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란, 단지 의지력의 부재나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뇌과학적으로 가장 완벽하고도 끔찍한 형태의 ‘뇌 해킹(Brain Hacking)’이다.
인간의 뇌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에 직면하면 생존을 위해 강력한 보상을 갈구하게 된다. 이때 알코올이라는 화학 물질이 투입되면, 뇌는 그것을 고통을 끊어주는 ‘유일한 동아줄’로 착각하고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비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스위치는 영구적으로 망가지고, 오직 알코올을 향한 갈망과 피해망상만을 뿜어내는 파충류의 뇌, 즉 편도체만이 비대하게 살아남는다.
서지안은 이 일련의 화학적 변이 과정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사냥감의 숨통을 물리적으로 조를 필요 없이, 그들의 뇌가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하도록 아주 달콤한 미끼만 던져주면 되었으니까.
목요일 오전. 이사회 프레젠테이션을 하루 앞둔 미래전략 R&D 센터 30층.
센터의 공기는 마치 시한폭탄을 품은 듯 팽팽하고 건조했다. 연구원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모니터만 노려보았고, 누구도 센터장인 백도훈의 집무실 근처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투명했던 집무실의 유리벽은 이제 블라인드가 끝까지 내려져 완벽한 밀실이 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도훈은 며칠째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핏발 선 눈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덜덜, 덜덜.
그의 왼쪽 다리가 신경질적으로 떨렸고, 마우스를 쥔 손끝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떨어지면서 뇌 신경이 비명을 지르는 금단 증상이었다. 모니터 속의 수만 줄짜리 코드가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환각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하아… 집중, 집중해야 해.”
도훈은 헐떡이며 재킷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그의 손끝에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의 감촉이 닿았다. 며칠 전 서지안이 쥐여주었던 순은 플라스크.
도훈은 그것을 구원자의 손길인 양 꽉 쥐고 뚜껑을 열었다. 코끝을 찌르는 58도짜리 위스키의 독한 알코올 향기. 평범한 인간이라면 냄새만으로도 식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겠지만, 도훈의 뇌는 반사적으로 황홀한 도파민을 뿜어내며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그는 플라스크를 입술에 대고 뜨거운 액체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울컥, 하고 식도를 태우며 넘어간 독주가 위장에 닿는 순간. 곤두서 있던 신경망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마취되는 찌릿한 쾌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크으….”
도훈은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떨리던 손끝이 진정되었고, 환각처럼 춤추던 코드들이 다시 정렬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뇌 기능은 알코올에 짓눌려 형편없이 둔화된 상태였지만, 마취제로 인해 불안감이 사라진 도훈은 자신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천재적인 상태에 도달했다고 맹신했다.
‘그래, 이 아이디어야. 1팀 쓰레기들이 짠 로직은 다 갈아엎어 버려야 해. 내가 직접, 내 직관대로 짜는 게 완벽해.’
도훈은 다시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가 작성하는 코드는 기존의 안정성을 완전히 무시한, 그저 개인의 기괴한 직관과 아집으로만 점철된 파괴적인 결과물이었다. 협업을 위한 주석은 모두 삭제되었고, 시스템의 안전을 담보하는 방어 로직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모조리 날아갔다.
천재의 뇌가 알코올이라는 괴물에게 완벽하게 운전대를 넘겨준 순간이었다.
똑똑.
고요한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도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야! 오늘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대답 없이, 묵직한 오크목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역광을 등지고 서 있는 실루엣.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크림색 실크 블라우스와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 그리고 그녀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들려오는 규칙적이고 서늘한 굽 소리.
서지안이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서류 가방 대신, 검은색 벨벳으로 감싸인 작고 묵직한 가죽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바쁘신 줄은 알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요.”
지안의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나긋나긋하고 우아했다. 도훈은 날을 세우려던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방이 적의로 가득 찬 이 삭막한 30층에서, 오직 그녀의 주변만이 완벽한 무균실처럼 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 실장….”
“얼굴이 반쪽이 되셨네요. 어제도 한숨도 못 주무셨죠?”
지안은 블라인드가 내려진 어두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익숙하게 도훈의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집무실 내부는 엉망이었다. 구겨진 서류들과 빈 커피잔, 그리고 씻지 않은 사내의 퀴퀴한 체취와 알코올이 발효되는 시큼한 냄새가 뒤섞여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여성이라면 당장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렸을 테지만, 지안의 표정에는 어떤 혐오감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 타락의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며 황홀경을 느끼는 듯했다.
“저 밖의 멍청한 것들이 뭘 알아야 지시를 내리지. 결국 PT 전날까지 내가 일일이 코드를 뜯어고치고 있어.”
도훈이 충혈된 눈을 부비며 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들었어요. 실무진들이 단체로 업무를 보이콧하고 있다면서요?”
지안의 말에 도훈의 눈빛이 독사처럼 번뜩였다.
“보이콧? 지들이 감히? 내가 누군데!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받던 연봉의 반 토막을 받고 이 회사에 와서 어떻게 헌신했는데!”
“그러니까요. 그들은 전무님의 헌신을 모릅니다. 아니, 두려워하는 거겠죠. 자신들의 평범함이 전무님의 빛나는 천재성 앞에서 너무 초라하게 비교되니까.”
지안은 가죽 케이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타인의 피해망상에 합리적인 명분을 부여해 주는 가스라이팅의 정석. 지안의 그 한마디는 도훈의 편도체를 맹렬하게 자극했다. ‘그래, 내가 틀린 게 아니야. 저들이 무능하고 질투심이 많아서 나를 고립시키는 거야.’
“그들은 지금 어떻게든 전무님이 내일 PT에서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무능이 덮어질 테니까요. 제가 듣기로는, 1팀과 2팀 수석들이 이미 부사장님 라인 쪽에 줄을 대고 다음 센터장 자리를 논의하고 있다더군요.”
완벽한 거짓말.
하지만 편집증에 사로잡힌 도훈에게 지안의 말은 반박할 수 없는 끔찍한 진실로 다가왔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뭐? 그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내 자리를 넘봐? 하….”
도훈은 호흡이 가빠지며 무의식적으로 재킷 안주머니의 플라스크를 찾았다. 하지만 지안이 한발 빨랐다. 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가죽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부드럽게 열었다.
딸깍.
케이스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빛 액체가 담긴 크리스털 디캔터와, 정교하게 세공된 글라스 두 잔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전무님의 밤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수호자를 모셔 왔죠.”
지안이 디캔터의 묵직한 유리 뚜껑을 열자, 집무실 안으로 형언할 수 없는 깊고 농밀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말린 자두의 달콤함과 오크통의 묵직한 나무 향, 그리고 목을 태울 듯 강렬한 알코올의 독기가 완벽하게 조화된 향.
“이건….”
“1970년 빈티지 아르마냑(Armagnac). 프랑스의 어느 수도원에서 수십 년간 빛을 보지 못하고 봉인되어 있던 물건입니다. 도수 60도. 시중에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예술품이죠.”
지안의 설명에 도훈의 침샘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게 도수 60도의 최고급 증류주는, 목마른 사막의 여행자에게 내미는 생명수와도 같았다. 도훈의 시선은 이미 지안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의 손에 들린 크리스털 디캔터에 완벽하게 꽂혀 있었다.
“예술은, 예술로써 다스려야 하는 법이니까요. 오늘은 저도 한잔 거들겠습니다.”
지안은 잔 두 개에 황금빛 액체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점성이 느껴질 정도로 끈적한 원액이 잔에 부딪히며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녀는 잔 하나를 도훈의 떨리는 손에 쥐여주었다.
“저 밖의 소음은 잊으세요. 내일 무대에서 전무님의 압도적인 코드를 보여주는 순간, 그들의 알량한 쿠데타는 흔적도 없이 박살 날 겁니다.”
챙-.
크리스털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 도훈은 홀린 듯이 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60도의 독주가 혀끝을 찌르고 식도를 타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위장에 닿는 순간, 몸 안에서 폭약이 터진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단 한 모금만으로도 뇌혈관이 수축하며 이성적인 사고가 완벽하게 마비되는 쾌감.
도훈은 밭은기침을 내뱉으면서도 황홀한 표정으로 잔을 핥았다.
“크으… 하아… 독하네. 진짜… 완벽해.”
“그렇죠? 이 한 잔이 전무님의 뇌 속에 엉켜 있던 쓸데없는 불안의 사슬을 다 끊어줄 겁니다. 자, 한 잔 더 받으세요.”
지안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두 번째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녀는 마치 피아노 건반을 조율하는 조율사처럼, 도훈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며 그를 한계치 너머로 서서히 밀어붙이고 있었다. 술이 들어갈수록 도훈의 눈빛은 흐려졌고, 발음은 눈에 띄게 뭉개지기 시작했다.
“서 실장… 지안 씨. 당신 말이 맞아. 내일, 내일 피티는 내가 다 엎어버릴 거야. 대본? 스크립트? 그딴 거 필요 없어.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걸, 이 압도적인 코드를 그 무식한 이사들 눈구멍에 쳐 박아주면 돼….”
“맞아요. 대본 따위는 평범한 사람들이나 외우는 거죠. 전무님은 무대 위에서 짐승처럼 날뛰셔야 합니다. 날것 그대로의 천재성을 보여주세요.”
지안의 달콤한 격려에 도훈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미 그의 전두엽은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사회 무대라는 공식적이고 엄숙한 자리의 성격, 수백억의 예산이 걸린 프레젠테이션의 책임감 같은 것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표백되었다. 오직 내일 무대에서 나를 억압했던 자들을 짓밟고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겠다는 파괴적인 나르시시즘만이 독주와 함께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일 무대에는… 나 혼자 올라간다. 1팀, 2팀 놈들 다 단상 아래로 꿇어앉힐 거야. 큭큭.”
도훈은 소파에 깊숙이 파묻힌 채, 지안이 따라주는 세 번째 잔을 비워냈다.
지안은 한 모금도 채 마시지 않은 자신의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붉게 달아오른 도훈의 얼굴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초점이 풀린 눈동자, 제어되지 않아 실룩거리는 안면 근육, 그리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알코올 냄새.
‘훌륭해. 이제 이 남자는 내일 무대 위에서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조차 통제하지 못할 거야.’
지안의 입가에 뱀처럼 차갑고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가장 잔인한 처형은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아니다. 처형대의 주인공이 스스로 못을 박고, 그것이 자신을 숭배하는 의식이라고 맹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지안은 백도훈이라는 오만한 천재에게 '영감'이라는 이름의 독배를 건네어, 그를 완벽한 정신적 노예로 전락시켰다.
“전무님. 밤이 깊었습니다.”
지안은 소파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도훈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도훈은 이미 눈을 반쯤 감은 채 알코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내일 오후 2시. 대강당 프레젠테이션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부적(플라스크) 챙기는 거 잊지 마시고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단숨에 비우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으응… 부적… 플라스크… 알았어, 지안 씨….”
도훈이 아이처럼 중얼거리며 재킷 안주머니를 쓰다듬었다.
지안은 디캔터와 잔을 가죽 케이스에 담아 정리한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을 나서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책상 위 모니터에 띄워진 도훈의 코드를 힐끗 바라보았다.
기괴하게 꼬여 있는 로직들. 시스템을 붕괴시킬 치명적인 오류들이 곳곳에 숨겨진, 마치 광인의 일기장 같은 코드들. 저 쓰레기 같은 데이터를 혁신이랍시고 이사회에 들이밀 도훈의 내일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찰칵.
문이 닫히고, 지안은 아무도 없는 R&D 센터의 어두운 복도로 걸어 나왔다.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의 초침이 새벽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지안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특감팀 오 과장에게 짧은 메시지를 전송했다.
[내일 오후 2시. 이사회 프레젠테이션 대강당. 보안팀 대기시키고, 현장 녹화 및 속기록 담당자 전면 배치할 것. 사냥감의 도축 장면을 아주 선명한 화질로 기록해야 하니까.]
지안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에 차갑게 메아리쳤다.
현대의 이단심문관이 세팅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단두대가, 수백 명의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천재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흉물스러운 괴물이 스스로 무대 위로 기어 올라와 제 목을 칼날 아래로 밀어 넣는 우스꽝스러운 쇼를 감상하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