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약점의 해부학

by 연구소장

인간의 정신을 완벽하게 해체하는 작업은, 거대한 마천루를 무너뜨리는 정밀한 폭파 공학과 맞닿아 있다.


건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꼭대기부터 폭탄을 터뜨리는 멍청한 기술자는 없다. 가장 효율적이고 파괴적인 철거는, 그 거대한 하중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가장 깊고 연약한 지하실의 '메인 기둥'을 찾아내어 단 한 발의 폭약을 설치하는 것이다.


태성그룹의 차기 오너, 부사장.


그가 두르고 있는 혈통이라는 화려한 외벽과 수조 원대 자본이라는 단단한 콘크리트 너머에는, 사실 수십 년간 곪아 터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끔찍한 열등감이라는 메인 기둥이 숨겨져 있었다.


서지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냥감의 배를 가르고, 그 내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 치명적인 약점을 완벽하게 프로파일링해 둔 상태였다.


목요일 밤 10시. 강남의 최고급 레지던스.


이곳은 지안이 최근 전략기획실 부실장으로 승진하며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프라이빗 안가였다. 겹겹의 보안 시스템으로 외부의 접근이 완벽하게 차단된 이 넓고 서늘한 거실에, 내일이면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한 특별정보통제팀 7명의 요원들이 모여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부사장의 명령대로 부서가 강제 해체된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요원들의 얼굴에 체념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그들의 눈빛은 오직 단상 앞에 선 자신들의 여왕, 서지안의 입술만을 맹목적으로 갈구하고 있었다.


“자, 사냥감의 숨통을 끊기 전, 그 짐승의 뼈와 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해부부터 시작하죠.”


지안은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스마트 스크린에 태성그룹 오너 일가의 가계도를 띄웠다.


가장 꼭대기에는 현재 병상에 누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늙은 제왕, ‘태성그룹 회장’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굵은 선 끝에 부사장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여러분이 아는 부사장은 어떤 인간입니까.”


지안의 물음에 오 과장이 즉각 대답했다.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인 재벌 3세 아닙니까. 타인을 소모품 취급하고,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으며,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가차 없이 짓밟는 무자비한 폭군입니다.”


“맞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폭군이죠.”


지안은 붉은색 레이저 포인터로 부사장의 미간을 정확히 겨누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시적인 폭력성과 오만함은, 사실 내면의 극심한 공포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가장 얄팍한 방어기제에 불과하거든요. 부사장의 진짜 정체는 폭군이 아니라, 평생을 아버지의 그림자에 짓눌려 벌벌 떠는 가련한 어린아이입니다.”


지안의 손가락이 위로 향했다. 태성그룹을 맨손으로 일궈낸 전설적인 창업주이자 절대 군주, 회장의 사진이었다.


“회장님은 지독한 실력주의자입니다.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능한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셨죠. 부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성과를 낸 적이 없습니다. 번번이 투자에 실패했고, 사고를 칠 때마다 회장님은 그를 벌레 보듯 경멸하셨죠.”


지안은 스크린의 화면을 넘겼다. 부사장이 최근 몇 년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수백억의 적자를 냈던 사업들의 목록이 빼곡하게 떠올랐다.


“부사장이 저를 기용해서 송태섭, 백도훈, 최동욱 같은 거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서? 아니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나도 이만큼 그룹을 피도 눈물도 없이 통제할 수 있는 강한 후계자다’라는 것을 증명받고 싶었던 겁니다. 아버지의 칭찬 한마디에 목말라 꼬리를 흔드는 가여운 들개. 그것이 우리 사냥감의 완벽한 뇌 구조입니다.”


팀원들은 숨을 죽인 채 지안의 해부학 강의에 빠져들었다.


“권력의 정점에 선 자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트라우마. 이보다 더 요리하기 좋은 약점은 세상에 없습니다.”


지안은 테이블 위의 태블릿을 조작했다. 스크린의 가계도에, 부사장의 사진 옆으로 점선으로 이어진 또 다른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


“박 대리. 우리가 어제부터 은밀하게 파고들었던 태성그룹 오너 일가의 가장 깊은 무덤. 그 안에 숨겨진 시체를 꺼내서 보여주세요.”


박 대리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자, 신원 미상의 젊은 남성 사진 하나와 유전자 검사 결과지, 그리고 해외 송금 내역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태성그룹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1급 기밀입니다.”


박 대리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회장님이 외부에서 낳아 몰래 숨겨 기르던 혼외자가 한 명 있습니다. 부사장의 배다른 이복동생이죠. 본처인 부사장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발악을 하는 바람에, 그 혼외자는 태성그룹 호적에 오르지 못한 채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은밀하게 쫓겨났습니다.”


“그 혼외자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오 과장이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탈에서 아주 뛰어난 실적을 올리며 엘리트 투자자로 활동 중입니다. 핏줄만 믿고 흥청망청 사는 부사장과는 정반대로, 회장님의 천재적인 사업가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진짜 늑대죠.”


지안이 나긋하게 미소 지으며 박 대리의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가여운 부사장은, 바다 건너에 있는 저 이복동생의 존재를 숨을 쉴 때마다 의식하며 끔찍한 강박증에 시달려 왔습니다. 아버지가 언제든 무능한 자신을 내치고, 저 똑똑한 진짜 늑대를 불러들여 태성그룹의 왕관을 씌워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부사장의 뇌관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지안은 스크린 속 부사장의 사진과 혼외자의 사진을 나란히 띄웠다.


“우리는 지금부터 부사장의 전두엽을 완벽하게 마비시킬 겁니다. 내일 아침, 그가 30년 동안 매일 밤 악몽 속에서나 두려워하던 일. 즉, ‘아버지가 드디어 자신을 버리고 혼외자를 후계자로 선택했다’는 치명적인 환상을 그의 눈앞에 완벽한 현실로 주조해 낼 겁니다.”


“하지만 부실장님.”


한 팀원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무리 부사장이 불안에 떨고 있다 한들, 회장님은 현재 앓아누워 계신 데다 그런 중대한 후계 구도 변경이 찌라시나 소문만으로 믿어지겠습니까? 최동욱 본부장 때처럼 허술하게 속아 넘어갈 인간은 아닐 텐데요.”


“당연하죠.”


지안은 전혀 흔들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동욱은 사내 평판과 부하 직원들을 이용한 여론 몰이로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그룹의 최상위 포식자인 부사장에게는 그따위 사내 찌라시가 통할 리 없었다. 부사장의 목을 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절대 권력자인 ‘회장의 직인’이 찍힌 기밀문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사장이 스스로 그 가짜 문서를 훔쳐보게 만들 겁니다. 의심이 많은 인간은, 남이 떠먹여 주는 정보는 의심하지만 자신이 몰래 훔쳐낸 정보는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맹신하는 법이거든요.”


지안은 책상 서랍에서 붉은색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된 극비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의 겉면에는 ‘CEO 일일 직보 사항 - 회장님 친전’이라는 살벌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늘 낮, 제가 40층의 대표이사 영감님과 아주 은밀하고 우아한 협상을 맺고 왔다는 사실, 다들 아시죠?”


지안의 말에 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이 서류 봉투는 오늘 오후 40층 대표이사 비서실에서 합법적으로 생성된 극비 문서입니다. 내용은, 대표이사가 병상에 있는 회장님께 직접 올리는 ‘후계 구도 비상 계획안’이죠. 물론 그 내용물은 제가 점심시간에 텍스트를 작성하고, 박 대리가 회장님의 인감과 서명을 완벽하게 위조해 덮어씌운 가짜입니다.”


“그럼 그 문서 안에는….”


“네. ‘부사장의 계속되는 경영 실책과 임원진의 연쇄 이탈로 인해 더 이상 후계자로서의 가치가 없음을 확인. 회장님의 지시대로 미국에 체류 중인 혼외자 김지훈을 다음 달 이사회에서 차기 대표로 추대하기 위한 지분 양도 작업에 착수함.’ 이라는 내용이 회장님의 지장과 함께 찍혀 있습니다.”


악마도 박수를 칠 완벽한 날조.


그룹의 안주인이 되려는 부사장의 꿈을 산산조각 내고, 그의 가장 깊은 트라우마를 칼날로 후벼파는 사형 선고문이었다.


“이 문서를 어떻게 부사장에게 먹이실 계획입니까?”


“내일 아침 9시. 40층 대표이사 비서실장이 이 서류를 들고 회장님이 계신 VIP 병동으로 출발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친위대원들은, 그 비서실장의 차량이 본사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를 유발하세요.”


지안의 시나리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교하게 펼쳐졌다.


“비서실장이 사고를 수습하느라 차에서 내린 사이, 오 과장이 이 봉투의 겉면을 찢어 뒷좌석에 흩뿌려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평소 부사장이 40층에 프락치로 심어둔 비서실 막내 직원의 스마트폰으로 은밀하게 전송하세요.”


“아하…!”


박 대리가 무릎을 탁 쳤다.


“부사장의 프락치가 그 사진을 보고, 부사장에게 다급하게 보고하도록 만드는 거군요! 부사장은 자신이 심어둔 스파이가 목숨 걸고 빼낸 정보니까, 단 1퍼센트의 의심도 없이 그걸 회장님의 진짜 뜻이라고 맹신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정확합니다.”


지안은 차가운 얼음물이 담긴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내쫓고 싶어 했던 40층의 대표이사가 뒤에서 손을 잡고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완벽한 기정사실. 그 서류를 보는 순간 부사장의 전두엽은 완전히 타버릴 겁니다.”


권력의 끈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재벌 3세의 반응은 뻔하다.


그는 어떻게든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회사의 현금성 자산을 모조리 끌어모아 혼외자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려 발악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회사에 치명적인 주가 조작이나 무리한 비자금 횡령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는 부사장이 이성을 잃고 불법적인 자금을 융통하며 미쳐 날뛰는 그 모든 순간을, 조용히 관찰하고 기록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안은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얼음이 부딪히며 내는 서늘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주인이 나를 내치기 위해 뽑아 든 칼보다, 내가 주인의 목덜미에 꽂아 넣을 독니가 훨씬 더 빠르고 치명적이라는 걸 보여줍시다. 내일 오전 9시, 작전명 ‘균열’을 시작합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7명의 맹목적인 병사들이 지안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내일이면 부서가 해체될 것이라는 두려움 따위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오직 태성그룹의 가장 높은 왕좌를 끌어내려 그 피 묻은 살점을 뜯어 먹겠다는 짐승의 굶주림만이 가득했다.


깊어가는 목요일 밤.


태성그룹 최상층을 완벽한 지옥으로 몰아넣을 이단심문관의 치밀한 연금술이, 마침내 마지막 솥단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사냥감의 가장 부드러운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무자비하고도 우아한 덫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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