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프로 정착러가 되는 길 : 조금 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
잘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으로 떠나올 때 우리 부부는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벌이 없이 1년을 살게 될 것이란 것도, 미국 아파트의 렌트비가 한 달에 3,500달러 (환율 적용 시 한화 500만원 상당)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생활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파트 렌트비가 매우 비싼 편에 속했지만 치안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 선택한 결과였고, 모든 것은 누가 등 떠밀어서가 아닌 온전한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벌이 없이 지출만 하며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쉬이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일 년쯤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우리에겐 경험과 추억이 쌓일 거라고 믿으며 궤도 이탈을 선택했다. 돈은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벌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집을 계약하고, 차를 사고, 매주 마트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식재료를 카트에 담을 때에도 담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생활을 위한 고정 지출비가 컸던 이유였다. 명품백이나, 고급차는 없어도 경험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고 생각해온 우리였기에 미국행을 선택할 수 있었고, 벌이 없이 지출만 하는 상태에서도 여행, 축구, 코딩, 수영, 스케이트 등 경험과 배움을 위한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은 우리였는데 그렇다 보니 꼭 필요한 것에만 지출을 하는 나름대로 알뜰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도 월1,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평균 생활비로 지출되고 있었다. 남편의 석사과정 학비나 현지에서 등록한 나의 요가 지도자 과정 등의 규모가 큰 비용을 제외하고도 월평균 생활비가 한화로 1,000만원이 넘는 실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미국으로 떠나오며 10년이 넘은 세간살이를 모두 버리거나 중고로 판매하는 등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처분하고 왔기에 돌아가면 차도, 가전도, 가구도 모두 새로 장만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할 수만 있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었지만 학생 신분의 F1, F2 비자로 미국에 온 우리는 어떠한 수입활동도 미국에서 할 수가 없었다. 예상보다 월평균 생활비가 많이 발생하긴 했지만 모르고 선택한 일도 아니었고, 딸아이나 반려견이 아플 때 현지 보험 없이 발생할 의료비 등을 생각하면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엔 백수의 삶이 괴로워 잠이 오지 않았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다달이 월 천만원이 넘게 나가는 생활의 무게는 버겁고 무거운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평균 지출은 먹고 싶은 과일, 배달음식, 식재료 등을 마음껏 사며 아낌없이 생활하고도 미국 생활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기에 그 무게는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벌이도 없으면서 운동하겠다고 헬스장까지 끊어 무리를 하는 건 아닐까? 이 물건이 우리에게 꼭 필요할까? 지출을 하는 매 순간 신중해야 했다. 그렇다고 어렵게 떠나온 미국에서 생활비를 아끼겠다고 스트레스받으며, 두 손을 꽁꽁 묶고 생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3인 가족의 생활비가 이러한데 식구가 많은 가족은 어떻게 살아갈까 싶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내내 줄어가는 통장잔고를 지켜보는 것은 내내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LA, 이 먼 곳까지 와서 내내 괴로워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떤 선택에도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기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뒤돌아보지 않는 선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두 발을 딛고 선 이곳에서 후회 없는 순간을 사는 것이라 되뇌었다.
미국에서 1년 살기, 생활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지만
현실의 무게를 맞닥뜨릴 때마다
후회 없이 매 순간을 살자고 다짐했다.
생활의 괴리감은 빈번하게 우리를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많은 것이 새로운 이곳에서 우리는 여느 때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며, 저마다 새로운 자극들을 느끼고 있었다. 생활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면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확신이 가난한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었다.