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내러티브 조작

by 연구소장

인간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서사를 진실이라고 규정하는 나약한 동물이다.


중세 유럽 전역을 피로 물들였던 거대한 마녀사냥의 이면에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집필한 『마녀의 망치』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마녀를 감별하고 고문하는 방법이 적힌 이 한 권의 책은 인쇄술의 발달을 타고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대중의 뇌리에 ‘마녀는 실재하며 우리 주변에 숨어 있다’는 완벽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활자로 박제된 텍스트가 가진 전염성. 그것은 흑사병보다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21세기. 현대의 이단심문관 서지안은 낡은 양피지 대신 사내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와 인트라넷 게시판이라는, 전파력이 수만 배는 더 강력한 디지털 인쇄기를 쥐고 있었다. 백도훈이라는 오만한 우상을 완벽하게 고립시키기 위한 거대한 사냥의 두 번째 단계가 막을 올린 것이다.


수요일 밤 11시.


백도훈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실무진들의 싸늘한 보이콧에 직면하기 불과 반나절 전.


본사 22층 특별감사팀 집무실에는 오직 서지안의 모니터 불빛만이 푸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안은 최고급 가죽 의자에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기계식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사각, 사각. 타건음이 고요한 방안을 리드미컬하게 울렸다. 그녀는 지금 단순한 루머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천재의 사회적 생명을 영원히 끊어놓고, 그를 혐오스러운 사이코패스로 박제시킬 완벽한 처형 선고문을 집필하는 중이었다.


“거짓말이 대중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황금 비율은 정해져 있죠.”


지안은 커피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등 뒤에 서 있는 특감팀 박 대리를 향해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10퍼센트의 명백한 사실, 40퍼센트의 그럴싸한 과장, 그리고 50퍼센트의 감정적 공감대.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배합된 글은, 읽는 이의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을 가볍게 우회하여 분노와 공포를 주관하는 편도체에 직접 꽂힙니다.”


지안의 모니터 화면에는 이미 장문의 글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제목부터가 임직원들의 시선을 강탈할 만큼 자극적이면서도 묘한 비장함을 품고 있었다.


[미래전략 R&D 센터, 천재의 가면을 쓴 흡혈귀를 고발합니다.]


지안은 이 글의 화자를 특감팀 실장이 아니라, ‘백도훈 전무 밑에서 청춘을 바치다 신경쇠약에 걸려 퇴사를 앞둔 익명의 수석 연구원’으로 완벽하게 빙의하여 설정했다. 그녀의 문장력은 문학적이면서도 날카로웠고, 무엇보다 R&D 센터 실무진들이 겪고 있는 지독한 피로감과 절망을 소름 돋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천재라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사회에 제출하고 언론에 포장했던 그 찬란한 알고리즘과 로직들 중, 단 한 줄이라도 온전히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기생충입니다. 실무진들이 밤을 새워 짜 올린 코드를 교묘하게 짜깁기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를 내고, 정작 밤을 새워 아이디어를 낸 후배들은 실적 부진을 핑계로 타 부서로 쫓아냈습니다.’


지안은 백도훈이 부하들의 아이디어를 갈취했다는, 도덕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프레임을 씌웠다. 개발자들에게 아이디어 도용은 살인보다 더 끔찍한 금기다.


실제로 도훈이 남의 것을 훔쳤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평소 실무진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던 명백한 사실에, 아이디어를 빼앗았다는 과장을 섞어버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의 정신 상태입니다. 그는 심각한 조현병 망상과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습니다. 아침 회의실에 들어올 때마다 진동하던 그 역겨운 술 냄새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기행들. 우리는 그의 광기를 천재의 예민함이라 포장하며 견뎌왔지만, 돌아온 것은 재떨이가 날아오는 폭력과 인격 모독뿐이었습니다. 태성그룹 임원진 여러분, 이번 주 금요일 이사회 무대에 오를 남자는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천재가 아니라, 당장 폐쇄 병동에 격리되어야 할 미치광이일 뿐입니다.’


지안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문장을 천천히 복기했다.


알코올 의존증, 폭언, 그리고 성과 갈취. 대중이 가장 분노하기 쉽고, 가장 믿고 싶어 하는 자극적인 키워드들이 완벽하게 조립되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박 대리.”


지안이 묻자, 등 뒤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박 대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소름이 돋습니다, 실장님. 제가 R&D 센터 직원이었더라도 이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전무를 죽여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개발자들의 전문 용어와 실무 프로세스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녹아 있어서, 30층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입니다.”


박 대리의 눈빛에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선, 절대자를 향한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자, 이제 인쇄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지안이 나긋하게 지시하자, 박 대리는 즉각 자신의 해킹 장비가 세팅된 노트북을 열었다.


“사내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게시판, 그룹웨어 익명 토론방, 그리고 정보통신 업계 종사자들이 모이는 외부 대형 커뮤니티 세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매크로를 돌려 업로드하겠습니다. 아이피는 러시아와 동유럽 서버를 7중으로 우회시켰기 때문에, 본사 보안팀이 서버를 통째로 뜯어내도 최초 유포자는 절대 추적할 수 없습니다.”


“수고하세요. 아침 해가 뜰 때쯤이면, 태성그룹의 모든 임직원들이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아주 흥미로운 아침 연속극을 시청하게 되겠군요.”


지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유리창 너머, 짙은 어둠이 깔린 서울 도심의 밤하늘이 그녀의 붉은 립스틱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목요일 오전 8시. 이사회 프레젠테이션을 하루 앞둔 아침.


태성그룹 본사 1층 로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수천 명의 직원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그 공기 속에는 평소와 다른, 아주 기묘하고도 끈적한 흥분감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은밀하게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야, 너 그거 봤어? R&D 센터 백 전무 폭로 글.”


“당연하지. 지금 블라인드 실시간 베스트 1위잖아. 새벽에 올라왔는데 댓글만 벌써 천 개가 넘게 달렸어.”


“미친 거 아니야? 그 양반 완전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애들 아이디어 다 뺏어서 지 이름으로 올린 거라고? 게다가 알코올 중독에 조현병?”


“어쩐지. 저번에 엘리베이터 같이 탔는데, 눈빛이 완전 맛이 가 있더라니까. 손도 덜덜 떨고. 부사장님은 저런 시한폭탄을 왜 데리고 있는 거야?”


소문은 이미 통제 불능의 산불처럼 사내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폭로 글의 진원지로 지목된 30층 R&D 센터였다. 아침 일찍 출근한 연구원들은 탕비실에 모여,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문제의 게시글을 돌려보고 있었다.


“윤 수석님. 이거… 우리 센터 수석님들 중에 한 분이 총대 메고 올리신 겁니까?”


연구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윤 수석은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나는 이런 글 쓴 적 없어. 다른 팀 수석이 썼나? 아니면 지난달에 퇴사한 김 책임이 쓴 건가?”


누가 썼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글의 내용이 자신들이 평소 백도훈에게 느꼈던 억압과 불만을 너무나도 소름 돋게 대변하고 있었기에, 연구원들은 이 완벽한 가짜 뉴스를 자신들의 진실로 완벽하게 채택해 버렸다.


인간의 뇌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 편향의 오류를 저지른다.


“하긴, 저번에 내 알고리즘 기안서 반려시켰던 거, 그거 나중에 전무님이 윗선에 보고할 때 자기 아이디어인 것처럼 슬쩍 포장해서 올렸잖아. 그때부터 알아봤어.”


“알코올 중독도 맞아! 내가 엊그제 전무실 청소하시는 여사님한테 들었는데, 분리수거함에서 양주병 빈 게 무더기로 나왔대. 우리한테 맨날 쌍욕하고 소리 지른 게 다 술 처먹고 한 짓이었어!”


기억은 군중 속에서 폭발적으로 왜곡되고 증폭된다. 아주 사소했던 백도훈의 짜증과 괴팍함은, 이제 악마 같은 흡혈귀라는 프레임에 맞춰 완벽한 범죄 사실로 조립되고 있었다. 연구원들의 눈빛은 이제 상사를 향한 존경이나 두려움이 아닌, 역겨운 오물을 바라보는 극도의 혐오감으로 물들어갔다.


“당장 내일이 이사회 프레젠테이션인데… 우리가 밤새워 피 토하며 짠 코드로 저런 미치광이만 영웅이 되게 내버려 둘 겁니까?”


“난 오늘부로 코드 수정에 손 뗄 겁니다. 지가 진짜 천재면, 어디 내일 이사회 무대에서 혼자 수백억짜리 시연 서버 세팅해서 발표해 보라죠.”


서지안이 밤새 쏘아 올린 텍스트의 독화살은, 30층 연구원들의 마음에 완벽한 파업과 배척의 명분을 심어주었다.


오전 9시.


같은 시각, 본사 32층 임원실.


부사장을 비롯한 그룹의 핵심 이사진들 역시 굳은 표정으로 태블릿에 띄워진 폭로 글을 읽고 있었다.


“부사장님. 이거 단순한 찌라시치고는 내용이 너무 구체적입니다. 백 전무 밑에 있는 연구원들이 단체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가 오늘 아침 인사팀을 통해서도 올라왔습니다.”


인사본부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당장 내일 오후 2시가 이사회 프레젠테이션입니다. 백 전무가 천오백억 원의 내년도 R&D 예산을 따내야 하는 자리인데… 이 상태로 무대에 올렸다가는 주주들과 이사들 앞에서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모릅니다. 차라리 프레젠테이션을 연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부사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묵직한 만년필을 책상에 툭툭 튕겼다. 백도훈은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스카우트해 온 자신의 가장 거대한 트로피이자 무기였다. 이대로 그를 내친다면 부사장 자신의 인사 검증 능력과 리더십에도 치명적인 흠집이 생길 터였다.


“찌라시 하나에 천오백억짜리 행사를 미루는 게 말이 됩니까. 백 전무 성격이 괴팍한 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일단 내일 무대에 세우세요. 그 녀석 실력 하나는 진짜니까, 무대에서 압도적인 결과물만 보여주면 저딴 소문은 단숨에 들어갈 겁니다.”


부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백도훈이라는 통제 불능의 천재를 향한 짙은 의심과 불안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모든 것이 서지안이 치밀하게 계산한 내러티브 조작의 결과였다.


이사들과 임원들은 이제 백도훈의 내일 프레젠테이션을 천재의 혁신적인 비전으로 기대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자의 헛소리가 아닌지 감시하는 매서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무대는 이미 백도훈을 찢어 발기기 위한 거대한 처형대로 변해 있었다.


오전 10시. 본사 22층 특별감사팀.


지안은 여유롭게 모닝커피를 마시며 사내 메신저의 트래픽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R&D 센터 내부망의 결재 라인이 완전히 멈춰 섰고, 부서 간 협조 요청 메일이 단 한 통도 오가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박 대리를 통해 들어왔다.


“실무진들의 보이콧이 시작되었군요.”


지안의 붉은 입술이 우아한 호선을 그렸다.


거대한 환상에 전염된 군중은, 이제 백도훈을 완벽한 무균실 안에 가두고 투명 인간 취급하며 철저하게 고립시킬 것이다.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천재가 부하 직원들의 경멸과 배척을 견뎌낼 재간은 없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억울함에 짓눌린 그의 뇌는, 결국 살기 위해 유일한 마취제인 알코올을 미친 듯이 갈구하게 될 터였다.


“자, 그럼 이제 불쌍하고 가여운 천재를 위로해주러 가볼까.”


지안은 옷걸이에 걸린 새하얀 화이트 슈트 재킷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 책상 한편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검은색 벨벳 가죽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어제부터 백도훈의 이성을 완벽하게 녹여버린 마법의 물약, 1970년 빈티지 아르마냑 독주와 순은으로 세공된 플라스크가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경쾌한 하이힐 소리를 내며 집무실을 나섰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을 사냥감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치명적인 동아줄을 내려주기 위해 30층으로 향하는 이단심문관의 발걸음은 왈츠를 추듯 가볍고 우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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