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사] 5. 데이터적인 사고
3516 : 3*5 - 1*6 = 9
부모님과 차를 타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던 아이는, 어쩌면 여행보다는 많은 차들이 있는 곳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번호판에 달린 수많은 번호들 덕분에. 늘 목표로 하는 숫자를 하나 정하고, 네 자리 숫자 사이에 연산자를 넣어 어떻게든 목표를 이뤄내려고 노력했다. 가장 만들기 좋아했던 숫자는, 9였다.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는, 공대 진학을 희망하지만 엔지니어가 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다양한 과와 진로를 탐색하던 중,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처음 과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알려준 과방의 비밀번호는 가히 충격적이다.
7과 1로 시작하는 여섯 자리 피보나치수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신기했다. 숫자 두 개만 외워도 전체를 금방 유추해낼 수 있으니 효율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효율과 숫자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과 친구들과 일상에서도 숫자를 가지고 최적화를 논하는 순간들은 너무 행복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산업공학과에 입학해서는 다양한 통계적 지식을 가지고 여러 산업에 적용을 시키는 전공 수업들에도 꽤나 만족하며 성실하게 공부한다. 그러다 마케팅 수업을 듣고 데이터에 관심을 가진다. 이제는 정말 유명해져 버린 월마트의 맥주와 기저귀 사례를 보고. 어쩌면 데이터는 사람들의 무의식까지 숫자로 표현해줄 수 있는 엄청난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는, 데이터에 기반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더 노력한다. 데이터가 없는 가설적 추론과 결론을 지양한다. 물론 가설적 결론을 세우고, 그에 해당하는 데이터가 뒷받침해준다면 꽤나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데이터로부터 추론된 주장들이 적어도 내겐 더 설득력 있다.
처음 팀원들과 만나 논쟁을 할 때는, 데이터에 기반해서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수많은 토론 속에서 추측성 주장을 하는 팀원들에겐, 데이터를 가져와서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들이 모두 정답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 멀리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지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건 그 짧은 순간에 당연하고도 가장 중요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익숙해지면서 논쟁거리와 논쟁에 소요되는 시간도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는 게 보인다. 멀리 돌아온 덕에 노하우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데이터에 기반하여 사고하고,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팀이 되어간다.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숫자의 매력에 더 빠져든다. 숫자를 좋아하는 팀 안에서.
by 방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