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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음 Dec 15. 2024

7화, 얄미운 놈

에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메버릭 러크가 잔뜩 움츠러든 에런의 한쪽 팔을 잡은 채,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에런 시엔스 아니신가.” 메버릭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에런에게 쏠렸다.

 “깡통에도 급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거야? 귀하신 깡통이 되실 몸이라 그런가, 졸업식에 참석하는 태도부터 남다르네. 이렇게 늦게 오다니.” 메버릭이 비웃음을 섞어 말하자,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 사랑의 축복이라도 받으러 온 거야? 네까짓 게 시엔스의 아들이라고…… 차라리 오지 말지. 그래야 시엔스 가문의 체면이 덜 구겨질 거 아냐.” 그가 에런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속삭였다.

 에런은 무표정한 얼굴로 메버릭을 바라보았다.

 큰 키에 날렵한 이목구비, 뛰어난 마법 실력, 그리고 우수한 성적까지. 메버릭은 단연 눈에 가장 띄는 학생이다. 특히 여자애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완벽한 그에게 너무나도 부족한 게 있었으니, 바로 하자 있는 인성과 비뚤어진 성격이리라.

 그런 이유로 메버릭을 좋아하던 여자애들은 자신의 풋풋한 첫사랑을 놓아주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풋풋했던 첫사랑은 각자의 흑역사가 되어 마음 깊이 묻혔다.

“설마, 졸업식이 끝난 거야?” 에런이 덤덤히 묻자, 그가 하! 하며 낮게 코웃음을 쳤다.

 “에런 시엔스, 넌 참 운이 좋아. 네가 시엔스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너 같은 깡통 따위가 감히 이 졸업식에 발을 들이는 일도 없었겠지.”

에런은 적대감을 잔뜩 품고 자신을 쳐다보는 메버릭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는 뭐 그렇게 정 없게 성까지 부르고 그러냐? 그리고 운은 나보다 네가 더 좋지. 그렇게 말썽을 부려도 사람들은 네가 모법생인 줄로만 알잖아.”

에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메버릭의 손을 떼어냈다.

“너도 잘만 다니는데 나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아니, 넌 처음부터 이곳의 학생이 될 자질이 없었어.”

     

메버릭은 에런을 처음부터 매우 싫어했다. 틈만 나면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걸었다.

그 때문에 에런은 억울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지만 딱히 그를 신경 쓰거나 증오하진 않았다.

가끔, 메버릭이 도를 지나치면 에런도 참지 않고 그와 함께 난동을 부리는 게 다였다.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메버릭은 늘 자신이 피할 구멍을 만들어 놓았고, 결국 벌을 받는 건 단순한 에런이었다.

에런이 어깨를 들썩이며 씩 웃어 보였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생각을 바꿔야 할 거야. 난 다 축복 마법사가 되실 몸이거든.”

메버릭이 기가차다는 듯 에런을 위아래로 흘겼다.

에런은 혐오감이 깃든 그의 시선을 무시하며 연회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연회장의 문을 열었을 때부터 자신의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함이었다.

자신과 메버릭을 둘러싼 학생들 너머로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는 원형테이블이 보이자 에런의 눈이 반짝였다.

연회가 시작된걸 보니, 졸업식이 끝난 건가? 이렇게 빨리 끝날 리가 없는데…… 아무렴, 어때.

에런은 주린배를 움켜쥐고 홀린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언제 감은건지, 까치집 같은 머리와 망토 사이로 빼꼼 보이는 이상한 옷들까지 에런의 행색은 거렁뱅이와 다를 바 없었다.

학생들은 혹시라도 에런의 몸이 자신들과 부딪힐까 헛구역질을 하거나 코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며 급히 길을 내주었다.


에런은 아직 손이 닿지 않은 테이블이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때, 안경을 쓰고 볼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엽게 생긴 학생 하나가 에런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에런의 등을 퍽하고 내리치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에런, 왜 이렇게 늦었어!”

등을 얻어맞아 미간을 찌푸리던 에런은 남자아이를 발견하자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제리!”

눈앞의 소년은 아르테마법학교 필수교육과정, 자그마치 7년 동안 에런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은 친구이자 에런만큼이나 독특한 제리 쉬프였다.

“오늘 같은 날은 머리 좀 감고 오지!”

제리가 그의 까치집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 멈칫하며 손을 내렸다.

“무슨 일 있었어?”

“늦잠을 잤어, 브루노가 늦게 깨워줬거든.”

에런의 말에 제리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 1시간 동안 음식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얼마나 지루했는지 몰라. 근데 너는 운이 좋았어.”

“아직 졸업식을 시작하지 않은 거야?”

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축복의 샘물을 길어오는데 생긴 작은 문제라는 게 아주 길어지고 있거든. 내가 보기엔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냐.”

제리는 에런을 보자마자 입이 근질거리는지, 그에게 몸을 밀착했다.

“축복의 샘물을 담아야 할 그릇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마법을 부여해 주는 마법사가 변덕을 부린 거지. 선생님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확실해. 졸업식이 1시간이나 미뤄질 만한 일은 이것 말고는 없거든. 하지만 멍청한 애들은 곧이곧대로 믿는 모양이야.”

“미뤄질 수도 있지.” 에런이 흘러내리는 침을 쓰읍 들이키며 걸음을 재촉했다.

“너도 멍청한 애들 중 하나냐? 순간이동문이 에르테아에 얼마나 많은데 이동 중 문제가 생겨? 이건 무조건 샘물그릇 문제라고!” 제리가 흥분하며 에런을 따라붙었다.

“아니, 인재가 그렇게도 없나? 어떻게 백 년이 지났는데 그릇에 마법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도 그 사람 한 명뿐일 수 있는 거야?”

“어려운 건가 보지.” 에런은 무심하게 대꾸하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저 음식들 먹어도 되는 거지?”.

입맛을 쩝쩝 다시는 에런을 보며 제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이미 질려서 입맛이 없으니 너라도 많이 먹어. 저쪽 테이블 음식은 손도 안 댔네.” 제리는 가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에 에런이 재빨리 몸을 틀었다. 그때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메버릭이 잔뜩 심술 난 얼굴로 에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네 까짓게 다축복 마법사? 나는 오늘 네 지팡이 변환식이 아주 기대가 돼.” 메버릭은 에런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축복의 샘물은 마법사를 꿰뚫어 본다지? 그런데 너는 마법실력도, 머리도 빈 깡통인데 그런 너에게 줄 축복 따위가 과연 있을까? 너에겐 사랑의 축복도 아깝지.”

메버릭의 말에 옆에 있던 메버릭의 단짝 친구, 판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리가 ‘얘 또 왜 저래?’라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에런을 바라보자 에런이 힘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제리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에런의 어깨에 올려진 메버릭의 손을 대신 쳐냈다. “러크, 개소리 끝났으면 이제 꺼져줄래? 우리가 할 얘기가 좀 많아서 말이야.”

그러자 주근깨가 잔뜩 박힌 판이 제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제리가 판의 손을 쳐냈다.

“넌 걱정도 안 되냐?” 판이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샘물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저주받은 마법사가 나오기라도 하면 함께 졸업하는 우리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될 거라고! 너야 깡통을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이라 이해한다만 우리 같은 평범한 마법사 입장도 좀 생각해 줘.”

판이 슬픈 척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그의 얼굴에 박혀있는 주근깨는 춤을 추듯 들썩거렸다. 제리의 얼굴이 구겨졌다.

메버릭이 그런 제리를 비웃으며 에런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꿈상점에 수습지원서를 넣다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충격적이긴 해. 그래도 마법사 체면이 있는데 차라리 지하감옥은 어때, 설마 지하감옥에서까지 반려당하진 않을 거 아니야.”

에런은 순간 뜨끔했다. 어쩐지 메버릭은 에런의 지원내용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다행인 점은 최신 정보까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판이 메버릭의 팔을 툭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메버릭, 너 지금 수습기관을 말하는 거야? 누가 지하감옥 같은 곳에 수습지원서를 내? 거기는 와달라고 사정해도 모두가 거절할걸?” 판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자 메버릭이 팔짱을 꼈다.

“저주받은 마법사들은 버러지 같은 외부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그들을 받아 줄 곳은 그런 혐오시설 밖에 없으니 그곳에 지원할 수밖에.”

메버릭이 에런을 위아래로 훑으며 그를 비웃었다.

“그런데 에런은 외부인이 아니잖아. 멍청하긴 해도 저주받은 마법사가 될 리도 없지. 왜냐면 저 녀석의 아버지는 다축복 마법사…….” 판이 눈치 없이 말하자, 메버릭이 짜증 섞인 눈길을 보냈다.

“여도 에런이라면 저주받은 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높지……!” 판이 얼른 말을 잇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만약, 저주받은 마법사가 된다면 차라리 안식(마법사의 죽음)에 들고 별로 태어나고 말겠어(마법사는 죽으면 생명의 힘을 담은 별로 다시 태어난다는 전설) 그런데 저주받은 마법사도 별로 태어날 수 있나?”

메버릭은 혀를 차며 비웃음을 흘렸다.

“에르테아를 좀 먹는 버러지 같은 외부인들도 위선자들의 배려 아래 주제도 모르고 에르테아에 발을 들여놓고 사는데, 저주받은 마법사라고 해서 죽을 필요까지 있겠어? 다만, 반쪽 자리 마법이라도 쓰기 위해 그 비싼 에르석을 충당하려면 어디 잡 심부름이나 하인 일이라도 하며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야겠지. 뭐, 그 점에서 에런, 넌 별로 걱정할 건 없잖아?”

에런은 그의 말을 무시하려 했지만 메버릭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면 테아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더러운 힘을 얻어 살아가는 방법도 있겠지. 뭐 유일하게 저주받은 마법사를 환영해 주는 곳은 그곳밖에 없을 테니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그의 말이 끝나자, 소란스러웠던 연회장안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내내 표정을 굳히고 있던 에런이 조용히 웃음을 흘리더니 메버릭을 향해 다가섰다.

“너 내가 다축복 마법사가 될까 봐 겁나는구나? 테아를 추종하는 무리까지 입에 담는 걸 보니 말이야”

메버릭의 얼굴이 굳어졌다.

“난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데 넌 그들에 대해서 좀 아나 봐? 설마 불의 축복을 못 받아 집에서 쫓겨날까 봐, 미리 알아보기라도 한 거야?” 에런이 너스레를 떨자 제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판이 황급히 나서며 소리쳤다.

“러크 가문은 지금까지 하나의 축복만을 이어온 고귀한 혈통, 아르칸이라고!”

“흠, 고귀는 무슨……! 그래봤자 다 축복 마법사가 되지 못한 마법사들이 스스로 위안하려고 만든 말 일 뿐이지.” 제리의 중얼거림의 메버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쉬프, 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무리 덜떨어져도 스스로 네 가문에 침 뱉는 말은 삼가하도록해."

제리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시엔스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시엔스의 명성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 같아?” 메버릭이 으르렁 거리듯 속삭이자 에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걱정은 넣어둬, 적어도 진짜 운 좋은 너희 아버지가 중앙관리국을 열심히 지켜주고 있을 때까진 계속될 테니까.”

제리가 옆에서 휘파람을 불어대며 깐족댔다.

메버릭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꽉 쥔 두 주 먹이 부들거렸다.

“그러니 네 걱정이나 해. 러크가야말로 아르칸이라는 거 빼면, 사실 별거 없잖아. 네가 그 명성을 날려먹으면 네 아버지가 많이 노여워하실 거야.”

마지막 에런이 못을 박자, 메버릭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판이 얼른 그를 제지했다.

“메버릭, 진정해. 선생님들이 보고 있어.”

그의 말에 메버릭이 이를 악물며 한발 물러섰다.

“에런 시엔스, 널 받아 줄 실습기관도 없는 마당에 언제까지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까?”

“내 걱정은 그만하고 네 걱정이나 하라니까?” 에런이 귀를 후비며 메버릭을 지나쳐 가려하자, 메버릭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시엔스의 후계자가 저주받은 마법사라도 된다면 에르테아 전체가 떠들썩할 거야. 그렇다면 제 아무리 시엔스라도 얼굴 들고 다닐 수 있겠어? 넌 시엔스 가문의 수치야. 에런.” 메버릭이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에런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네 주제에 시엔스의 권능을 지킬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나가떨어지니…… 좀, 실망스럽긴 해. 이런 놈이 매일 잘난 척, 여유로운 척, 나대는 꼴을 보니 내 속이 뒤틀릴 수밖에. 하지만 이젠 끝이야. 넌 이름만 시엔스인 그저 멍청한 깡통으로 남을 거고 책임감 없이 사라진 네 아버지의 명성도 조만간 산산조각 나겠지.” 그가 낮게 속삭이며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메버릭”

에런이 차분히 속삭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지? 네가 나에게 이런 같잖은 자격지심을 갖게 된 게?” 에런이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입학식 때, 네가 친구들에게 네 아버지가 중앙관리국의 대장로라고 떠들어댔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네 아버지는 중앙관리국의 대장로가 아니야! 왜냐면 그곳은 나의 아버지가 권능으로 세운 곳이고, 너희 아버지는 단지 우리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임시로 맡고 있는 사람일 뿐이야! 라고말이야. 생각나지, 메버릭?” 에런이 여유롭게 웃었다.

메버릭의 몸이 분노로 떨렸다. 에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힘을 주었다.

“내가 지금껏 참아준건 네가 불쌍했기 때문이야. 네 아버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중앙관리국은 데릭 시엔스, 나의 아버지 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에런이 메버릭을 꿰뚫어 보듯 바라봤다.

“그래서 나라도 어쩌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가서 네 아버지에게 전해. 날 아무리 막으려 해도 가만히 당해주지 않을 거라고. 난 반드시 수습과정을 통과할 거고 너와 네 아버지가 바라는 깡통마법사로 남지 않을 거니까. 그러니, 축배는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오면 함께 들자. 메버릭.”

에런이 그의 어깨를 두어  치자, 그가 에런의 팔을 쳐내며 분노의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에런이 조용히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쉿, 모범생은 조용히 있어야지. 설마, 최고의 학생으로 졸업할 기회를 이렇게 날리시려고?”

이에, 메버릭이 움찔하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 난 너 같은 머저리는 아니라서 말이지.”

그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여유롭고 재수 없는 특유의 표정으로 에런을 바라봤다.

“지원서를 낼 때마다 족족 반려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불쌍해서 내 수습기관 중 하나를 양보해주고 싶을 정도로 짠하더군. 난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아서 첫 수습으로 어디가 좋을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데 말이지. 아, 너한테 할 얘기는 아니었나?”

메버릭이 비아냥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모두에게 내쳐져 깡통마법사로 남아야 된다면 무척이나 수치스러울 텐데 에르의 축복마저도 못 받아 저주받은 마법사가 된다면 넌 더 이상 교장이 주는 보호 아래에서도 온전치 못하겠지. 그러니 사랑의 축복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빌어 봐. 그거라도 받아야 덜 창피하지 않겠어?”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보란 듯이 에런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판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에런은 메버릭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책상 밑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는 반려된 수습지원서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에런은 당장이라도 메버릭의 등에 올라타  달째 신고 있는 구멍  양말을 그의 입에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아마, 제리가 음식이 가득 담긴 테이블을 향해 조금만 늦게 끌고 갔다면 결국 오늘도 참지 못하고 메버릭에게 달려들어  소동을 만들었을 것이다.

제리가 에런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참아, 에런,  녀석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하는 꼭두각시잖아. 아마,  팍팍하고 지루한 기관에서 수습할걸? 하지만   마음대로 선택할  있잖아.”

에런의 속사정을 알리없는 제리의 속삭임에, 에런의 얼굴에 또다시  파도가 일렁였다. 에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억눌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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