….”

 에런은 한 번도 웃지 않는 푸른 달의 직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을 못 먹은 게 분명해요. 말할 힘도 없겠죠. 저도 그렇거든요.” 

에런의 말을 듣고 핑은 잠시 눈을 굴리더니 슬금슬금 자리를 이동했다. 정확히는 에런과 세발자국 떨어졌다.     

 푸른 달 직원이 입꼬리를 축 내려뜨리고 문제의 전산기계를 살펴볼 동안 무한 손가락 장난(손가락을 번갈아 칠 때마다, 손가락 개수를 더해주는 장난, 마법으로 손가락 개수를 늘릴 수 있음)을 치고 있던 에런의 앞에 핑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졸업 미리 축하드려요. 졸업식의 꽃은 역시 하룻 동안 변하는 지팡이 변환식이겠죠? 아주 멋있게 변했으면 좋겠네요.” 

에런은 도저히 몇 개가 되었는지 모르게 늘어난 자신의 손가락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그러자 징그럽게 늘어나있던 손가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에런은 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부분 고객이 있든 말든 한숨을 푹푹 내쉬는 푸른 달의 직원처럼 과한 친절을 베풀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핑은 에르테아 최악의 깡통으로 불리는 자신에게도 거리낌이 없이 친절과 관심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역시 긴장이 되네요.” 에런이 짧게 코를 훌쩍였다.

 “왜인지 물어도 될까요?” 핑의 부드러운 미소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인 에런이 입을 열었다.

 “에르의 샘물이 축복을 내려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뭐, 이런 걱정이 들어서요. 아시다시피 제가 조금, 아니 꽤나 말썽쟁이였거든요.” 에런이 애써 웃음 짓자 핑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걸로 저주받은 마법사가 된다면 에르테아는 이미 사라졌을 거예요. 학생 시절에 말썽 한번 안 부린 마법사가 어디 있겠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하지만 핑의 진심 어린 위로에도 마음속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여전히 에런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식 명칭은 [에르의 축복 수여식]으로 보편적으로 지팡이 변환식이라 불리는 이 행사는 에르테아의 개개인 마법사들에게 평생의 한 번뿐인 잊을 수 없는 기념일이 된다.

물론, 간혹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저주스러운 기억이 되기도 하지만…….


15살이 되면 마법학교를 졸업한 위즐렛은 정식으로 마법사가 될 자격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축복의 샘물을 보유하고 있는 운명의 영역에서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며 오래전, 개인의 신성한 의식을 모두 마법학교의 위임했다. 그렇기에 축복수여식이라는 명칭으로 졸업식과 함께 자리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마법학교에서 치러야 할 전통이 되었다. 

축복을 받는 행위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에르테아를 창조한 신, 에르의 무한한 힘을 품고 있는 샘물에 지팡이를 갖다 대고 짧은 주문만 외치면 된다. 그럼 불, 물, 바람, 대지, 사랑 각각의 축복이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마법사의 심장에 축복을 새겨 그들이 온전하게 마법의 힘을 다룰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무사히 에르의 축복을 받았을 때 비로소 위즐렛은 에르테아 사회의 일원임을 정식적으로 인정받으며 마법사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물론 이것 또한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고 이제는 졸업식을 끝마치기만 하면 자동으로 에르테아 시스템 상에 마법사라는 칭호가 등록되기에 축복을 품었든 말았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축복을 받고 못 받고의 차별을 굳이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반발은 에르테아를 뒤흔들 정도의 큰 갈등을 빚었고 에르의 순수한 마법사 혈통이라 하는 자들은 축복을 받지 못한 마법사들과 자신들을 똑같은 마법사로 인정할 수 없다며 굳이 급을 나눠 저주받은 마법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주받은 마법사들은 몇천 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 '왜 축복을 받지 못하는 마법사들이 생기는가?'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내지 못한 채 그 어디에서 위로도 환영도 받지 못하며 쓸쓸히 에르테아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분명 에르테아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은 그들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마법사들이 아닌, 에르테아에서 태어나 마법사의 자질을 지녔음에도 에르의 축복을 받지 못한 바로 그들일 것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다수의 마법사들은 소수의 마법사들을 배려 하는 대신 배척을 선택했다. 그게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마법사들에겐 가장 쉬우면서 만족스러운 선택일 테니까.

돌아가, 축복 수여식이 지팡이 변환식이라고 불리게 되기까지 꽤 재밌는 일화들이 많다. 그 많은 일화들이 생기는 이유라면 축복을 받는 과정에서 미처 조절하지 못해 빠져나간 힘이 매개체인 지팡이에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팡이의 변화는 대게 색이 변하거나 무늬가 새겨지는 것으로 그치지만 때때로 그 사람의 비밀스러운 성향이 들어 나버리기도 한다.

자신이 간절히 바라 거나 좋아하는 것,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스럽고 사적인 욕망이나 일반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지팡이에 문양처럼 새겨지거나 알 수 없는 형태로 뿜어져 나와 당사자는 물론 수많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때문에 많은 수습 마법사들이 축복을 받아 온전한 마법사로 거듭나는 그날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한편 으로 두려워하기도 한다. 혹시, 지팡이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은 놀림거리가 될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흑역사를 뒤엎을 만큼 강력한 최악의 사태는 역시, 에르의 축복을 하나도 받지 못해 모두의 앞에서 저주받은 마법사로 낙인 찍혀 버리게되는 상황일 것이다.


생각에 잠긴듯한 에런을 가만히 바라보던 핑이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팡이변환식, 대부분의 위즐렛은 그날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할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지만 저는 마법학교에 입학을 할 때부터 걱정을 했었답니다. 제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들, 선생님들 심지어 가족들도 우스갯소리로 제 차례가 되면 샘물도 소심해져서 하루종일 무슨 축복을 줘야 할지 고민할 거라며 늘 놀려댔거든요. 결국, 그날이 찾아왔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죠. 무대는 어떻게 올라갔고 또 주문은 어떻게 외웠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난답니다. 뭐 하지만 저처럼 걱정 많은 사람도 축복은 잘만 받았으니 문제없는 거 아니겠어요?” 

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에런이 핑을 바라봤다.

 “……졸업식 날,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사랑의 축복을 받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지팡이에서 좋아하는 여자애의 얼굴이 풍선처럼 떠다녔죠. 물리적인 힘으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친구는 지팡이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요. 지팡이를 망토 속에 쑤셔 넣어도 풍선이 망토 사이를 헤집고 나와 둥둥 떠나녔죠. 터뜨려지지도 않았고 찌그러뜨려도 요리조리 손가락으로 빠져나와 다시 빵빵해졌죠.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답니다.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그 친구의 지팡이에 자기 얼굴이 둥둥 떠다니자 기겁을 하며 펑펑 울어버렸거든요.” 

핑이 씁쓸한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건이 소심했던 그 친구에겐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하지만 그 덕분인지 더 이상 부끄러울 게 없었다나 봐요. 평생 달고 다녀야 할 줄 알았던 그의 소심한 성격이 고쳐진 거예요. 지금은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오히려 더 재밌고 즐겁다고 하더군요.”

 에런은 핑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다시 흘끔 바라보았다.   

 명찰 뒤에 가려져 있던 그의 배지에서 연한 분홍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랑의 축복을 받았어……?

핑이 자신의 가슴팍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에런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지팡이는 잘 챙기셨겠죠?” 

 에런이 안타까운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백도 못해보고 차여버린 불쌍한 학생이 핑이었다니, 아니, 그 정도면 공개 고백인 건가.


 잠시 뒤, 푸른 달의 서비스센터 직원이 한숨을 내쉬며 안내소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문제는 잘 해결되었나요?” 핑의 물음에 직원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판때기 위 종이에 마법펜을 휘갈기더니 거칠게 잡아 뜯었다.

 “저희 푸른 달 전산기계는 특수한 배터리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배터리에 문제가 생겼더군요. 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유를 설명드리고 싶었으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하여 배터리를 회수하기로 했습니다. 추 후 문제보고서를 보내드릴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죠.” 핑이 건네받은 종이를 눈으로 대충 훑더니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새 걸로 교체해드렸으니까 기존과 동일하게 사용 가능 하실 겁니다. 정산서는 문제보고서가 나오는 날, 함께 보내도록 하죠. 그럼 이만,” 

그는 짧게 고개를 까딱하고 빠르게 빗자루를 타고 멀어져 갔다. 핑은 직원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나서야, 흡족한 표정으로 에런을 쳐다봤다.

 “푸른 달 직원 분들이 늘 고생이 많아요.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곳이라 늘 한분, 한분이 바삐 움직이죠. 그들 모두가 에르테아의 엄청난 천재라는 푸른 달 대장로가 직접 데려온 인재들이라 그런지 일처리도 기가 막힙니다. 저도 푸른 달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10년 전, 입사지원서를 보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죠. 공개채용을 하는 기관도 아닌데 무턱대고 입사지원서라니 아마 그때, 제 지원서를 받은 인사직원은 황당했을 거예요. 아, 지금 생각해 보니 푸른 달엔 인사직원이 없겠네요!” 

그가 재밌다는 듯 크큭거리며 웃어댔다. 하지만 에런은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은 수다쟁이께서 이제 그만 자신을 대전당 안으로 들여보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행운의 여신이 도와주셨는지 그 일 이후, 바로 중앙관리국 안내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에런이 잠시 움찔하자 핑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시엔스가 저를 직접 찾아와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참 좋은 분이셨어요. 지금 보니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핑은 그렇게 말하고는 안내소 안으로 들어갔다. 

에런의 심장 박동수가 갑자기 빨라졌다. 에런은 그의 등에 대고 묻고 싶었다.

그날 시엔스와 무슨 말을 나눴는지, 표정은 어땠는지, 기분은 어때 보였는지, 대화를 나누며 무슨 차를 마셨는지, 그리고 그도 웃을 때 나처럼 흰 이가 잔뜩 보이는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마음에 담고 싶었다. 

에런은 애써 빠르게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에런 시엔스 갑자기 왜 이래.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거야, 뭐야……. 지금까지 괜찮았잖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잖아. 


안내소 안에 들어간 핑이 부산스럽게 전산기계를 확인하더니 환하게 웃음 지었다.

“잘 작동하네요! 전보다 더 빨라진 거 같기도 하고요!”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에런이 꽉 쥔 두 주먹에 힘을 풀며 시선을 옮겼다.

어느덧 시간은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늦어서 마음이 바빴을 텐데 빠르게 처리해 드릴게요. 배지, 주시겠어요?” 

핑의 말에 에런이 말없이 가슴팍에 달려있는 배지를 쳤다. 그러자, 뭉툭한 배지가 에런의 손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배지를 건네자 핑이 배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런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는 지팡이 변환식이 있고, 실습과정신청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이상하게 변해버린 지팡이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거든요.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오후 늦게 실습과에 가서 과정신청을 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제 지팡이를 보고 놀려댈 가족들이 눈에 선했거든요. 그래서 기숙사로 갔어요. 절대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돈도 집도 없는 제가 갈 수 있는 곳이 기숙사뿐이었거든요. 다행히 브루노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들여보내줬어요. 그리고 제 지팡이를 보고도 전혀 비웃지 않았죠. 브루노가 꽤 무서운 사람이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에런은 그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브루노가 사납긴 해도 아무나 물진 않지. 

 “다음날 기숙사에서 눈을 떴어요 여전히 책상 위, 변해버린 지팡이를 보는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용기 내 지팡이를 잡았죠. 그 순간, 저를 심란하게 만들던 지팡이가 다시 보잘것없는 나무 지팡이로 돌아오더군요. 그리고 배지를 감싸고 있던 날개들이 꽃잎처럼 벌어지더니 7개의 모서리가 달린 에르테아의 별로 변했죠. 문제가 많던 제가 엄연히 에르의 축복을 받은 마법사가 됐다는 생각에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답니다.”

정말 그것 때문에 울었을까? 에런은 핑을 측은하게 바라보면서도, 불안한 눈빛으로 힐끔힐끔 시계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연회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에런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메버릭과 그의 친구 판이, 군침을 흘리며 다가와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에런의 우울함을 느꼈는지, 핑이 미안하다는 듯 입술을 말아 올렸다. 

“오늘따라 제가 눈치 없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네요. 금방 처리해 드릴게요.” 

그렇게 슬픈 이야기의 막이 내리고 그가 에런의 손에 들린 배지를 빠르게 낚아채갔다. 

그러자 에런이 기다렸다는 듯 저린 팔을 쭉 늘어뜨렸다. 

하지만 더 이상 붙잡혀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뻐서 그런지 따갑게 저려오는 팔이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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