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넘어 나만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법
⏹️ 이 글은 『일의 복리』시리즈의 PART 3입니다.
40년 직장생활에서 배운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기술을 나눕니다.
2019년 2월, 56세. 9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소 복도에서 후배가 말했다. "박사님, 축하드립니다!" 그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그동안 "OOO 씨, OOO 선임, OOO 책임"으로 불리다가, 드디어 "OOO 박사님"이 되었다. 호칭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호칭은 단순한 예우가 아니었다. "이제 아무도 내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자격증이었다.
2010년, 나는 47세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24년을 일했고, 안정적인 직장과 괜찮은 연봉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이제 편하게 정년까지만 다니면 되잖아." 하지만 나는 불편했다. 박사가 많은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만으로는 항상 한 발짝 뒤에 있는 느낌이었다.
회의에서 내 의견을 말할 때마다: "OOO 씨 말도 맞긴 하는데..." 뒤에 오는 건 항상 "하지만"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박사 학위가 있는 동료가 하면 무게가 달랐다. 학벌이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자존감을 올리고 싶었다.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박사 과정에 지원했다. 한국 정보보호 분야 최고 전문 대학원 중 하나였다. 47세 직장인이 합격할 수 있을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좋은 직장 다니는데 왜 사서 고생을?" "그 나이에 박사가 무슨 소용이야?" "정년까지 10년 남짓 남았는데 지금 시작해?" 타당한 질문들이었다. 투자 대비 효용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딸이 대학생이 되며 독립했고, 이제 나도 내 꿈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결심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한다.'
박사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첫 수업날, 강의실에 들어섰다. 다들 무척 젊어 보였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자리에 앉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일주일에 1~2회, KTX로 대전-서울을 오갔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수업이 있는 날은 반차를 내고 서울로 올라가 수업 듣고, 늦은 밤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다. 연구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로 췌장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올라갔다. 이 수치는 졸업 후 몇 년 뒤까지 지속되었다. 가장 힘든 건 논문이었다. 연구소에서는 프로젝트 보고서를 쓰지만, 학술 논문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논문 테마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테마를 잡고 시작하려고 하면 벌써 또 지난 기술이 되어버렸다.
2016년 어느 날,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그만둘까?' 하지만 집에 가는 KTX 안에서 노트를 다시 펼쳤다. 2018년, 드디어 테마를 잡았다.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각오로 논문 작성에 매달렸다. 3kg가 늘었다. 겨우 3kg이지만, 거의 평생 유지해 오던 표준체중에서 과체중으로 넘어가는 몸에선 큰 변화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낮에는 연구소 일을 해야 하니까 새벽과 한밤에 매일 조금씩, 논문을 다듬고, 수정하고, 다시 제출했다. 이것이 복리다. 매일 1%라도 나아지면, 언젠가는 완성된다.
학위를 받던 날, 내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임신한 상태로 대전-서울을 오가며 석사 과정을 다니던 27~8세. 기숙사에서 혼자 입덧하며 석사 논문을 쓰던 밤들. 20년 동안 딸과 대전에서 주말을 기다리던 시간들. 딸이 새벽에 갑자기 열이 나 응급실에 갔던 일들. 47세에 다시 학생이 되어 강의실에 앉던 두려움과 설렘. KTX에서 시간을 쪼개 논문 읽느라 라식 후 회복된 시력이 다시 나빠졌다. 30년에 걸친 공부의 복리가 드디어 완성된 순간이었다. 학위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박사 학위가 내게 준 것은 타이틀만이 아니었다.
첫째, 자존감의 회복
"OOO 씨" 대신 "OOO 박사님"이라는 호칭. 이 변화가 내 내면을 완전히 바꿨다. 더 이상 회의실에서 위축되지 않았다. 내 전문성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둘째, 일하는 방식의 변화
박사 과정을 거치며 "총망라해서 정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길러졌다. 연구소 업무를 대할 때: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게 되었다 흩어진 정보를 구조화하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법을 배웠다 오히려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
셋째, 명함 너머의 정체성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회사가 없어도 나는 전문가다"라는 확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OOO 책임연구원 → 언젠가 사라진다. 고대 정보보호 OOO 박사 → 평생 내 것이다. 명함은 회사가 주지만, 전문성은 내가 쌓는 것이다.
2025년,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 2025년 10월, 나는 62세로 정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최대 2028년 10월까지 연구전문위원으로 주 3일 근무한다. 그리고 그때 진짜 은퇴를 한다. 지금 나는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 40년 경력자에서 → 일의 복리 전문가로.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 '일의 복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종이책을 준비한다. 강연을 계획한다. 47세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을 때처럼, 62세에 작가의 길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또 물어본다. "그 나이에 왜 또 새로운 걸 시작해?" 내 대답은 30년 전과 같다. "나의 전문성을 만들고 싶다."
어느 날 깨달았다. 나를 소개할 때 항상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OOO입니다." 회사 이름이 먼저였다. 회사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 같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달라졌다. "저는 IT 정보보호 분야 전문가 OOO 박사입니다." 회사가 바뀌어도 나의 전문성은 남았다. 당신의 LinkedIn 프로필에서 회사 이름을 지웠을 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진짜 자산이다.
박사 학위가 정답은 아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일 뿐이다. 어느 동료는 자격증으로 전문성을 증명했다. 어느 후배는 포트폴리오로 전문성을 증명했다. 어느 선배는 강연과 글쓰기로 전문성을 증명했다.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말했다. "성장은 증명이 아니라 개선에서 온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증명'이 필요하다. 당신이 아무리 잘해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인정받기 어렵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은 OOO 전문가다"라고 타인이 인정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만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47세에 시작해서 56세에 끝냈다. 만약 57세에 시작했다면? 66세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중국 속담이 있다. "나무를 심기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고, 두 번째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30대라면, 40대의 당신을 위해 지금 심어라. 40대라면, 50대의 당신을 위해 지금 심어라. 50대라면, 60대의 당신을 위해 지금 심어라.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47세에 시작하면서 나도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지금 62세인 나는 안다.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박사 학위증은 벽에 걸려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정보보호가 아니다. 글을 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박사 학위가 직접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9년간 논문을 쓰며 배운 "정리하고, 분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지금 이 글을 쓰는 데 쓰이고 있다.
전문성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 아니다. 배우고, 성장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진짜 "명함이 사라진 후에도 남는 것"이다.
3kg를 빼는 데 7년이 걸렸다. 2018년, 논문 때문에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로 과체중 되었다. 2025년, 드디어 표준으로 돌아왔다. 7년이나 걸렸다. 2019년부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몸무게는 점점 더 늘어났고, 엔데믹 즈음에 운동을 시작해서 겨우 원상복귀를 했다. 필라테스와 헬스를 꾸준히 했다. 하루하루 그것이 더해져 갔다. 몸도 복리다. 전문성도 복리다. 인생 전체가 복리다. 빠른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 하지만 멈추지도 마라. 매일 1%씩 나아가면, 10년 후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것
첫째, 내 전문성 문장 만들기. "저는 [OOO 분야]의 전문가입니다"를 완성하라. 회사 이름 없이 소개할 수 있는가? 3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도 이 문장이 유효한가?
둘째, 10년 후 명함 상상하기. 10년 후 당신은 무엇의 전문가가 되어 있고 싶은가? 그것을 증명할 무언가가 있는가? 지금 심지 않으면 10년 후에도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셋째, 한 가지 투자 시작하기. 자격증, 학위, 포트폴리오, 글쓰기... 무엇이든 좋다. 단, 10년 후에도 가치 있을 것을 선택하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47세에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62세에 다시 시작하고 있다. 당신은 충분히 젊다.
⏺️ 당신이 미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10년 후 "그때 시작했더라면..."이라고 후회하지 마세요.
"저도 늦게 시작하려는데..."
"박사/자격증/새 기술 고민 중인데..."
댓글로 질문 남겨주세요. 답변드립니다.
PART3. 성장의 복리: 평생 직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라
[■□□] 1/3
다음 글 예고: 열심히가 아닌 지속적으로 일하라
▶️ 매주 일요일 오전 8시 『일의 복리』 시리즈가 연재됩니다. [+구독] 버튼을 눌러주세요!
당신의 꾸준함에 복리를 붙이세요 - @일의복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